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핵실험 도박과 ‘두 가지 함정’

▲ 히틀러(좌)와 김정일

1941년 나치독일의 히틀러는 독소(獨蘇)불가침 비밀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소련을 침공했다.

그는 독일 지배하의 대유럽의 Lebensraum(생존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 평원과 유전지대인 중앙아시아 점령에 눈독을 들였다.

또 이미 만주를 장악한 일본은 히틀러를 흉내내어 대동아 공영권의 젖줄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지하자원이 풍부한 지나지역을 차지하겠다고 진주만 기습을 감행했다.

독일어 Lebensraum을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삶의 공간’ ‘생활터전’으로 평화적이고 낭만적이다. 그러나 ‘생존공간’으로 번역되면 투쟁적이고 전술적인 용어로 둔갑한다.

북한 김일성은 해방 이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세운 날부터 3면이 바다를 끼고 있고, 곡창지대와 막강한 양질의 노동력을 갖고 있는 남한의 병합 없이는 북조선 체제존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북한은 오직 ‘한반도의 하나의 조선’이라는 생존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멀리는 6.25전쟁으로부터 지금의 핵개발까지 온갖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일이 핵개발로 노리는 함정은 무엇일까? 두 가지다.

첫째, 김정일은 90년대 중반 200만명 이상의 집단 아사자가 발생하자 ‘고난의 행군’을 부르짖으면서 자신의 책임을 덮어 버렸다. 경악했던 세계는 원인을 찾기보다 인도주의 차원의 식량 긴급지원에 급급하다 지금은 단순한 해프닝처럼 잊혀져 가고 있다. 현재 북한은 더욱 가혹한 ‘제2의 고난의 행군’이 기다리고 있다. 만일 대량의 집단아사자가 다시 발생할 경우, 이것은 김정일 체제붕괴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될 것이다.

10년 전의 사정과는 너무나 다르다. 더이상 국제적인 동정은 기대하기 어려운 북한 지도부는 결국 남한으로 젖줄을 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존공간 투쟁’밖에 없다. 북한주민들을 불명예스럽게 굶어 죽이기보다는 ‘총폭탄'(총과 폭탄)으로 내몰아 조국해방전선의 전쟁영웅으로 만들려고 할지 모른다. 북한은 그 빌미를 찾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대책이 있는가?

둘째, 김정일이 한반도 전체를 자신의 핵우산으로 덮어 오매불망하는 ‘남조선 혁명’을 완성하는 것이다. 핵실험 이후 국내언론은 북한의 핵실험 자체보다 노무현 정권의 비난으로 도배질하고 있다.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는 아무리 현 정권에게 친북적인 동지적 유대관계를 느끼고 있다 하더라도, 정부의 신뢰도가 남조선 국민들로부터 떨어지는 만큼 자신들의 대남 전략전술의 작전공간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현 정부와 국민간의 이간도가 클수록 북한의 전략전술 환경은 더욱 양호해진다.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은 전통적으로 소위 ‘3대혁명 기지 강화론’에 근거하고 있다. ‘해외 혁명기지’는 1989년에 소련과 동구 공산권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중국이 개방화되면서 공중분해 되어 버렸다.

레닌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지만 정치는 쌀에서 나온다”고 했다. 거의 완전 붕괴된 북한경제가 더이상 내부 혁명전사들의 의식주를 책임질 수 없게 되었다. 군량미 조달능력이 없는 군 최고사령관에 대한 병사들의 충성도는 자발적일 수가 없다. 다시 말해 ‘북한내부 혁명기지’도 문 닫기 일보 직전인 것이다.

가장 어려운 과제로 여겼던 ‘남조선 혁명기지’ 강화는 북한 지도부의 예상을 뒤엎고 가장 성공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의 그릇된 포용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갈짓자 행보는 남한 내 친북세력의 뿌리내리기와 활동영역 확대에 정치적 ‘뇨소비료’가 되고 있다.

분단된 동서독 당시에도 교류협력이 우리보다 훨씬 많았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서독정부조차 친동독 분자들의 서독내 정치활동을 우리처럼 이런 식으로 허용하지는 않았다.

북한의 핵보유 사실에 남한 주민들의 안보위기 의식이 치매 증세를 보이면서, 또 정부가 의도적으로 그 위기를 감추려고 하지만 눈치 빠른 외국기업의 對한국 투자위축은 시간문제다. 국내기업의 해외자금 조달 조건에 까다로워지고 국제사회가 지금 추진 중인 대북제제에 역행하는 자세를 계속 고집할 경우, 한국 역시 북한의 배후세력으로 낙인찍혀 왕따 당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형태의 경제제재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무엇보다 일본이 핵무장을 선언할 때, 우리도 핵주권 선언을 하든가, 아니면 미국이나 일본의 핵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다. 몇달 전 평택 미군기지 이전문제에서 보듯이 남한 내 친북세력의 영악성을 미루어 보아, 그리고 노무현 정부식의 회색적인 대북정책이 앞으로 계속될 경우, 정반대로 우리 스스로가 북한의 핵우산에 엎드려 일본과 미국의 핵위협에 보호를 애걸해야 할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남한이 선군정치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북한의 망언이 오로지 망언으로만 볼 것인지 다시 돌아보아야 할 시기다.

“적의 총알과 식량으로 적과 싸우라”라는 빨치산 ‘현지 보급투쟁’ 전술이 지금 남한에서 성공하고 있다. 그동안 남한이 지원한 현금과 각종 물품은 김정일의 ‘현지보급 투쟁’의 일환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은 북한의 21세기식 빨치산 전술에 스스로 모범적인 제물이 되려 하고 있다.

독재자의 ‘생존공간’ 확보투쟁에 맞설 수 있는 평화적인 방법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경험법칙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숱하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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