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수용소 벗어난 내 앞엔 암담한 운명 뿐…








▲김혜숙 씨가 그린 공개처형 장면.
/<사진=시대정신 제공>

“그들의 죄는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14호 보위부 수용소로 건너가 이주민들의 집에서 강냉이를 훔친 것이다. 강냉이를 훔치면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총으로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배고파 죽느니 차라리 강냉이라도 실컷 먹고 죽고 싶은 것이 이곳 이주민들의 처참한 현실이다.”


28년간 북창 18호 정치범수용소에서 수감 생활을 한 탈북자 김혜숙씨의 수기 ‘눈물로 그린 수용소'(시대정신)에 나와있는 공개처형 장면에 대한 묘사다. 김 씨는 자신이 겪은 수용소 내의 끔찍한 인권유린 실상과 탈북, 북송 등의 경험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김 씨는 김정일 정권의 인권 탄압 살상을 고발하고 수용소 내 사람들이 지금도 겪고 있을 고통을 전하기 위해 “아프지만 내가 겪은 경험을 알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펜을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북한의 수용소 이야기는 ‘불편한 진실’이지만 꼭 알려야 할 진실”이며, “독자들은 책의 내용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북한의 2,300만 동포를 위해 한국은 물론 해외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을 밝히기도 했다.

책에는 할아버지가 월남했다는 이유로 13살의 나이에 수용소로 끌려갔던 기억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28년간 고된 노역과 배고픔에 시달렸야했던 경험담이 생생히 녹아있다. 또 수감자들의 모습과 생활상을 그린 그림도 실려있어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김 씨는 “하루라도 쉬는 날이면 온 집안 식구들이 산에 가서 먹을 수 있는 풀은 모조리 뜯어다가 식량으로 모아놓았다”며 “수용소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지 해야 하는 생활력을 길러야만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망태기 같은 주머니를 들고 다니면서 눈에 띄는 풀은 다 뜯어야만 했다”고 굶주림에 시달렸던 시절을 떠올린다.

이어 “며칠 동안 죽만 먹으면 몸이 퉁퉁 부어오르면서 누른자리가 쑥쑥 들어가 점점 맥이 없어 걸어 다닐 수가 없다. 하지만 학교를 안 가거나 일을 안 하면 큰 소동이 일어났다”며 배고픔 속에서도 고된 노역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던 비참한 삶을 증언했다.

뿐만 아니라 빈번한 공개처형을 통해 수감자들의 공포심을 극대화시키고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고 있는 수용소 내 통제 시스템을 고발했다.


“두 번의 유산을 하고, 이유 없이 셋째 아이가 죽어 점쟁이에게 점을 본 동료가 교수형에 처해졌다. 큰 나무 기둥 두 개를 벌려 세워놓고 쇳덩어리에 밧줄을 매어 놓은 다음 반대편 밧줄에는 사람 목을 맬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잠시 후 동료를 끌고 나와 목을 치며 입에 재갈을 물린 다음 밧줄로 목을 둘러맸다. 그러고는 기둥 옆의 쇠뭉치를 손으로 돌려 밧줄을 조였다. 그러자 동료가 바닥에서 붕 하고 뜨더니 곧 죽고 말았다.”

김 씨는 어려운 형편 속에도 온 가족이 석방될 날을 기다리며 보위원에게 꾸준히 뇌물을 바치기도 했다. 그러나 28년 만에 꿈에 그리던 자유를 누리게 됐지만 남편은 병으로 죽고 두 자녀마저 홍수에 잃고 마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다.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진 그는 중국으로의 탈북을 결심한다.


“두만강에 잠시 대기하고 있자 국경경비대 군인이 왔다. 그 군인은 메고 있던 총을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내 손을 잡아 주면서 두만강을 건넜다. 무릎도 안 차는 깊이였지만 누가 와서 뒷덜미를 잡을 것 같아 불안하고 손을 잡아준 경비대원의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거렸다. 하지만 이길만이 살길이라 생각하고 한 50m쯤 되는 두만강을 건넜다.”


