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은둔’ 12년…어떻게 살았나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의 범인인 김현희(47) 씨가 11일 12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동안 그의 행적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씨는 1990년 3월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가 확정되고서 보름 만에 특별사면돼 풀려난 뒤 안보 관련 외부 강연과 수기(手記) 출간 등 공개 활동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1997년 5월 전국 공안검사 세미나에 특별강사로 초빙돼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에 대해 특강한 것을 마지막으로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물론 김씨는 1990년 사면되고 나서도 친척집에 살면서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체계적인 관리를 받았다. 실제 안기부는 김 씨가 사면된 직후인 1990년 6월 결혼 문제를 포함해 김 씨가 사회에 정착하는 방안을 담은 ‘김현희 활용 및 정착 지원 마스터플랜’을 작성하기도 했다.

김 씨의 마지막 공개 활동이었던 1997년 5월 특강에서 ‘이제는 예전같이 구애편지 같은 것도 오지 않는다며 죗값을 치를 때까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으나 같은 해 12월 자신의 신변보호를 담당했던 전직 안기부 직원 정 모 씨와 결혼했다.

정부 관계자는 “공안검사를 상대로 한 특강이 김 씨의 마지막 공개활동이었고 그 해 12월 비공개 결혼을 하면서 김 씨의 신변보호도 안기부에서 경찰로 이관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후 서울과 시댁이 있는 경북 일원을 오가며 생활하면서 2000년 아들, 2002년 딸을 각각 출산하는 등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회에 적응해간 것으로 알려졌고 KAL기 폭파사건도 점차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하지만 언론과 소설 등을 통해 KAL기 폭파사건에 대한 의혹이 다시 불거져나오면서 그는 재차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2003년 말 마침 한 방송사가 자택과 친척집 등을 오가는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자 같은 해 11월 중순 이후 잠적했다.

그 후 김 씨는 이날 일본인 납북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 가족과 만나기 전까지 세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김 씨가 가족들과 경북 일원에서 여러 곳을 돌아가며 살고 있다는 설과 서울 서쪽에 경기도와 접하는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는 설 등이 나돌았으나 확인된 것은 없었다.

2006년 8월 2일 한나라당의 ‘대북 정보통’이었던 당시 정형근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김 씨는) 아마 서울, 경기도 서쪽 접경 변두리에 꼭꼭 숨어 있고, 외출할 때에도 (모습을) 안 나타내려고 하는 것으로 듣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7년 KAL기 사건 재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조작 사건이 아님을 재차 확인했지만 김씨의 거부로 조사과정에서 김씨와의 면담조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김씨는 과거 호의적이었던 국정원이 달라져 KAL 858기 폭파사건을 재조사하도록 결정한 것에 대해 강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이어 지난 해 11월 남편을 통해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에게 전한 편지에서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국정원 등이 자신에게 방송에 출연, `KAL기 폭파를 북한 김정일이 지시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고백을 하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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