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프로파간다’의 덫에 걸린 한국언론

김정일은 선전(propaganda) 전문가다.

‘선전’은 있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홍보’(publicity) 또는 PR(public relations)과 다르다. 선전은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거나 위장하여 알릴 때도 쓰인다. 순전히 ‘보여주기 위한 알림’이라는 뜻을 내포한 정치용어이기도 하다.

공산주의 국가의 정치선전은 ‘프로파간다’라는 용어로 쓰는 것이 정확하다. 과거 서방세계는 공산주의 국가의 정치선전만을 개념화하여 ‘communist political propadanda’로 특정화하여 사용했다.

이번 김정일의 방중(訪中)과 개혁개방 지역을 둘러보는 행위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라는 용어가 딱 맞아떨어진다.

개방지구 순방은 정치 프로파간다

김정일은 2001년 1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상하이 푸동 지구를 둘러보며 ‘천지개벽’이니, ‘신사고’니 하는 말을 남겼다. 당시에도 한국언론은 김정일이 ‘경제학습’을 하고 있다며 상하이 방문을 중국식 개혁개방을 준비하는 징후라고 썼다.

김정일이 광저우와 선전을 방문하자 13일 한국언론은 또다시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를 들먹이며 ‘경제학습’을 하고 있다고 썼다. 6년 전 보도와 비교하면 어찌 그리 똑같은지 모르겠다.

6년 전 뿐만이 아니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김정일은 네 번 중국을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한국언론에는 북한의 개혁개방 이야기가 나왔다. 솔직히 이런 보도를 보면 하품밖에 나오지 않는다. 김정일이 중국에서 한 발언과 평양에 돌아가서 해온 실제 행위들을 보면 완전히 정반대라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천지개벽’과 ‘신사고’를 말하지만 돌아가서는 선군정치, 우리식 사회주의, 핵무기 개발, 강성대국을 외친다.

우리 언론들은 김정일의 ‘말’과 ‘행동’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말은 그야말로 말뿐이다. 셰익스피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이란 ‘공기(空氣)의 진동’일 뿐인 것이다.

김정일은 지난해 10월 10일 당창건 60년을 기해 배급제를 재개한다고 했고, 평양의 NGO들을 내쫓았다. 이는 김정일이 우리식 사회주의를 강화하겠다는 너무도 뚜렷한 ‘사실’이다. 또 1월 1일 신년공동사설에서도 확인된 것이다. 우리식 사회주의 강화와 개혁개방은 양립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도 우리 언론들은 북한도 개혁개방으로 나갔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마치 사실일 것으로 착각하고 기사를 쓰고 있다. 6년 전 김정일의 방중과 이후 선군강화와 핵개발 등을 보면 답은 뻔한데도, 희망사항(wishful thinking)과 사실(fact)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6자 회담 복귀, 중국과 흥정할 것

그러면 김정일은 왜 베이징에 곧바로 가지 않고 개혁개방 지구를 먼저 돌아보는 것일까.

지금 김정일은 위조달러, 마약, 의약품 밀매 등 국제범죄행위로 코너에 몰려있다. 중국도 마카오 은행을 조사했고, 북한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김정일은 6자회담과 아무 상관이 없는 미국의 금융제재를 풀라며 회담에 나가지 않겠다고 뻗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김정일의 범죄행위를 두고 중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김정일은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고 국면을 전환시키려면 우호국인 남한과 중국정부를 ‘안심’(安心)시킬 필요가 있다. 그것이 ‘나는 지금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가려 한다’는 쇼를 하면서 위조달러, 핵문제도 마치 전향적으로 풀어갈 수 있다는 장면을 ‘보여주려 하는’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김정일의 행동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김정일의 갑작스런 방중은 미국이 김정일의 범죄행위와 6자회담 복귀를 중국에 압박한 결과로 보인다. 또 김정일은 후진타오의 방문요청에 응하면서 6자회담 복귀문제를 두고 중국과 흥정을 하면서 경제지원을 타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성사 때도 중국의 ‘매파역’을 인정해주면서 중국으로부터 경제지원을 챙겼다. 이후 김정일의 방중은 6자회담에서 중국의 의장국으로서의 국제적 지위를 계속 인정해주는 대신 경제지원을 챙겨왔다. 이번 김정일의 방중 역시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언론, 김정일의 유도에 말려들어

지금 학계나 언론에 북-중관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애널리스트는 거의 없다. 중국 공산당과 북한 노동당간의 당대 당 관계에 대한 연구도 매우 드물다. 현재 이 분야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비서를 지낸 황장엽 북한민주화동맹 위원장이 남한 내에서 거의 유일하다.

황 전 비서는 김정일의 방중 소식을 듣고 “김정일이 6자회담 복귀문제를 두고 중국과 흥정하면서 자기 몸값을 불리려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몸값을 불리고 지원을 타내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후진타오-김정일의 회담 결과를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김정일 방중의 실제 목적은 북한의 개혁개방과는 아무 상관없는 위조달러, 6자회담 복귀문제와 중국의 지원을 둘러싼 흥정이 될 것임은 거의 틀림없다.

김정일은 선전분야에서부터 출발했다. 영화, 가극 등을 만들면서 정치수업을 쌓았고, 이 분야에서 김일성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았다. 선전이 자신의 전공이고 또 선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한국언론은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김정일에게 끌려 다니고 있는 셈이다.

김정일의 개혁개방 지구 순방을 보면서 언론이 똑똑해지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다.

손광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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