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暴酒 스타일…“한자리서 위스키 세병”








소설가 조정래 씨가 북한 김정일의 건강문제에 대해 “목소리도 꽝꽝 울리고, 악수할 때 손이 부서질 정도로 힘이 셌다. 전혀 이상이 없었다”고 주장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조정래씨는 김정일의 건강을 증명하기 위해 음주 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는 “(김정일이)포도주를 끝없이 계속 마시는 엄청난 주량을 과시했다”며 건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본지를 비롯해 해외 여러 언론들은 북한 김정일의 심장수술설을 제기하는 등 심상치 않은 정황을 감지해왔다. 김정일은 실제 의료진의 권고로 술과 담배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 첫날 노무현대통령을 마중 나온 김정일의 행동은 건강이상설이 제기될만한 의혹을 충분히 샀다. 기울어진 자세와 누렇게 뜬 얼굴, 갈지자 걸음, 노 대통령을 쫓아가지 못하고 마른 기침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다음날 김정일은 전날과 다르게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회담에 임했다. 그는 자신은 환자가 아니라면서 건강 이상설을 제기한 남한의 기자들을 작가라고 비웃는 여유도 보였다.

이런참에 나온 조 씨의 김정일 음주 관련 발언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물론 조 씨의 발언은 과장된 표현도 섞여 있어 진위는 따져봐야 할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김정일이 포도주 첫잔을 원샷하는 모습만 보고 물러나야 했다.

김정일은 대단한 폭주가, 북한식 폭탄주 즐겨

조 씨의 말이 100% 사실이라고 해도 포도주를 연속으로 마신 것이 김정일의 건강을 전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고 김정일의 음주 버릇을 알고 있는 탈북자들은 말한다.

김정일은 위스키 폭탄주(혼합주를 폭탄주로 부르는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는 안주도 없이 연거푸 술을 들이키는 것을 폭탄주로 칭함)도 앉은 자리에서 몇 병을 마실 정도니까 심각한 지병이 아니라면 포도주는 연거푸 몇 잔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주량에 대해 북한 주민들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주민들은 “장군님 술이 대단하다”며 영웅담처럼 소개하기도 한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주량(酒量)이 도량(度量)’이란 말이 유행했다.

2003년 탈북한 양강도 출신 김계영(가명) 씨는 “김정일은 대단한 폭주가이며 폭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다”고 말했다. 그가 김정일의 주량을 알게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다.

북한에서 한때 화제가 되었던 김정일과 삼지연 군당책임비서의 ‘술 경쟁’ 사건이 있었다.

1999년 6월 삼지연 군당 책임비서 이영화는 당시 삼지연을 찾은 김정일을 만나기 위해 그의 숙소로 직접 찾아갔다. 김정일이 당시 현지 시찰을 오면 도당책임비서가 양강도 백암까지 마중하고, 이후에는 누구도 김정일을 함부로 만날수 없다.

삼지연 군당 책임비서 위스키 세병에 쓰러져

일개 군당책임비서가 사전연락도 없이 김정일의 별장에 접근하자 호위사령부 군인들이 “물러가지 않으면 사살하겠다”고 협박하며 접근을 불허했다.

이때 이영화는 “내가 삼지연군의 주인인데 이곳을 찾으신 장군님에게 인사를 드리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며 1차 초소를 통과해버렸다. 사실 배짱보다는 무모함 그 자체였다. 호위군인들의 연락을 받은 김정일은 “어, 그놈 배짱 있는 놈이네. 한번 보자. 들여보내”하고 명령했다.

이영화를 만난 김정일은 그의 배짱을 높이 칭찬하며 편하게 대해줬다. 이후 2002년 10월 삼지연을 시찰한 김정일은 자신의 초대소에 이영화를 불러들였다.

이영화와의 만남에서 신이 난 김정일은 “너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신다며? 나하고 한번 붙어 보자”고 이영화를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긴장된 이영화에게 호위총국 간부가 몰래 술에 취하지 않는 약을 가져다주며 “실수 하지 마라”고 엄하게 귀띔했다.

이영화는 혹시 실수할까 두려워 혼신의 힘을 집중했다. 그러나 김정일의 폭탄주 앞에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김정일은 “너 한잔, 나 한잔” 하자고 하며 40∼45도 짜리 위스키를 연거푸 마셔 댔다. 각기 세병을 마셨을 때 이영화는 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리에 쓰러졌다.

양주 안주로는 까나리 튀김만 즐겨

훗날 이영화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안주는 까나리(북한에서는 멸치보다 작은 3cm 크기 까나리를 일반적으로 말함) 말린 것뿐이었다. 장군님께서 직접 부어 주시기 때문에 거절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말씀(이야기를)을 하시면서 계속 술을 마셨는데, 이상한 것은 안주를 까나리 말고는 전혀 안 드시는 것이었다.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느라 애썼는데도 세병까지 마시니 더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때까지 장군님은 끄떡도 없으시었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김 씨가 전하는 이영화의 증언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일화로 김정일의 술실력은 양강도 보위부 내에서 널리 회자됐다고 한다.

2006년 양강도 혜산시에서 탈북한 고형진(가명)씨도 “김정일은 대단한 술꾼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고 씨는 “1993년 김정일의 양강도 방문시 함께 술을 마신 양강도당 선전비서의 말에 의하면 양강주(혜산시 구루봉에서 김정일을 위해 특별히 만드는 술, 주정(알콜함유율) 55%) 세병을 앉은 자리에서 마셨는데 끄떡도 없었다”고 말했다.

고 씨는 “특징적인 것은 술을 마실 때 안주를 잘 안 드는 것인데 술상에 올려놓은 안주가 까나리를 사탕가루에 담그었다가 기름에 튀겨낸 것이 전부라 했다. 김 씨와 고 씨의 증언을 종합하면 김정일은 양주를 마시면서 까나리 안주를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고난의 행군(식량난) 시기에도 김정일은 줴기밥(주먹밥)에 까나리 반찬만 먹는다고 노동신문 등에서 선전하기도 했다.

고 씨는 “워낙 북한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신다. 북한사람들이 보통 40%짜리 곡주를 마신다. 남한에서 마시는 소주는 북한사람들에게 너무 순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몇년 전까지 독주를 몇 병씩 즐긴 김정일에게 포도주는 그저 단물(설탕을 물에 탄 것)정도에 불과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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