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특구·황금평에 과감히 ‘일’ 벌여보자

요즘 한반도 정세는, 연극에 비유하자면 막(幕)과 막 사이, 즉 막간(幕間)과 비슷한 분위기다.


북한정권은 지난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에 이어, 올 들어 대남 대화공세를 펼치더니 5월 김정일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으로 관심을 끌었다. 이어 북중간 나진선봉-황금평 공동개발 착공식이 열렸다. 그런 한편, 천안함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 정부에 남북 비밀접촉을 폭로하여 뒷골목 양아치 짓을 하더니, 요즘은  금강산 재산정리 문제를 빌미로 한국 정부관리들을 오라, 가라 하면서 남북관계에서 뭔가  변화를 꾀해보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요즘 김정일의 행보를 보면, 이러저리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역시 중요한 대목은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일이다. 북중관계는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북중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측이 쉽지 않다. 참고할 만한 전례(前例)도 별로 신통치 않다.


6.25 전쟁을 계기로 혈맹이 된 북중관계는 중국이 1970년대 말 개혁개방으로 나가자, 김정일이  덩샤오핑을 ‘수정주의자’로 강력히 비난하면서부터 좋지 않았다. 1992년 한중 수교 때 김정일은 덩샤오핑을 “X이 목까지 차올라 온 놈”이라며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황장엽)고 한다.


중국도 내용적으로는 북한을 크게 동지관계로 대해온 것도 아니다. 1990년대 중반 북한 식량난 시기에도 중국이 크게 표시날 정도로 도와준 것이 없다. 북중관계는 무조건 도와주는 동지관계와는 거리가 있다. 한미관계와 북중관계를 비교하면, 한미관계는 동맹임에 분명하지만 북중관계는 그렇지 않다. 북중관계는 특히 92년 한중 수교 이후 ‘이해관계’로 진행되어 왔고, 지금은 김정일이 아무리 ‘대를 이어 혈맹’을 강조해도, 더 철저한 이해관계로 이동 중이다. 


그런 점에서 92년 한중 수교가 50년 전통의 북중관계를 균열시킨 외교적 의미에 대해 우리사회의 내부 평가는 너무 인색하다. 그것은 전문가들조차 북중관계의 실제 내용에 어두운 편이고, 근원적으로는 공산주의 체제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적당히 알고 있는 것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이 점에서 지난 10여년 간 우리 정부가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은 대한민국 국익 차원에서 절통할 노릇이다).


