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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1시 30분. ‘미그’기로 추정되는 북한군 전투기 2대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남측 영역으로 내려왔다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갔다. 다시 돌아갈 때까지 걸린 시간은 약 2분 가량. 남한 공군의 무선경고방송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13일 새벽 2시 30분. 북한 경비정 1척과 소형어선 8척이 NLL을 넘어 무더기로 남하했다. 남측의 경고방송에 북한 경비정은 “상황을 알고 있으니 발포하지 말라”는 묘한 의미가 담긴 응신을 보내고는 오전 5시 46분 ~ 7시 30분 사이 차례대로 북한으로 되돌아갔다.
최근 김정일의 군부대 시찰이 부쩍 늘었다. 북한 선전매체들은 지난 10일~13일 사이 김정일이 군 수뇌부를 대동하고 제847군부대, 제802군부대, 제1337군부대, 제1188군부대를 시찰했다는 소식을 잇달아 내보냈다.
그러면서 “최고사령관 김정일 동지께서 제****군부대를 시찰하시었다”라고만 말하고 구체적인 날짜를 밝히지 않았다. 북한이 김정일의 군부대 시찰 소식이 집중적으로 보도할 때에는, 정말로 그 시기에 그 부대를 시찰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한데 모아서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정세의 긴장감을 높이려는 것이다.
내외부 단속과 김정일 과시용, 복합적으로 얽혀
잇단 NLL 침범과 부쩍 늘어간 김정일 군부대 시찰 소식에 대해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는 “세상의 관심이 쏠리는 때에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켜 보려는 김정일의 상투적인 수법”이라고 해석했다.
황장엽 전 비서는 남한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는 물론이고 남북간에 특별한 긴장 관계가 없을 때에도 군부에 전화를 걸어 “요즘 좀 조용하다, 한번 시끄럽게 하라”고 지시해 비무장지대 월선이나 총격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하곤 했다고 회고했다.
이번에 군사적 긴장상태를 조성하고 있는 것도 11일 종료된 제5차 6자회담과 이달 15일부터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와 결코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북한 전투기가 서해 NLL을 넘은 것이 2003년 2월에 이어 처음이다. NLL과 가장 근접한 군용비행장인 황주비행장에는 수십 대의 전투기가 편대를 지어 24시간 대기상태에 있다. 현재 북한 전투기들은 전투용 항공유 비축분 외에 훈련용으로 쓸만한 여유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굳이 서해상으로 쭉 날아갔다가 남하해 다시 북한으로 돌아오는 ㄷ(디귿)자형 항로로 돌아간 것은 무력시위의 성격이 다분하다.
NLL은 분쟁지역이라고 주장하는 의미도 있고, 평화롭게 APEC을 개최하고 있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과 냉전이 종식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는 의미도 있다. 6자회담이 어긋나면 무력분쟁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도 있다. 이렇게 간간히 긴장을 조성해야 자신의 몸값도 높아진다는, 김정일의 개인적 계산도 깔려있다.
한편, 북한의 도발은 최근에는 남한 정부를 자신의 편으로 묶어 세우는 의미도 갖고 있다. 똑바로 행동하지 않으면 남한 정부가 최고의 치적으로 앞세우는 평화번영정책을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협박이자, 남한 정부의 인내심을 최대한도까지 시험해보려는 것이다. 이러한 도발에 정부가 단호하지 못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남한 일각에서 제기되면, 남남갈등도 더욱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북한은 NLL침범과 같은 도발행위를 하고 나서, 그것을 대체로 ‘남측의 도발’이라 덮어씌운다. 군중시위를 열기도 하고 ‘준전시’와 같은 군사적 긴장상태로 몰아가곤 한다. 그렇게 하여 남북간의 화해무드에 북한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사상적으로 해이해지는 것을 막는 효과 또한 있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