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후계자 문제 어떻게 돌아가나?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과 여동생 김경희가 협력관계를 돈독히 하고 올해 초 장성택이 복권되면서 북한 후계구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평양에 있는 김경희와 베이징에 있는 김정남이 국제전화를 통해 서로의 신상과 북한 지도부의 권력 동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실이 일본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두 사람은 술에 취해서도 1시간 넘게 통화를 할 정도로 돈독한 사이를 보였으며, 이는 후계구도와 관련 협력관계를 맺은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당과 군의 간부들도 누가 후계자가 되느냐에 따라 자신의 장래가 결정되기 때문에 장남 정남, 차남 정철, 3남 정운의 세 파로 갈라져 공작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는 첩보도 들린다. 장군님의 말 한마디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북한 사회에서 권력의 생리에 민감한 당과 군의 간부들이 세 사람의 동정을 민감하게 살핀다는 것은 상당히 주목할만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만 놓고 보면 북한 후계구도는 안개정국이다.

장성택 노동당 제1부부장이 2년만에 당에 복귀하면서 북한 후계구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정일이 2년 전 최측근인 장성택을 권좌에서 쫓아낸 것이 차남 정철의 후계작업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았기 때문에 그의 복귀가 후계구도에 적지 않은 변수가 되지 않느냐는 시각이다.

장성택 복귀, 후계구도와 연계는 아직 무리

일단 장성택의 복귀는 후계구도 보다는 북한의 개방문제 등 대중(對中)정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을 갑자기 숙청해 수년간 혁명화 교육을 시킴으로써 자신에게 더욱 충성하게 만드는 특유의 용인술을 즐겨 사용해왔다. 따라서 장성택의 복귀가 북한 후계구도의 변수로 보는 것은 아직 성급하다는 판단이다.

장성택이 주도하는 개방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김정일의 신뢰를 예전과 같이 회복할 경우 그의 입김에 큰 힘이 실릴 수는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후계자와 관련하여 김정일의 선택을 바꿀 수는 없다. 후계문제에 있어서 김정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김정일 자신뿐이다.

현 시점에서 굳이 후계구도의 우열을 가린다면 일단 선두에 서있는 인물은 차남 정철로 보인다. 김정일은 스스로 절대권력을 구축하며 봉건군주적 통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자신이 가장 총애한 여자의 아들을 후계자로 지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일의 실질적 아내 역할을 해온 고영희의 자식이 유력한 후계대상이 된다. 고영희의 아들인 정철과 정운 형제 중에서도 장남 정철이 좀더 유력할 것이다.

김정일이 결심하면 정남이 후처 소생이라는 점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미 김정일의 눈 밖에 난 상황에서는 적지 않은 흠으로 보인다.

김정남, 후계구도 투쟁돌입 유력

정남은 일본 밀입국 사건 이후 북한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중국에 머물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김정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김정남이 중국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정철에게는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남이 중국에 장기체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현재 김정남이 후계구도에 뛰어들어 이복동생들과 투쟁할 수 있는 유력한 활로는 ‘중국’이다. 중국을 활용하여 후계투쟁 대열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김정일 정권이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나와주길 바란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김정남을 ‘키워서’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어내는 데 활용할 수 있고, 김정남은 중국을 활용하여 왕위계승 투쟁을 벌일 수 있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측면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 또 김정남 입장에서는 어차피 정철의 후견인인 고영희도 죽었으니 ‘조선의 풍습에 따라 장자가 계승해야 한다’는 ‘명분’을 갖고 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김정남이 장쩌민 아들 등 중국 ‘태자당’과도 친하다는 소문도 있다. 이밖에 김정남이 후계투쟁을 위한 장기전으로 돌입한 흔적이 여기저기 발견된다.

그러나 김정일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은 역시 김정철이다. 권력의 크기는 절대권력자와의 거리에 비례한다. 최근 자유북한방송은 정철을 책임부부장에 임명하고 그를 당의 수뇌부로 모셔야 한다는 문건을 공개했다. 일부에서는 당 고위 간부들이 김정철 배지를 달고 다닌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지난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정철이 후계자 자격으로 오찬에 참석했고, 올해 초 김정일의 중국 방문에 정철이 동행했다는 소문도 있다.

이러한 정보들의 진위여부를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정철의 후계관련 풍설이 떠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후계 승계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김정일 “80, 90세까지도 일 하겠다”

이 시점에서 후계구도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부분은 외신을 통해 전해진 김정일이 올해 생일 담화에서 “70세까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발언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80세, 90세가 돼도 일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김정일은 스스로 삼촌 김영주와 권력투쟁을 벌여 승리했고, 나중에는 아버지도 허수아비로 만들고 권력을 장악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기력이 남아있는 상황에서는 권력을 내놓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따라서 후계작업을 시작해도 그 기간을 최대한 연장할 것으로 보인다. 섭정 기간도 매우 길어질 것이다.

정철의 나이도 그렇거니와 김정일이 철두철미하게 관리해온 독재시스템을 고스란히 이양받기도 쉽지 않다. 그 누구도 쉽게 믿지 않는 김정일이 아들과 측근을 믿고 조만간 권력세습을 단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 체제의 수명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80, 90세까지도 일을 하겠다는 김정일의 선언을 놓고 보면 후계자는 결국 정남, 정철, 정운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에 따라 권력을 스스로 쟁취하는 자의 몫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또 현재 북한이 처한 대내외적 복잡한 사정을 감안하면 후계투쟁 과정에서 북한체제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김정일의 후계구도는 간단하게 정리될 것 같지 않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