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대통령 햇볕정책 재평가 불가피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파란만장했던 85년간의 일생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났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남북관계의 역사는 또 한 장이 넘어간 셈이다. 그러나 재임당시 남북화해와 협력을 기치로 6.15 남북정상회담 등을 이뤄내며 ‘햇볕정책’의 시대를 열었던 그의 공과에 대한 논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5년 재임시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으로 이어지는 10년동안 대북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이 유지되면서 남북정상회담, 이산가족상봉, 금강산·개성관광, 개성공단사업 등의 굵직한 남북교류사업 등이 활발히 추진, 진행됐다. 이전 정부에서 남북간 교류사업이 전무했던 상황에서 활발한 남북교류사업은 남북간 신뢰구축에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 햇볕정책, 성과 있었나?

김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처음 추진할 당시 북한이 느끼는 위협만 해소해주면 김정일이 적극적으로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는 전제를 설정했다. 이러한 논리는 현재까지도 민주당과 친북좌파세력들에게 계승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은 개혁개방이 아닌 ‘선군정치’를 앞세우며 핵과 미사일을 통한 권력유지를 선택하고 말았다. 햇볕정책의 출발 자체는 실용적이었고 이념적으로도 중도로 볼 수 있었지만, 결국 김정일을 두둔해야 하는 방향까지 오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이 추진한 햇볕정책이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아 지금까지도 ‘남남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김정일을 “총명하고 솔직한 사람이며 한국과 세계정세를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 “냉전시대 뒤틀림에서 북한을 벗어나게 하려는 끈질긴 개혁가”라고 말해 국민들에게 엉뚱한 환상을 불러 일으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재임 중에 “북한이 실제 핵개발에 나서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정치 안정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김정일 체제와 북한 실상에 대한 심각한 무지가 낳은 결과였다. 특히 햇볕정책이 북한 주민들에 대한 햇볕이 아닌 김정일 정권을 향한 햇볕이었다는 측면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 6.15 정상회담의 빛과 그늘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13일에 평양에 도착해 남북한 정상이 처음으로 직접 얼굴을 맞대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 채택된 6.15 남북공동선언은 이산가족 문제를 포함해 반세기가 넘는 대립과 갈등을 극복할 단초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남북 주민들 모두에게 안겨줬다.

그러나 정상회담 직전에 국민들 몰래 김정일 정권에게 4억 5천만 달러의 현금을 안겨주었던 것이 밝혀지면서 정삼회담의 정당성과 적법성 시비가 불거졌다. 또 6.15 남북공동선언에서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명시한 점도 대한민국 헌법과 국민들이 지향하는 통일방안을 뒤로하고 북한의 고려연방제를 일부 수용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 대북지원사업, 퍼주기냐? 평화비용이냐?

김대중 정부는 5년 동안 쌀 지원 차관 2천24억 원, 경수로 차관 9천271억 원 등 원리금을 돌려받는 차관으로 모두 1조1천601억 원을 제공하는 등 엄청난 대북지원을 실시했다.

또 식량 증산을 위한 비료 제공 3천626억 원과 이산가족 교류경비, 이산가족 정보통합센터 설치 운영, 경의선·국도1호선 연결사업, 금강산 관광객 관광경비 지원 등에 1천725억 원을 북측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도적 대북지원에 대해 식량 문제를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덜어주는 긍정적인 행동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대북지원이 북한 당국에게만 지급되는 것이 아닌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지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결과물 가운데,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은 개성공단으로 대표되는 남북 경제협력 모델이다.

이는 경제 분야에서도 민족 내부의 협력을 도모하는 등의 성과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이후 개성공단도 김정일의 외화벌이에 수단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또한 개성공단에서도 북한의 ‘몽니’가 이어져 일방적으로 통로를 차단하고 남측 근로자를 장기간 억류하는 등 태생적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안보와 인권, 둘 다 놓쳐

북한은 김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에 두차례 서해 도발을 단행하며 군사적 위협을 통한 남한 정부 ‘길들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단호한 대응 자세를 취하기보다 미온적인 태도를 일관해 우리 군의 ‘대적관’에 혼란을 야기하고 ‘안보’ 문제를 소홀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독재정권으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을 때 마다 국제사회와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았던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공개처형, 탈북자 강제 북송 등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했다. 이런 부분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지원이 과연 ‘인도주의’에 충실한 것이냐는 논란을 낳기도 했다.

또, 남북화해조치의 일환으로 2000년 북한에 비전향장기수 63명을 북으로 보냈지만, 재임기간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에 일언반구 언급조차 하지 않은 점도 두고두고 회자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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