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향후 행보는

북한이 9일 핵실험을 전격적으로 단행하고 그 결과에 대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함에 따라 향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김 국방위원장은 지난 7월 대포동2호 시험발사 때는 장기 은둔에 들어갔으며 98년 8월 대포동1호 발사 때는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된 뒤 왕성한 공개 활동을 벌였다.

우선 이번 핵실험으로 미국 등 외부세계와의 대립이 격화되는 양상으로 사태가 전개되면 김 국방위원장은 두문불출하거나 그 동정이 북한언론에 일절 거론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된다.

김 국방위원장은 지난 7월5일 대포동2호 시험발사 이후 40일간 그 동정이 북한언론에 소개되지 않았다.

당시 미사일 발사로 미국 내에서 대북 선제공격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다 부시 대통령도 “외교적 해법 외 다른 옵션들을 갖고 있다”고 밝힌 와중이어서 미국의 정밀폭격에 따른 신변 안전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앞서 지난 2003년 초 핵문제로 북미 간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에도 50일간 동정이 북한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김 국방위원장의 가장 최근의 공개 활동은 지난 5일 “북한군 대대장.대대 정치지도원대회 참가자들을 만났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것이다.

또 98년 대포동1호 발사 때는 5일 뒤 북한언론이 중대발표 형식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재추대 사실을 보도했으며, 9일 뒤에는 북한 정권수립 50주년(9.9) 열병식에 참가하는 등 거리낌없는 공개 활동을 했다.

한편 북한당국이 대포동1호 발사와 핵실험은 성공적이라고 평하고, 대포동2호는 성공 여부를 밝히지 않았으나 한.미.일 주변국들은 실패로 결론이 남에 따라 이번 핵실험 이후의 김 국방위원장의 행보는 대포동1호 때와 닮은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실험 강행 입장을 천명한 10.3 외무성 성명이 나온 직후 북한군 대대장.대대 정치지도원대회 참가자들을 만났다고 조선중앙통신이 5일 보도해 이례적으로 신속한 행보를 보였다.

따라서 이번 핵실험 후에도 ‘핵 보유국’으로서의 위상과 자신의 지도력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비교적 발 빠른 공개활동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오는 10일 노동당 창건 61주년과 오는 17일 ‘ㅌ.ㄷ(타도제국주의동맹-김일성 주석이 1926년 만주에서 최초로 결성했다는 혁명조직) 결성 80돌에 즈음한 김 국방위원장의 행보가 주목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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