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가 지난 정권에서 관심조차 보이지 않던 ‘북한인권 문제’를 올해 ‘6대 정책 과제’로 포함시키더니 20일에는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 활동을 강화한다며 ‘북한인권포럼’을 출범시켰다.
여기까지는 국가 기구의 특성상 정권의 코드에 맞춰 살짝 옷을 갈아입은 정도로 봐줄 수도 있다. 어쨌든 그 방향은 틀리다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인권위가 출범시킨 ‘북한인권포럼’의 구성원 면면을 살펴보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도대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이 같은 사람들을 버젓이 ‘북한인권 전문가’라고 내세웠는지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북한인권포럼은 법륜 평화재단 이사장과 심영희 한양대 교수를 공동대표로 김귀옥(한성대 교수), 김근식(경남대 교수), 김동균(변호사, 前 통일연대 변호사), 박명림(연세대 교수), 박석진(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서보혁(이화여대 연구교수),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정성장(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 배명복(중앙일보 논설위원), 이대근(경향신문 논설위원), 정학진(대한변협 북한인권소위 부위원장), 유호열(고려대 교수), 김수암(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이금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 16명으로 구성됐다.
참으로 기가 막힌 것은 이들 중 몇 명을 제외하고는 지난 시기 북한인권의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인권을 거론하는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폄훼하고 모략하던 사람들이다. 북한 정권을 옹호하고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자신의 주장과 논리로 버젓이 피력하던 사람들도 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친(親)김정일 성향의 좌파단체 출신들도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북한인권에 대해 무엇을 논하겠다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인권위가 최초 이 포럼을 구성하면서 참가자 명단에 포함시켰던 북한인권정보센터의 윤여상 소장과 북한민주화운동본부의 김태진 대표는 불참 의사를 통보한 것으로 밝혀졌다. 윤 소장은 “인권위가 그동안 북한인권문제와 관련해 활동해왔던 인사들을 의도적으로 배척하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실제 북한인권 문제 개선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었다”며 불참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이 외의 몇몇 인사도 불참을 심각하게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시기 북한 인권을 제기할 때 동조는 못할망정 그 반대편에서 모략하고 흠을 내려 한 사람들이 내세운 논리이자 주장이란 과연 무엇이었던가.
“정체가 불명확한 정보와 사실에 기반한 보고서가 급기야 2005년 4월 유엔 인권소위에 제출되면서 북한인권문제가 북핵문제와 결합하여 ‘북한악마만들기’라는 쟁점의 재료로 만들어지고 있다.”(김귀옥 한성대 교수)
“북한의 대표적인 인권침해로 거론되는 공개처형의 경우 중국의 공개처형, 싱가포르의 태형, 미국의 전기의자 사형 등 문화의 특수성에 따른 예방범죄 차원의 고유한 행형절차의 성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김근식 교수)
“부시 행정부 안에 대북관계개선 로드맵은 거의 없고 대북붕괴 시나리오만 넘쳐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법안이 북한에 대한 무력침공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김동균(변호사, 前 통일연대 변호사)
“체제 경쟁에서 비롯된 이북의 정치적 자유 제한은 이남의 국가보안법을 통한 정치 사상의 자유 제한과 같은 맥락에 있다. 북한 인권과 남한 인권은 불가분의 관계다”(박석진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유엔 인권위와 총회의 북한인권 결의가 인권의 ‘보편성’을 담보할 만큼 공정하냐는 문제다.”(서보혁 이화여대 연구교수)
“6자회담이 재개되면 남북관계가 복원돼야 하는데 북한인권결의안 동참은 이에 별 도움이 안 된다. 북한인권 개선도 중요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남북관계 복원도 필요하며….”(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대북방송은 북한 주민들의 알권리를 충족해 주는 차원에서 긍정적이지만 탈북자가 증가하는 등 북한 주민들의 정신적 혼란 상태는 가중될 것이다.”(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
이건 바로 ‘북한인권포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내뱉은 말이 아니던가. 이런 억지와 낭설을 펴던 사람들이 다름 아닌 인권위가 ‘북한인권’과 관련한 정책개발을 모색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북한인권포럼’의 성원들이다. 그동안의 처사를 반성하고 자숙하여도 이들의 오류와 반(反)인권적 책임이 쉬 가시지 않을진대 그런 그들이 도리어 전면에서 북한 인권을 이야기하겠다니 이 무슨 해괴한 놀음인가. 인권위는 공식적으로 이 말도 안 되는 포럼에 인권위의 권위와 북한인권이라는 신성한 가치를 얹어주어 그들로 하여금 마음껏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지난 10년간 묵묵히 한길을 걸어왔던 수많은 전문가, 운동가들을 농락하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동안 인권위는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관할권 밖’이라는 궤변을 펴며 철저히 외면해 왔다. 그런 그들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달라진 환경에서 더 이상은 그 같은 ‘방기’에 머물 수 없음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따라서 그동안 북한인권을 위해 헌신해 온 많은 인사들을 비롯해 많은 국민들은 응당 인권위의 변화를 기대하였다. 그 구성원들의 그간의 행태를 반추하건대 과감한 인적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고서야 획기적으로 변화할 것을 바라기는 어렵다는 현실적인 인식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점진적이나마 스스로를 변화시켜 갈 데 대한 최소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었다.
그러나 인권위는 ‘변화’를 시도한 게 아니라 몸에도 맞지 않는 어색한 옷으로 ‘위장’을 시도하고 있다. 애당초 몸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북한 인민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삭제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서 우리를 더욱 몸서리치게 만드는 것은 ‘가짜 북한인권 전문가’들로 ‘북한인권포럼’을 구성해놓고 대국민 사기극을 넘어 대북한인민 사기극을 벌이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시대의 흐름을 뒤집어 놓고 국민의 분별력을 조롱하겠다는 반역적 모의이자 반민주적 폭거가 아닐 수 없다.
인권위와 북한인권포럼은 차라리 북한인권에 대해 침묵하라!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오늘과 같은 행태로 국민을 우롱하고 북한 동포들을 두 번 울리며 이 땅 1만5천 탈북자들을 진노케 할 요량이라면 차라리 예전처럼 침묵하는 게 낫다.
오늘 이 순간에도 동남아시아의 밀림에서는 수천수만의 탈북 행렬이 자유와 인권을 향한 희망의 사투를 벌이며 1만km 죽음의 사선을 넘고 있음을 왜 모르는가. 생명과 맞바꾼 그들의 탈출, 그들의 절규를 다시 또 참담하게 유린하고자 한다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라리 그들의 간판을 내려라. 그들에게 ‘인권’이란 그들의 간판에나 써 붙이는 알량한 이름 외에 다른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