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대신 戰場에 나가 죽은 친구를 보러왔다”







캐나다군 에머리 뒤셋(79)씨 6.25참전이
자랑스럽다며 웃고있다.ⓒ데일리NK
“열이 나던 날 대신해서 전장에 나갔던 내 친구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그를 만나기 위해 60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캐나다병사 에머리 뒤셋(79)씨는 정부가 구성한 ‘6.25전쟁 60주년기념사업회’의 초청으로 12일 6.25 전쟁 60주년을 기념해 방한했다.


6.25전쟁 와중인 1952년 8월 한국을 떠난 후로 처음이다.



스물한 살의 청년 뒤셋 씨는 1951년 캐나다 특수부대 통신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당시 캐나다는 지원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세계 지리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유엔의 기치 하에 공산군의 침략을 받고 있던 한국을 돕기 위해 참전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반세기만의 방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내가 한국에 왔을 때 21세였고, 3일 뒤에 나는 80세가 된다. 한국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전쟁은 죽을 고비도 많았고 너무 힘들었지만 나는 한국을 도와준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연회에서 한 장군이 내 옆에 앉아서 직접 나에게 메달을 걸어줬다. 나는 어린 아이처럼 울었다”고 말했다.



뒤셋 씨가 한국을 다시 찾은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그는 “언젠가 하루는 내가 전장에 나가는 날이었다. 하지만 유독 그날 몸이 너무 아팠고 열이 많이 나서 도저히 전장에 나갈 수 없는 상태였다. 나와 같은 통신병 이였던 나의 친구는 아픈 나를 대신해서 전장에 나가줬다. 하지만 그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 돌아왔다. 그는 나대신 전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지금 부산 유엔군 묘지에 묻혀있다.”


“나보다 일주일 먼저 참전한 고향친구는 내가 한국에 도착하기 전에 전사했다. 그 친구도 부산 유엔군 묘지에 있다. 나는 오랜만에 나의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방한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전사했다고 보고될 만큼 위험천만한 순간에서 살아남았다.



“1951년 당시에는 오늘날과 달라 군 통신이 통신선을 통해서 이뤄졌다. 그래야만 전장과 본부가 연결돼 사격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종종 포탄이 터져 선이 끊기는 일이 있었다. 내 임무는 밤중에 논밭을 지나가 끊긴 선을 다시 연결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 통신선을 연결하는데 내 주위로 포탄이 사정없이 쏟아졌다. 불안과 공포가 엄습해왔다. 쏟아져 내리는 포탄을 보며’나는 죽었구나!’라고 생각했다. 멀리서 날 지켜보던 내 상관은 내가 전사한 것으로 생각하고 전사했다고 보고했었다. 그 정도로 전투는 치열했고 난 두려움에 떨었었다. 나는 행운아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국가 보훈처가 발행한 2009년 유엔군 참전 자료에 따르면 캐나다 군은 당시 육해공군 25687명을 파병했으며 그 중 1557명의 사상자(전사자는 312명, 부상 1212명, 실종 1명, 포로 32)를 냈다. 현재 생존추정인원은 7521명 이다.


12일 한국을 방문한 캐나다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은 6박7일의 일정을 마치고 18일 고국으로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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