하지만 북중관계는 밋밋한 ‘조-중 우호협력관계’라는 표현보다는 훨씬 그 이상이다. 왜? 중국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이라는 땅은 지리(地理)정치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싸고 흔히 해양문명과 대륙문명이 부딪치는 곳으로 표현하지만, 구체적으로는 미국적 가치와, 아직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중국적 가치’가 부딪히고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더 부딪치게 될 것이다. 왜?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될지 알 수 없지만 김정일이 지금 북한의 나진선봉 지역을 중국과 러시아에 터놓으려고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진선봉 지역은 앞으로 그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이 더욱 우리 피부에 와닿게 될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의 나진선봉과 청진, 그리고 한반도의 제주해협으로 이어지는 항로가 많이 자유로워질 경우, 미-일과 경쟁하는 데 제대로 숨통이 트이게 된다. 극동 러시아에서부터 서해로, 대만해협을 지나 서쪽의 티벳,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해양 국경을 보면, 여러 중요한 해협에서 답답하게 막혀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지금 남사군도, 서사군도에서 무리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번도 ‘대양(大洋) 중국’이 되어본 적도 없었고, 또 자신이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했으니 스스로 바다로 나갈 필요도 없었다. 명나라 수군(水軍)은 조선 수군에 비하면 오합지졸이었고, 당나라건, 청나라건 큰 배는 주로 황제에게 해외의 진귀한 선물을 갖다바칠 목적으로 건조되었다. 지금도 ‘양'(洋)이라는 단어 자체가 ‘중국을 공격해오는 외세’의 뜻으로 좋지 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화 시대, 구체적으로 물류(物流: 사람· 정보· 물품의 협력)의 시대라는 사실을 중국이 왜 모르겠는가? 그래서 중국은, 말하자면 개천(開天) 이후 본격적으로 바닷길을 개척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중국의 중요한 국가전략의 길목에 나진선봉이 있고, 김정일은 오로지 세습정권의 안정을 위해 중국에게 나진선봉을 엄청나게 비싸게, 그리고 살라미(salami) 소시지처럼 잘게 썰어 값을 매기려는 ‘장사’를 이제 막 시작하려는 것이다. 한편, 중국은 어차피 돈이 궁한 쪽은 김정일이기 때문에, 시간을 벌면서 값을 후려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칼럼의 첫 부분에서 지금 북한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를 ‘막간(幕間)’으로 바라 보았는데,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한반도 극장’에는 주로 북핵 6자회담과 한반도평화가 단골 무대장치이지만 앞으로 ‘나진선봉을 매개로 한 북중관계와 한반도 정세’라는 무대장치가 하나 더 추가될 것이므로, 이에 대한 우리의 대비책이 수립되어야 하고, 만약 정부에서 수립된 전략이 있다면 과감하게 접근을 시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극장’의 다음 막이 오르면 그 스토리가 남북대화→미북대화→6자회담으로 꾸며질지, 아니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3차 핵실험 준비로 이어질지, 그것도 아니면 남북대화, 미북대화는 우여곡절 끝에 대충 넘어가고 일단 6자회담이 열린 상태에서 북한이 ‘先 한반도평화체제 논의’를 주장하면서(UEP 문제는 또 별도로 값을 받아야 하니까 거론을 못하게 하고), 뒤로는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3차 핵실험과 미사일을 준비하는 강온 배합으로 나갈지, 지금으로서는 예측이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쪽은 북한 핵문제에 다소간 진전이라도 있어야 하는, 그리고 임기만료가 다가오는 한·미·일 정부라는 사실이다. 김정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한 장사를 할 수 있고, 중국도 북핵문제 해결과는 상관없이 의장국으로서 6자회담이 열리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한·미·일만큼 급할 것은 없다. 후진타오에게는 퇴임하기 전에 반드시 북한 핵문제에 진전을 가져와야 하는 ‘북핵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 그래서 다음 막이 오르면 결국 김정일이 유리해지는 방향으로 전개될 공산이 크다.


한국으로서는 참 답답한 노릇이다. 금강산 박왕자 씨 피살사건 때부터 천안함, 연평도까지 줄곧 김정일로부터 선방을 얻어맞고 제대로 수습도 못한 상태에서 MB정부 임기만료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취해야 할 대북전략은 큰 틀에서는 간명하다. 북한이 군사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억지(deterrence)를 한 상태에서, 북한 내부를 변화시켜 개혁개방으로 몰고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의 단독과제가 있고, 한미·한중 협력과제가 있다.


MB정부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달리 김정일이 시키는대로 하진 않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보여온 것은 잘한 일이며, 대한민국 국익에 부합한다. 김대중·노무현처럼 하다가는 결국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돈만 쓰고 북한문제 해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하지만 MB정부도 여러 이유로 해서 능동적인 대북전략을 수행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칼럼에서 줄곧 지적해온 내용이지만, MB정부에서도 우리는 또 한번의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북한정권을 다루는 방법은 힘(군사력)과 돈(경제력)이다. 이 둘은 상호협력, 상호규제 관계에 놓여있다. 힘을 잘 써야 돈의 효과도 발휘된다. 북한을 우리 주도로 끌고 가려면 김정일이 한국의 힘에 대해 일정하게 불안감을 갖고 있는 상태라야 비로소 우리가 돈을 쓰면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힘이 전제되지 않고 돈만 쓰면 부지하세월 퍼주기만 할 뿐이다.


예를 들어 천안함, 연평도 사건이 터지면 ‘즉시’ 그 세 배 정도를 되갚아 준 뒤, ‘도발을 확산할 경우 김정일 너의 정권 자체가 위태로워 질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가 확실히 전달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전제 위에서 비로소 식량·비료 지원(돈)도 효력이 발생할 수 있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추동해가는 남북 협상, 한중 협상에서도 그나마 좀 우위를 지닐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북한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그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결국 시간문제에서 불리한 상황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힘을 전제로 한 돈 전략’은 MB정부뿐 아니라, 다음 정부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북한의 대남전략은 남한 정부와 민간을 이간시키는 데 할애하고 있고, 대신 5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대외전략에 좀더 집중하고 있다. 


