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밤에 北주민 무엇하나 물으니 가이드는…”

중국인들에게 북한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국가다. 중국인들은 50년대에 발생해 큰 영향을 끼쳤던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6·25전쟁)에 대해 알고 있다. 이 점에서 북한은 중국인들에게 익숙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80년대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하고 난 이후로 중국과 북한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반면 한국과 중국은 가까워지고 있다. 1992년 한국과 국교정상화 이후 ‘한류’(韓流)는 중국을 강타했다. 중국 내 어느 도시에서나 한국 식당과 성형외과, 그리고 한국 여행 광고와 한국 연예인 포스터를 쉽게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중국인들에게 북한은 아직 ‘미지의 세계’다.


이번 여름 친구들과 북한을 여행했다. 4일간의 북한 여행은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우선 아름다운 북한 자연경관을 말하고 싶다. 북한에선 공장은 보기 힘들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아득히 펼쳐진 지평선뿐이었다. 밭과 들, 그리고 산의 구릉 등이 아름다웠다. 

묘향산과 만경대, 그리고 성균관을 비롯한 관광명소들은 모두 깨끗했다. 또한 단정하게 정리정돈 되어 있었다. 우리를 인솔했던 두 명의 가이드는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했다. 알고 보니 평양 외국어대학이나 관광대학을 졸업한 미모와 교양을 갖춘 재원(才媛)이었다. 가이드들뿐만 아니라 운전사들과 식당 여 종업원 등도 모두 예의가 있었다. 흔히 외국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북한 여행은 대체적으로 만족했다. 다만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북한 특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북한에선 마음대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가이드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것은 찍을 수 없다” “저것은 찍어도 좋다”고 말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여행을 왔으니 당연히 사진을 많이 찍어야 되고, 가족이나 지인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 아닌가.

둘째,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었다. 평양 기차역에 도착한 즉시 평양 기차역을 떠나야했다. 대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심지어 호텔에서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매우 이상했다. 어쩔 수 없이 호텔 안에서 정처 없이 혼자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녔다. 호텔은 텅텅 비어 있어, 엘리베이터와 복도에서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미지의 세계 이곳저곳을 누비고 싶었는데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꼭 감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어두웠다. 가이드에게 물었다. “북한 사람들은 밤에 무엇을 합니까?”

가이드는 “밤에는 잠을 잔다”고 답했다. 다시 한 번 “잠을 자기 전에는 무엇을 합니까”라고 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저녁을 먹은 직후 잠을 잔다”고 답했다. 할 말을 잃었다.

셋째, 군인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여행 중 많은 군인을 봤다. 평양 시내에서는 어깨에 소총을 메고 출근하는 듯한 여군(북한의 예비전력 중 가장 핵심적인 조직인 교도대로 추정됨-편집자 주)도 볼 수 있었다. 여군이 맨 소총에 총알이 장전돼 있는지 궁금했다. 

평양뿐만 아니라 묘향산에서도 대열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군인들을 봤다. 남성 군인들은 잘생겼고, 여성 군인들은 예뻤다. 

판문점에서도 군인들을 만났다. 판문점에서 만난 군인은 힘이 세 보였고, 발걸음도 힘차 보였다. 또한 표정은 엄숙하고 진지했다. 차마 그들에게 “Hello”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넷째, 북한 가이드는 어느 여행지이든 가장 마지막에는 북한 역사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북한 지도자들이 이곳에서 무엇을 했고, 무슨 말을 했는지를 끊임없이 말했다.  

특히 북한 가이드는 묘향산에서 김일성·김정일 선물 기념관(국제친선박람관-편집자 주)을 강조했다. 수령님(김일성)은 매우 검소해서 선물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기념관을 짓고 모두 전시했다고 말했다. 또한 가이드는 수령님이 전 세계 인민들로부터 받는 존경과 사랑을 보여줄 수 있어서 매우 좋다고 했다.

평양시내를 관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북한 가이드는 만경대(김일성 고향집)와 만수대를 참관시키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다섯째, 북한을 여행할 때 인내심이 가장 필요하다. 4일간 일정 중 이틀은 기차에서 보냈다.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평양까지는 220km밖에 안 됐지만 기차를 타고 9시간이나 가야했다. 기차에서만 하루를 보낸 셈이다. 중국의 고속철도는 시속 300km이상을 달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낙후된 철도기술과 에너지 부족을 실감했다.   

 

가장 지겹고 불편했던 순간은 신의주에서 세관을 통과할 때였다. 북한의 세관원들이 핸드폰, PC와 사진기를 일일이 조사했다. 그러다 마음에 안 들면 그 자리에서 사진을 삭제했다. 이 조사에서만 약 2시간을 허비했다. 조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승객들은 ‘이런 검사를 당하는 것도 바로 북한 여행의 묘미’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만약 누군가 “북한 여행을 다시 한 번 가고 싶냐”라고 묻는다면 “가고 싶다”고 답할 것이다. 이유는 북한이 ‘신비’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여전히 불가사의한 점이 매우 많다.

북한에 다시 간다면 그저 북한의 일반 국민들과 함께 놀며 그들의 일상생활을 엿보고 싶다. 다만 그렇게 한다면 그 즉시 간첩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게 된다는 점도 이미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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