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없는 백성, 상갓집 개만도…

발버둥질하며 따라서던 3살짜리 딸애를 얼려서 떼어놓으며 떠나온 고향, 눈앞에 바라보면 서도 갈수 없는 그곳, 그곳은 내 고향인 북한 땅이다.

군 제대 후 함경북도 은덕탄광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때부터 충실한 모범당원으로, 인정받아 중대장으로 일해오던 내가 오늘은 하루아침에 오고 갈데없는 허망한 인생의 막바지에서 헤매고 있다. 식량난을 맞아 아버지와 처는 굶어서 유명을 달리하고 혹 철없는 자식까지 굶겨죽일 것만 같아 중국으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어떻게 도강을 해야 할지 막막하여 온성에 있는 왕재산으로 올라가기를 몇 십번, 하루 종일 숨어서 길을 익혀두고 국경수비대의 초소위치도 알아놓으며 탈북준비를 했다.

3월 말이지만 그제야 얼음이 풀리기 시작했고 강물은 몹시도 차가워 금방 숨이 멎을 것만 같은 물에 들어서서 미끄러지면서 둥둥 떠내려갔다. 옷도 잃어버리고 팬티만 입은 채로 허둥지둥 중국 쪽 대안으로 붙는데 성공한 나는 추운 줄도 모르고 중국인이 살고 있는 인가로 무작정 뛰어들었다.

중국인부부의 도움으로 겨우 옷가지를 주어 입고는 무작정 북쪽으로만 행방 없이 들어갔다. 약 60여리 길을 산발을 타고 들어간 곳은 汪淸현의 어느 한 농촌마을이었다.

사정사정하여 일자리를 잡은 후 열심히 농사일을 하여 2년이 지난 후에 주인을 찾아갔다.
“주인님, 북한에 있는 가족이 걱정되어 그러하니 결산을 좀 해주시오” 그 말을 들은 조선족주인은 한해만 더 일을 해주면 더 많이 품삯을 주겠다고 한다. 2년을 뼈 빠지게 일을 했는데 또 일을 하라니?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고 남의 나라 땅에 와서 큰소리 한번 변변히 치지도 못하는 신세여서 다음해에 다시 오겠다고 거짓말을 남기고 겨우 300원을 받은 나는 다시 고향으로 향했다.

나라파괴 주범 김정일

그나마 가족을 먹여 살리게 되였다고 고향집 문을 열었건만 이 일을 어찌하면 좋으랴? 나를 목마르게 기다리던 어머니는 1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고 그 품에 맡겼던 어린철부지 자식은 가정의 파산과 함께 어디론가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아~ 내가 죽일 놈이로구나! 너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게 무슨 애비란 말이냐…….

나는 허둥지둥 조선 방방곡곡을 다 뒤지며 ‘꽃제비’수용소 장부책은 또 얼마나 뒤져보았는지, 길가에 나뒹구는 그 많은 어린이중에서 어떻게 내 딸을 찾을 수 있으랴?

터벅터벅 힘든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들어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벌컥 열리면서 마을보위부지도원이 들어서는 것이다.

“야, 용길이, 너 오랜만이다. 그새 어디에 갔댔어?”라고 하면서 무작정 보위부 구류장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나는 2년 동안 어디에 가있었는가? 중국에 가서 한국인 선교사들을 만난 적이 있는가, 하는 문초를 받고 비판서도 두툼하게 썼다.

그 다음은 노동단련대에 끌려가서 6개월 동안의 고역을 치른 다음 다시는 중국으로 가지 않겠다는 서약을 쓰고 겨우 풀려나게 되였다. 사회에 나오니 친구들도 나를 멀리하고 직장에서는 ‘조국반역자’라고 감시의 눈초리를 피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그 고향땅, 북한에서는 살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또다시 중국으로 2차 탈북을 하여 지금은 한 가정을, 아니 나라전체를 파괴시킨 김정일을 저주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누가 우리 딸을 좀 찾아주세요!!! 누가 우리에게 빼앗긴 삶을 찾아주세요!!!

김용길(1998년 탈북, 현재 중국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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