몇 가지 짚어볼 대목이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오는 9월께 평양에 프랑스 상주대표부를 설치한다”고 보도했다. 프랑스는 이미 2009년 12월 평양에 상주대표부를 설치하기로 했다가 북한의 핵실험과 인권문제로 늦춰진 것이다. 프랑스는 유럽 주요국가 중 북한과 외교관계가 수립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따라서 빅 뉴스는 아닐지 몰라도, 프랑스의 대북 외교에 시베리아 가스개발 등 다가오는 아시아의 시대에서 영국 독일 등 북한에 미리 진출한 경쟁국에 뒤쳐지는 일은 막아야겠다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중국 동북지방과 북한의 나진선봉, 청진, 블라디보스톡, 시베리아로 연결되는 길목이 터지는 날에 대비해서, 미리 장날 전을 좀 펴두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프랑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우호협력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지역’에 미리 발길을 좀 오고가야겠다는 의미가 묻어있다.    


지난 11일은 북중 우호조약 체결 50주년이었다. 북한의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일행이 중국에 갔고, 장더장(張德江) 국무원 부총리 일행이 평양을 찾았다. 김정일이 ‘대를 이은 혈맹관계’를 강조했을 것임은 안 봐도 뻔한 일이고, 경제분야에서-그 질적 수준이 어느 정도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양국간 협력 속도가 붙을 것이다.   


그리고 조선중앙통신이 AP통신에 이어 영국의 로이터 통신과 계약을 맺었다. 이로써 미국 영국 일본(교토) 중국(신화) 러시아(이타르타스) 통신이 평양에 상주하게 되었다. 


한편, 북한의 외자유치 팀이 선전전을 좀 벌이고 있는 듯하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인 KFC와 코카콜라가 평양에 진출한다는 소문이 돌았다가, 코카콜라 회사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북한당국의 선전전에 그 어느 ‘대북 소식통’이 말려들었을 것이다. 잎으로 이런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여러가지 ‘북한 정보’에서 핵심과 주변, 본질과 현상을 잘 구분해야 하는데, 앞으로 2012년 총선·대선까지 온갖 잡(雜)정보와 대남 선전이 많아질 것이다. 이를 걸러내야 하는 언론의 역할이 실로 막중해졌다.  


그러면 북한이 중국과 협력해서 변화를 꾀하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에게는 유리한가 불리한가? 그것은 우리에게 좋은 일이다. 비록 제한적이지만 황금평, 나선 특구가 개방이 되면 바람직한 일이다. 북한의 개방이 김정일 세습정권의 안정화와 체제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주는 조건이 되기는 어렵다. 김정일도 마지 못해 황금평이라도 열자는 것이지, 개방이 정권 유지에 바람직해서 여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북한이 중국에 문을 열고 있으니 우리도 5.24 조치를 철회하고 그런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합리적인 모니터링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도지원을 하는 것 자체를 중시할 필요는 없다. 인도지원은 굶고 있는 영유아· 취약 주민에게 확실히 전달만 된다면 언제든 주면 된다. 하지만 북한정권이 좀 변하고 있으니, 우리의 대북정책도 변해야 한다며 전략도 없이 현상을 따라가봐야 맨날 ‘김정일의 피동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금은 대북 전략에서는 변화를 서두를 필요가 없고, 다만 전술적 변화는 필요하다. 남북간 협상에서 밀고 당기며 천안함 사과를 받아내는 전술이 필요하고, 향후 전개될 다음 막(幕)에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과제를 잘 설정하고 추진해야 한다.


특히 나진선봉 개방 문제에서 우리는 한중, 한러가 같이 지분 참여할 부분이 있으면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미래 국익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화급하게 결정해야 할 정도로 시간이 촉박한 것 같진 않아 보인다.


나진선봉, 황금평 개방은 과감할수록 좋다. 문제는 김정일도 쉽게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겉으로는 만만디, 속으로는 세밀히 추진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다. 동시에 북한 내부 정보자유화 작업을 더욱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정부 임기 만료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므로 열심히 해야 한다. 정부는 지금 더 활발히 움직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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