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BDA 딜레마…2·13 행로는?

▲ 부시 미 대통령 ⓒ연합

미 부시 행정부는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묶인 북한자금(2천500만 달러)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을 거듭했지만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놓였다.

이 같은 상황은 지난 3월 미 재무부가 BDA를 ‘돈세탁 대상기관’으로 지정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다. 당시 미국은 BDA에 대한 제재를 결정하면서도 동결된 북한자금 처리에 대해선 마카오 당국에 일임함으로써 동결된 북한자금이 곧 해제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상황은 꼬일 대로 꼬여 북한자금을 받겠다는 은행이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미 국무부가 재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국내 자산규모 4위 은행인 와코비아 은행을 통한 송금 중개를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 국무부의 의지와는 달리 불법자금 거래를 금지하는 ‘애국법 311조’와 ‘범죄와 관련된 1만 달러 이상의 금융거래를 시도하거나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형법 규정 등에 막혀 사실상 용도 폐기됐다는 후문이다.

결국 BDA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BDA에 가해진 제재를 철회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18개월 간 조사해 북한자금에 대한 돈세탁뿐만 아니라,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이용되는 기업들과 관련된 불법행위까지 확인한 마당에 일방적인 제재 철회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미국 측에서는 BDA 제재 철회를 위해 최소한의 명분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로 인해 현재 미국 측이 제시하고 있는 명분으로 ‘BDA 경영진의 교체’를 거론하고 있다.

‘BDA 경영진 교체’ 전제로 제재철회 가능

지난 3월 몰리 밀러와이즈 재무부 대변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책임 있는 경영진’으로 넘어갈 경우 제재가 철회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도 30일 “BDA의 주인이 바뀌고 새 경영진이 들어선다면 (BDA에 대한) 최종지정이 재고될 가능성은 항상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5월 30일 중국을 방문,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BDA 문제로 인해 송금이 지연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BDA의 불법행위를 방조한 경영진의 잘못이므로 책임 있는 경영진으로 교체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미국 입장에서 BDA 문제 해법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여러 벽에 부딪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사면초가’에 빠졌으니 중국이 퇴로를 열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까지 미국의 이 같은 ‘SOS’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DA를 ‘돈세탁 대상기관’으로 지정한 것이 미국이니, 그 해법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게 중국의 기본 입장이라는 것.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이 같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BDA 회장인 스탠리 아우(區宗傑) 씨가 중국 정협(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중국 정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아우 회장은 현재 미 정부에 제재 철회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경영권 사수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BDA 제재 임시중단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미 외교협회(CFR)의 개리 새모어 부회장은 2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BDA가 앞으로 불법행위에 연루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조치를 취한다면 미 재무부도 이 은행에 대한 제재를 임시 중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이 방법에 대해 아직까지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BDA 해결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힐 차관보는 “북한이 (BDA 문제를) 우리에게 남겨 두고 먼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방문을 허용하고 핵시설을 폐쇄한다면 사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북한의 ‘선(先) 행동’을 촉구했지만 북한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김명길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31일 “우리의 입장은 처음부터 명백했다”며 “BDA 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고 말해 북한이 먼저 행동에 나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BDA 문제가 장기화되자 미 행정부 내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4월 워싱턴 인근 캠프데이비드 산장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회담 석상에서 북한의 행동을 충분히 읽어내지 못했음을 시인하며 “미국이 실수했다(screwed it up)”라고 말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31일 보도했다.

미국내 ‘6자회담’ 통한 북핵폐기 가능성에 회의적 목소리 커져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도 30일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가 이뤄져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미 관계정상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동안 대북정책이 바뀐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언급하지 않았던 ‘CVID’ 원칙을 다시 꺼내들었다.

때문에 BDA 문제가 장기화되고 북한도 ‘선 BDA 문제 해결’을 주장하며 영변 핵시설 폐쇄에 나서지 않을 경우 2.13 합의 이후 외교적 해법에 주력해온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론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커진다. 현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질 수록 그 시간은 앞당겨 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BDA자금 반환 허용 조치는 불법무기 수송을 막기 위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원칙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며 “북한은 이제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굴욕적으로 바꾸도록 할 수 있게 됐다”고 비난했다.

보수성향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존 타식 선임연구원도 “미국은 6자회담을 당장 중단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교적 해결을 강조해온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힐 차관보는 2.13 합의가 타결될 때까지만 하더라도 행정부 내에서 네오콘 세력을 밀어내고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2.13 합의가 BDA에 막혀 있는 동안 북한은 핵폐기를 위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음에 따라 매우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미 행정부는 당분간 BDA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과 2.13 합의 이행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힘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이 계속해서 미국의 퇴로를 열어주지 않고 북한도 기존의 입장만을 고수한다면 부시 행정부로서는 ‘6자회담’ 이외의 ‘또 다른 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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