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표창결혼’ 덕에 세상에 태어났다”

지난 1982년 북한 평안남도 개천시 개천 14호 정치범 수용소에서 출생해 20년 넘도록 수용소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오다 2005년 북한을 탈출한 신동혁(28) 씨가 7일 브뤼셀의 유럽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북한 인권 청문회에서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을 증언했다.


신 씨는 “내 아버지는 1965년에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왔다. 수용소에서는 근로 태도가 좋은 남녀를 짝지어주는데 이를 ’표창결혼’이라고 한다. 나와 내 형은 표창결혼 덕택에 세상에 태어났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정치범으로 낙인 찍혀 수용소에 들어온 그의 부모가 말을 잘 듣고 일을 잘한 대가로 수용소에서 부부의 연을 맺어 형제를 낳았다는 얘기다.


그는 “수용소에서는 ’부모의 죗값을 치르려면 일을 해야 한다’라고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도 노동을 강요했다”라고 증언했다.


신 씨는 “수용소에서 받는 교육은 기본적인 글 쓰기ㆍ읽기와 일하는 법이 고작”이라며 “그곳에서는 사상교육조차 시키지 않는다. 수용소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1998년 어머니와 형이 수용소 탈출을 기도했다가 실패한 뒤 공개처형당하고 본인도 10대 중반의, 아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심한 고문을 받은 아픔을 겪은 신 씨는 비교적 담담하게 수용소 실태를 고발했다.


그는 “수용소에서는 말 한 마디 잘못하거나 행동거지 하나 잘못할 때, 하루 노동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때 가차없는 처벌이 있게 되며 심하면 공개처형을 당한다”라고 말해 청문회 참석자들을 경악케 했다.


신 씨는 또 “그곳에는 부부 사이에, 그리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서로 감시하는 시스템이 돼 있다”라며 “가족 한 사람이라도 잘못했는데 보고되지 않으면 가족 모두 처벌되기 때문에 이처럼 악랄한 감시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수용소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지내던 중 해외 경험이 있는 수감자를 만나 바깥 세계에 호기심을 갖게 됐으며 궁극적으로는 “배가 너무 고파” 탈출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탈북 이후 어렵게 한국에 정착한 신 씨는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으며. 수용소 생활의 생생한 증언을 엮은 수기를 펴냈고 그의 수기는 일본어로 번역돼 일본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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