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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7일 저녁 기자 브리핑을 통해 김정일과의 면담 내용을 전했다. 김정일의 발언 요지중 핵문제와 관련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1)한반도 비핵화는 여전히 유효(김일성의 유훈)하며, 다만 자위적 차원에서 미국에 맞서야겠다는 것이며 북한이 핵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 핵문제가 해결되면 NPT체제에 복귀할 것이며 IAEA 사찰도 수용하겠다.
2)미국이 우리 체제를 인정하면 7월에도 6자 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우리를 아직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향후 미국의 태도를 지켜봐야 하고 미국과 더 협의해봐야 한다.
3)(북한체제의 안전보장 문제와 관련)다자 안전보장도 일리 있다. 신중 검토하겠다. (6자회담 재개되면 실제 핵문제 타결 지을 수 있는 제안에) 신중히 연구하여 답을 주겠다.
4)한반도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해 장성급 회담이 개최되어야 한다.
김정일 발언 곳곳에 암초, 핵해결 의지 안 보여
김정일의 발언들을 압축하면 ▲한반도 비핵화 유효 ▲ 미국이 북한체제 인정 경우, 6자회담 7월 복귀 가능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장성급 회담 개최 등으로 요약된다.
발언들을 종합해보면 향후 북핵문제가 일견 쉽게 풀려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일의 발언 곳곳에 암초가 숨어 있다.
첫째, 김정일은 “한반도 비핵화는 여전히 유효”하며, “이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지금까지 북한이 계속 해온 주장을 되풀이 한 것이다. 또 북한은 이미 2002년 10월 농축우라늄 핵프로그램 개발로 ‘한반도비핵화 선언’을 무산시켰다. 아무런 의미없는 말이다.
또 얼핏 들으면 현재 자위적 차원에서 핵을 보유하고 있지만 미국이 우리에게 잘해주면 핵을 폐기할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에 암초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은 그동안 북한이 주장해온 ‘조선반도의 핵문제’라는 의미와 연결돼 있다. 간단히 말하면 북한은 ‘조선반도의 핵문제’는 미국의 위협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면 조선반도의 핵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손을 떼고 주한미군의 완전철수를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제는 또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장성급 회담 개최’ 발언과도 연결된다. 북한은 그동안 크고 작은 남북 군사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주한미군 지위변경 문제 등을 들고 나왔다.
이 두 가지 발언은 궁극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연결돼 있다. 따라서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지난 50여년 동안 해온 발언들을 되풀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핵문제 등 군사문제에 대해 김정일은 깜찍한 거짓말로 무척이나 많은 선물을 준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모든 책임 미국에 전가
결국 “미국이 우리 체제를 인정하면 7월 중에도 6자회담에 나올 수 있다”는 대목이 그나마 새롭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발언도 “미국과 더 협의해봐야 한다”는 전제를 달고 있기 때문에 결국 핵문제는 미북간의 문제이며 남한을 배제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5월 13일부터의 미북 뉴욕채널을 통해 북한은 “우리는 이제 핵보유국인 만큼 6자 회담을 군축회담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 역시 한반도평화체제 구축문제와 관련한 미-북 간의 군축문제로 좁혀보겠다는 의미인데, 북한 핵폐기를 목적으로 한 6자회담의 성격에 비춰 볼 때 북한의 주장은 실현가능성이 없다.
또 미국은 이미 ‘북한은 주권국가’ 발언을 한 상태여서 ‘미국이 우리 체제를 인정하면’이라는 전제도 더 이상 진전될 게 없는 사안이다. 따라서 ‘7월 복귀가능 발언’은 다분히 6자회담 개최 전제조건 문제와 관련, 미국의 양보를 더 요구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정장관과 김정일이 면담을 나누는 시각 미 라이스 국무장관이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고는 국제사회에 복귀할 수 없다”고 한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이 6자회담 복귀에 군축문제로의 전환 등 전제조건을 달지 말라는 점을 재경고한 의미로 해석된다.
향후 반미친북 분위기 더 휩쓸릴 듯
종합하면 김정일의 발언 중 최근 한미정상회담에서 등장한 ‘6월 제안’등에 대해서는 ‘신중검토’로 피해가면서 명확한 뜻을 전달하지 않았다. 또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대강 넘어갔다.
주의해야 할 대목은 ‘핵문제가 해결되면, NPT 체제복귀, IAEA 사찰 수용’ 등 김정일의 시원시원해 보이는 해결방안 등이다. 이 대목에서 향후 북핵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가질 수 있다. 전형적인 김정일의 본질 흐리기 수법이다. 핵문제 해결은 6자 회담에서만 풀릴 수 있고, 지금 북한은 6자회담 복귀 전제조건을 문제삼고 있는 중이다.
김정일의 발언을 현상적으로만 보면 마치 핵문제를 적극적으로 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 같지만, 실제 핵해법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온 핵관련 발언들을 표현만 바꿔 마치 미국이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6자회담이 잘 풀려가지 않으니, 미국의 태도변화를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압축된다.
이번 김정일의 발언 중 그나마 실현 가능성이 있는 사항은 이산가족상봉, 8.15 행사 때 비중있는 인물 파견 등 남북관계에 국한된 것밖에 없다.
결국 김정일은 핵문제 등을 북한의 프로그램대로 가져가겠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이번 정장관과의 면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좋은 계절에 초청’ ‘남북정상회담 적절한 시기 개최’ 등을 언급함으로써, 김정일은 최소한 5억달러 이상 챙긴 2000년 남북정상회담처럼 ‘제2의 로또 대박’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일의 노련한 수법으로 보아 남한에서 스스로 갖고 오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 남한에서는 앞으로 그 특사 역할에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오는 8월 15일까지 남북공조를 최대한 활용하며 남한을 방패막이로 미국의 공세를 비켜가려는 전술을 쓸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향후 남한 내부는 더욱 반미친북적 분위기에 휩쓸릴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일은 정동영 장관 면담에서 아무런 알맹이 없는 발언들로 남한 내부여론을 다시 둘로 나누고 있다.
DailyNK 분석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