‘남남북녀’의 허구

나는 처음 만나는 한국 사람들로부터 “미인이시네요, 정말 ‘남남북녀’란 말이 맞네요.”라는 말을 가끔 듣곤 한다. 내가 미인이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추켜올리는 데 아주 능수 능란한 한국문화가 생산해낸 상투적인 인사법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참 많은 시간이 요구되었다. 게다가 여성학까지 공부하고 보니 그 말속에 ‘북한 여성을 대상화하는’ 뜻이 깔려져 있다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의미까지 알아버렸다.

‘남남북녀’ 담론은 그 생산 초기 특정집단(남쪽의 남자와 북쪽의 여자)의 미적 자질에 대한 일반화라기보다 위치적 개념으로 사용되어진 듯싶었다. 큰 고분 발굴시 왕과 왕비로 추정되는 남여의 위치가 전자는 남쪽, 후자는 북쪽에 있었고 견우 직녀성의 위치도 남성성을 상징하는 견우성은 남쪽에, 여성성을 상징하는 직녀성은 북쪽에 있다는 관찰(별들에게 성별의 위치가 바꾸어져 명명되었을 수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들은 남남북녀 담론이 그 시초에는 지금과 다른 의미로 활용되었을 수 있을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그러면 ‘남남북녀’로 표현된 남한 남성의 한 때의 ‘북녀(北女) 열기’는 어떻게 분석해야 옳을까. 한국사회 지배집단의 ‘자기집단 애호’로 볼 수가 있다. 한국사회의 급진적 경제발전과 페미니즘 의식의 급성장으로 위기를 느낀 남한 남성 집단이 경쟁자집단(남한 여성 집단)을 부정할 필요가 요구되자 북녀 응원단을 통하여 자기의 경쟁대상에 대한 간접부정을 표출한 것이었다. 이 말은 남한 남성 집단이 남한 여성을 간접 부정한 것 이상으로 북한 여성을 부정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남한 남성이 경쟁자를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하기에 아무 거칠 것 없을 정도로 북한 여성을 가볍게 여긴다는 의미가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남남북녀’론은 한반도에 전횡하는 지역주의, 편 가르기가 낳은 증오와 편견의 산물이라고 정의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내면들을 터득하자 나에게는 ‘남남북녀’란 말이 그렇게 꺼림직 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그것이 여성의 입을 빌려 발화되는 때도 많은 데 그렇다고 그 말속의 지배자적 속성이 제거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게다가 한국사회 남성들은 한술 더 떠서 ‘남남북녀’론에 북한 여성의 순정과 순종의 ‘미덕’까지 결부시키는 것이었다. 참 웃기는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견해대로 본다면 북한사회에서 여성은 정조가 하나같이 순결하고 남성에게 덮어놓고 순종하는 풍조만이 만연되고 있다고 해석이 되는 데, 북한이 정말로 순결, 순정이 주요 문화코드로 작동하는 사회라면 대량의 여성들로 미인군단을 형성하여 아시안게임에 응원단으로 보내는, 즉 국가가 나서 여성을 집단적으로 대상화하는 이런 ‘집단 성폭력’ 행위는 절대 벌이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리고 가슴 아픈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사회에 만연되는 성적 해탈의식에 알든 모르든 잠식되어 있지 않았다면 30만에 이르는 탈북자(그 중 과반수가 여성이라고 함)들의 지금도 멈출 줄 모르는 북한 탈출행진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하였을 것 이었다

남북 여성문제 협상을 위한 제안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인 남북 한반도는 국토통일의 역사적 과제를 현재의 삶을 사는 매 개인 앞에 제시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인구 200만 이상을 아사로 죽인, 기아와 독재가 범람하는 인권유린지대로 보다 급속히 전락해가고 있는 사정은 이 과제의 절박성을 한결 더 뚜렷이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실정은 북한의 여성문제에 대해서도 본격적 관심을 요하는바, 이번에는 남쪽에서 북한 여성대표 측과 협상을 가질 경우 상정하여야 할 문제에 대해서만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현재 남한에서는 성폭력, 성희롱, 성 매매, 아내구타 등의 성차별 문제들이 쟁점화 되어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권익을 옹호해내는데 일련의 성과들을 달성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여성의 인격이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한 초보적 방법조차 개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북한사회인들은 자기들의 가부장적 의식을 완화시킬 일말의 기회도 갖지 못하였고 이러한 북한 내부 실정은 성희롱, 성폭력 등 남한에서 일정에 오르고 있는 제1차적 성차별 문제들을 남북한 여성문제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데 대해 심사숙고하게 한다.

가정폭력도 이상적인 협상대안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다양한 기회를 갖지 못한 북한인들에게 이 문제는 자칫 ‘남편 타도’의 구호로 들릴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정은 북한인이 유일하게 인식하는 ‘자유의 장’이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북한인의 자유의 마지막 마지노선을 허물어버리는 것은 예상치 못한 충돌을 야기시킬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면 무슨 문제라야 그들의 자극을 최소화하면서 양측의 직접적 이해관계를 이끌어내어 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그것이 바로 여성의 가사부담과 자녀보육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가사부담이나 자녀보육문제는 한국에서도 아직 별 묘안이 없는 상태이고 전통적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하도 절묘하게 융합이 되어 해결이 가장 어려운 난제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북한(독재자 김정일이 아닌)과 눈높이 맞추는 입장에서 이 문제를 부디 들고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안건에 관한 협상에서 특별한 대안은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진지한 협의는 이루어 질 것으로 기대가 된다. 이러한 자세는 보다 더 성숙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단서가 되며 남북한 여성들이 서로를 이해해 가는 귀중한 장으로 전환되어 질 것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 북한의 모든 사회관계와 권력으로부터 김정일을 차단시키고 고립시키는, 즉 북한인 내부로부터 인권의식을 생성시키는 중요 시발점이 되어질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남북한 대화는 여성문제에서부터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일방적이고 가르치는 식이 아니라 토의하고 알려주고 고민하고 이해하는 진지한 눈높이 맞춤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북한 여성들이 성희롱, 성폭력, 성 매매, 아내구타 등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스스로 그에 대해 들고 나오도록 설득시키고 인내해야 한다.

북한여성들이 성 매매, 성희롱, 성폭력, 아내구타와 같은 본질적 문제를 들고 나오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정치적 맥락과 예민하게 잇닿아 있다는 데도 있다. 이 말은 김정일 전제정치가 사라지기 전에는 그 문제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북한 대화나 통일을 위한 가장 이상적 방안은 어떤 방법이냐를 논하기에 앞서 그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에 있다. 이는 오늘 날 한반도인의 애국적 사명의식을 검증해내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최진이 / 前 조선작가동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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