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10년 걸린 군부장악 김정은 1년만에?

북한이 군(軍) 주요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와 계급 강등, 충성서약을 강요하는 움직임이 감지되자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군부 장악에 오버 페이스(over pace)를 할 경우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아버지 김정일의 군부 장악은 장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됐다. 김정일은 1974년 당 정치위원회 위원에 올라 후계자로 낙점받으면서 당을 기반으로 군으로 인맥을 확대해갔다. 


김정일은 북한군의 보스 역할을 했던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의 측근을 숙청하고, 오진우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자 해외 원정치료까지 보낼 정도로 공을 들였다. 1980년부터는 군과 자신의 집무실을 직접 연결하는 팩스를 설치해 군의 중요 사안을 일일이 보고받으며 군부의 동향을 파악,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김정일의 선군시대를 지탱한 군부 엘리트들도 김정일이 군부를 장악하기 시작한 시점인 1980년대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측근으로 발탁된 조명록은 1980년 공군사령관을 거쳐 1985년 상장, 1992년 대장으로 진급, 1995년에는 총정치국장에 임명됐다. 김영춘은 당시 6군단장을 거쳐 1990년대에 인민군 대장으로 진급했다. 


김일철은 1982년 중장으로 진급한 뒤 해군사령관으로 임명됐으며 현철해는 1986년 중장 진급 후 인민무력부 후방총국장에 기용됐다. 박재경도 1985년 소장으로서 총정치국 선전부장에, 장성택의 친형인 장성우는 1984년 중장 진급 후 1988년 인민무력부 정찰국장으로 기용됐다.


김정일은 자신의 선군정치를 지탱할 인물들을 선발해서 주요 간부로 배치하는 데 10년 이상의 시간을 쏟아 부었다. 사단장급 이상의 주요 군 간부들에게는 매년 선물 공세와 함께 연회를 베풀고, 대규모 장성 진급 인사를 단행했다. 


이와 동시에 군부 엘리트들을 대상으로 충성심 제고를 위해 혁명화와 복권 조치를 적절히 구사했다. 장성택, 김영춘, 리용무, 오극렬 등은 김정일로부터 숙청을 당한 후 복권돼 다시 충성을 다짐한 인사들로 알려졌다. 1992년에는 고위 장성들을 대상으로 공개 충성서약을 받기도 했다.  


이에 비해 김정은은 집권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군부 핵심 인사들을 물갈이하거나 강등 조치하고 있다. 김정일이 김정은 시대를 대비해 군부 충성 확보 카드로 마련해 놓은 리영호 총참모장을 숙청했다. 군부 핵심 간부인 현영철 총참모장과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직위는 그대로 둔 채 계급만 강등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군부 외화벌이 기관의 내각 이전과 야전 핵심 지휘관인 보병 군단장 집단 교체는 군부 기득권 세력에 불만을 증폭시키는 소재가 될 수 있다.


김연수 국방대 교수는 데일리NK에 “김정은은 김정일에 비해 군부 장악능력도 떨어질뿐더러 1년도 안 된 통치시점에서의 대규모 군부인사 조치는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북한군은 장기복무를 하기 때문에 사령관이 바뀐다고 군에 내재돼 있는 불만까지 해소시킬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군부는 최룡해 총정치국장, 현영철 총참모장 등의 군부 라인업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안다”면서 “김정은이 최근 연설에서 ‘당에 충성하지 않으면 필요 없다’고 말한 것도 군부에서 다른 말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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