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한반도 정세 완화’ 의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일 중국 양제츠(楊潔지<兼대신虎들어간簾>) 외교부장을 만나 “최근 한반도 정세가 일부 완화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말해 주목된다.

김 위원장이 중국측 고위 인사를 만나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에 불만을 표시한 사례는 있지만 “정세 완화”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발언은 최근 호전되고 있는 북.미관계의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방코 델타 아시아(BDA)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북한은 미국 부시 행정부가 그동안 펼쳐온 대북 강경 정책을 바꾸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평가하면서 만족감을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달 21일 북한이 BDA 동결자금의 해제 작업이 완료되기 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실무 대표단을 초청한 것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 정책의 전환 의지를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여기에 부시 행정부가 그동안 막아오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방북을 허용한 게 북한측의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정책의 전환을 앞장서 비판하고 있는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월스트리트 기고문을 통해 힐 차관보의 방북은 대북정책에 관한 한 ‘부시 행정부의 종언과 클린턴 시대로의 완전한 복귀’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은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에 대한 북한 최고지도부의 평가를 대외적으로 알린 셈”이라며 “핵문제 해결에 결정적으로 부족했던 요소인 북미간 신뢰라는 동력을 채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에 따라 힐 차관보가 최근 북한을 방문했을 때 면담한 북한측 인사의 지위와 관계없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논의했는지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김 위원장의 ‘정세 완화’ 평가엔 힐 차관보의 공개되지 않은 방북 내용도 포함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신임 중국 외교부장과 만남에서 이 같은 언급을 함으로써 동맹인 중국의 입지를 높여주는 계기가 된 점도 주목된다.

BDA 문제 해결 과정에서 주가를 올린 러시아와 달리 중국은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함으로써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나 6자회담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정도였던 만큼, 김정일 위원장과 양 외교부장간 면담 결과를 통해 중국이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위상을 회복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 외교부장을 직접 만나 한반도 정세의 호전을 언급한 만큼 양 부장이 북한에서 들고 나올 보따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와 전체회의, 외교장관 회담의 일정을 조율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면담 석상에 외교 정책 결정의 실권자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배석한 것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양 외교부장에게 “각 방(당사국)은 당연히 초기단계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앞으로 ‘2.13합의’의 초기단계 조치 이행에 청신호를 보낸 것이다.

김 위원장의 이 말에도 미국이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취해야 할 조치를 해야 한다는 ‘포괄적 해결’의 입장이 전제돼 있는 것은 물론이다.

김 위원장의 ‘한반도 정세 완화 기미’라는 판단의 핵심 기준이 북미관계일 것이라고 보면, “당연히” 초기단계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는 김 위원장의 말은 지금까지 미국측의 성의에 화답해 북한도 초기단계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의사를 미국에 공개적으로 재확인하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영변 핵시설의 폐쇄를 담은 초기이행조치와 다음 단계인 불능화까지도 빠르게 진전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포기할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2.13합의’를 체결했을 것”이라며 “미국의 상응조치만 있다면 불능화 단계까지는 어렵지 않게 진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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