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남기관이 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전 노동당 국제비서)을 살해하려 한 사실이 최근 국정원 조사과정에서 밝혀졌다. 북한은 왜 남한으로 망명한 지 13년이 지난 80대 후반의 인사를 굳이 직파간첩까지 보내 살해하려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황 위원장의 측근은 21일 “황 위원장이 최근 미국과 일본을 방문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김정일을 반대하는 대외활동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탈북자들의 대북 정보활동과 북한 민주화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이에 대한 경고 성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이 반 김정일 단체를 조직하고 관련 활동을 강화하자 이에 가장 상징적인 인물인 황 위원장을 살해해 이러한 반북(反北) 활동을 위축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NK지식인연대 서재평 사무국장은 “북한 당국이 탈북자나 북한 민주화 관련 단체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 같다”면서 “간첩들의 살해 임무가 실패했지만 체포 시 황장엽 살해 의도를 공표하는 것도 하나의 임무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달 초 초청 강연을 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 방문에 나선 황 위원장에 대해 북한 온라인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5일 “결코 무사치 못할 것”이라고 위협한 바 있다. 이 매체는 황 위원장을 ‘추악한 민족 반역자, 늙다리 정신병자’라고 비난했다.
황 위원장 주변에서는 최근 탈북자를 중심으로 망명정부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이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과거에는 황 위원장이 망명정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최근 들어서 김정일 와병설이 계속 나오고 사회적 위기 징후가 발생하면서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북한 입장에서 단순히 반북단체와 황 위원장이 참여한 망명정부는 그 성격 자체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본격적인 붕괴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조치까지 준비했을 가능성이 있다.
황 위원장에 대한 살해지시를 최근 북한 정찰국의 대남 도발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정찰총국은 지난해 초 주로 해외공작을 담당했던 ’35호실’과 간첩침투와 관련됐던 작전부, 정찰국이 통합됐다. 책임자는 남북장성급회담 북측단장을 맡았던 강경 성향의 김영철 상장이다.
정찰총국이 천안함 공격을 비롯한 다양한 대남 도발 시나리오를 검토하던 와중에 ‘평소 눈엣 가시처럼 여겼던 황 위원장을 사살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간첩을 직파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천안함 침몰에 북한이 연루됐다면 그 배후로 정찰총국이 지목돼왔다는 점도 이러한 추정에 힘을 보태고 있다.
즉, 정찰총국이 남측에 대한 무력 도발을 꾸준히 준비해오던 와중에 천안함을 공격한 데 이어 요인 암살에까지 나섰다는 해석이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북한 당국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황 위원장이 일본과 미국을 방문했을 때 경호를 대폭 강화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대남 도발 차원에서 황 위원장에 대한 살해를 계획했다면 향후 북한의 추가 도발이 계속될 수 있어 안보 당국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