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윤이상 같은 변절자와 비교하지 말라”

1957년 10월 17일 소련 모스크바 종합대학에서 북한 소련유학생대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는 북한 유학생들을 감시하기 위해 김도만 노동당 선전선동부장도 평양에서 파견돼 왔었다. 이 때 한 청년이 나서서 흥분한 어조로 연설을 시작했다.


“북한에 김일성 개인숭배가 있다는 것은 사실 아닌가. 사회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에서도 스탈린 개인숭배를 격하하고 있다. 독재는 마르크스 사회주의에 배반되는 것이다. 사회주의 건설을 표방하는 북한에서 어찌 독재가 행해지고 있단 말인가!”


목숨을 담보로 한 청년의 연설에 대중이 술렁거렸다. “무슨 말을 지껄이는 것이냐. 때려 죽여라!” “반동분자 죽여라” 라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청년은 이 날 대회 이후 북한 소련유학생 사회에서 종적을 감췄다. 이후 카자흐스탄에 터전을 잡은 그는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곡가로 활동했다. 지금은 차이코프스키 음악 계보의 4대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정추(88).


정 씨는 영화감독이었던 형 정준채 씨의 영향을 받아 1946년 월북했다. 북한에서도 음악적 능력을 인정받아 평양음대 교수직까지 맡게 됐다.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난 것도 그의 능력을 높이 산 북한 당국의 배려였다. 하지만 그는 줄곧 김일성의 독재 정권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모스크바유학시절의 정추 씨(왼쪽 첫 번째)./미래전략연구원 제공


특히 1956년 경 소련 공산당 제20차 당 대회에서 후르시초프 총비서 주도로 벌어진 ‘스탈린 격하운동’은 그를 비롯한 북한 유학생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김일성의 독재체제를 좌시할 수 없었다.


전라남도 광주에서 출생한 이 백발의 노(老) 음악가가 평전 발간과 관련해 서울을 방문했다. 남과 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척박한 중앙아시아에서 반세기 넘게 보낸 그를 만나 한반도의 현대사와 궤를 같이한 인생 역경을 들을 수 있었다.


정 씨는 지난 15일 미래전략연구원에서 가진 데일리NK와 인터뷰에서 “소련에서 스탈린 격하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나는 이미 김일성이 과도하게 우상화되고 있는 독재자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면서 “그는 북한을 폐쇄하고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북한은 초보적인 자유조차 보장되지 않는 그런 국가였다”고 회고했다.


정 씨에 따르면 소련에서 스탈린 격하운동이 한창이던 1956년, 북한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김일성의 독재적 성향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상조 당시 소련주재 북한 대사도 이러한 유학생 사회의 분위기를 묵인했다.


그는 “유학생들은 56년 소련 당 대회 이후부터 내가 김일성 독재 격하 발언을 하기 전인 57년 10월까지 독재에 대해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다”며, 다만 “나서지 않았을 뿐이었고 독재체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까지도 공공연히 했다”고 밝혔다.


김일성 독재체제를 비판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힐 즈음 북한 소련유학생대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윽고 그는 자신과 뜻을 함께할 ‘동지’를 찾아 나섰다. 그 중 한 명이 ‘허진’이었다. 그는 정 씨가 연설을 하기 전 김일성 비판 연설을 하다 대중들의 거센 반발에 떠밀려 연단에서 내려와야 했다.


허 씨의 아버지는 혁명유가족 후원회 회장으로서 김일성의 충신이었다. 하지만 연안파 일원으로 김일성에 의해 숙청당했다. 정 씨는 당시 “김일성 개인숭배 격하 연설을 하자. 한 명의 연설이 실패하면 묻히겠지만 두 명이 같은 내용으로 연설을 하면 그것은 한 집단의 공동의식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용기가 없어)나서지 못하니 우리가 나서서 ‘독재 반대’를 공론화 시키자”며 허 씨를 설득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김일성 독재 반대 연설을 한 후 북한 당국의 보복을 피해 소련으로 망명했다. 그들과 뜻을 같이 하는 8명의 사람도 따라나섰다. 정 씨는 김일성 독재를 반대한 10인 망명자를 10진(眞)이라고 불렀다. 정 씨는 “독재에 벗어나 참된 것(眞)을 찾아 나온 사람들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 후 정 씨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정착해 ‘소련의 고려가요’ ‘1937년 9월 11일 스탈린’ 등 현지 한국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곡들을 써내면서 명성을 얻었다. 비록 도망자의 신분이었지만 그의 재능을 인정한 지도교수의 배려로 차이코프스키 음대 졸업장을 받기도 했다. 이와 함께 ‘흑발의 차이코프스키’라는 별칭도 얻었다.


천재 작곡가로 꼽히는 그는 윤이상에 비견되면서 세인들에게 ‘카자흐스탄의 윤이상’이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 씨는 이 별명이 달갑지 않다고 했다. 그는 “나를 절대 그렇게 부르지 말라. 부당하다”며 손사래 쳤다.









▲정추 씨는 “윤이상과 나를 비교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김봉섭 기자

정 씨는 “나도 윤이상이 박정희 독재 정권에 투쟁하는 민주투사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윤이상이 북한 조직에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북한 또한 독재 정권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 어떻게 북한을 두둔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나는 북한체제를 반대한 망명자고 윤이상은 남한체제를 반대하고 사이비 사회독재국가를 찬양한 사람이다. 나는 윤이상 같은 변절자가 아니다. 그와 비교하지 말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국내 종북세력의 활동과 관련 “북한은 한쪽으로 자신들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실행해 국내 종북세력을 형성시켰다”며 “이들 종북세력을 색출해서 평양행 항공권을 쥐어줄 수 있는 정책적 ‘아량’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한편 정추 씨는 (사)미래전략연구원이 추진하고 있는 ‘북한 현대사 바로알기’ 사업의 주인공으로서 방한했다. 현재 그는 녹취 구술 작업을 마쳤으며 곧 그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이 발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