그러나 북한 땅을 벗어났다고 해서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북한 여성들처럼 그 또한 인신매매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됐다.


그는 “중국 남자들은 북한 여자들이 오면 무조건 돈을 주고 사갔다. 나이가 많으면 값이 떨어지고 나이가 어릴수록 값이 비쌌다. 소위 말하는 인신매매이다. 여성들은 팔아넘기기 전에 몹쓸 짓을 당하고, 그 여성을 넘겨받은 남성들에게 또 몹쓸 짓을 당하는 등의 고통을 겪고 나서야 마지막에 자신이 살 남자에게로 간다”며 성적 학대에 무분별하게 노출된 북한 여성들의 현실을 고발한다.

김 씨는 이후 단속에 적발돼 북한으로 송환되는 가혹한 운명에 처한다. 그는 책 속에서 북송 당시 겪은 고초를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중국에 갔다가 잡혀오는 여자들에게는 여자 간수들이 높이뛰기를 하라고 시켰다. 왜냐하면 여자들이 자궁에 돈을 감추는데 높이뛰기를 하면 감추었던 돈이 뚝 떨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돈 여덟 뭉치 가운데 4개는 목으로 넘겼고, 4개는 자궁에 넣어두었다. 밥을 먹으면 대변으로 돈이 나오기 때문에 밥을 조절해서 먹어야 했다. 5일 만에 대변으로 돈이 나오자 돈을 재빨리 물로 씻어서 다시 넘겼다. 하지만 냄새 나는 돈을 입으로 넣는 게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냄새뿐 아니라 얼마나 쓴지 하나하나 넘기는데 한 시간정도 걸렸을 것이다. 자궁 안도 얼얼하고 아팠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참고 돈을 지켜야 했다.”


뿐만 아니라 배고픔에 눈이 멀어 자식까지 잡아 먹은 사건 등 모성(母性)까지 앗아간 수용소의 잔인한 실상을 전한다. 저자는 수용소에 재수감된 후 탈출을 감행해 다시 중국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단 돈 2,500원에 팔려가야 하는 기막힌 운명이다.


“한족은 자기가 돈을 주고 사왔기 때문에 나를 마음대로 다루려고 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 사람에게 팔려가고 저 사람에게 팔려가는 탈북 여성들이 겪는 이 가슴 아픈 사연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그러나 순종하지 않고 대들면 다른 사람에게 팔아 버리거나 죽이면 그만이었기 때문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조국 땅에서 살 수가 없어 중국으로 건너왔지만 이런 천대와 멸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밤새도록 여자를 재우지 않고 성적 욕구를 채우느라 여자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았다.”


라오스와 태국 등 제3국을 통한 한국행도 목숨을 건 사투의 연속이었다.


“라오스에서 고무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악어가 덮쳐들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주머니가 악어에 물려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목숨을 걸고 탈북해서 다시 목숨을 걸고 중국을 탈출해야하고, 날카로운 벼랑길, 시체도 찾기 힘든 험한 산길, 모래 속으로 깊숙이 빠지는 사막의 길, 악어가 득실거리는 메콩강, 이런 현실을 극복해야만 한국에 갈 수 있었다.” 

책 속에 담긴 그의 경험담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가 ‘보편적 인권’이냐 ‘내정간섭’이냐 하는 복잡한 정치적 논쟁은 논외로 한다. 단지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의 죄 때문에 28년간을 수용소 내 강제수용되야 했던, 북한 여성이란 이유로 단 돈 몇 천원에 팔려다녀야 했던 그의 운명이 개인의 비극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   


또한 북한 정권이 철저히 감추고 싶어하는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수면위로 꺼내 이슈화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과거 냉전시대 당시 서독은 동독의 인권 탄압사례를 꾸준히 기록으로 남겨 통일 과정에서 정당성을 확보했다. 또한 인권 문제의 이슈화는 소련의 붕괴를 야기한 여러 원인 중 하나였다.


그런 면에서 이 책과 같은 탈북자들의 수기는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 실태를 기록한 명백한 증거가 될 것이며, 북한 인권개선의 도화선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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