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극단적인 개인독재 국가다. 따라서 최고지도자인 김정일이 치매를 앓고 있다면 그것이 북한의 국내외에 끼치는 정치적 파급은 매우 클 것이다. 북한의 통치 기구들은 밑바닥부터 흔들릴 것이고, 주변국의 대북정책도 근본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치매는 북한문제 전문가나 보도기관에게도 큰 사건이다. 북한이 정책전환 움직임을 보이거나 무엇인가 대(大)사건을 일으켰을 때 인용했던 ‘김정일에 의한 결정’이라든가, ‘김정일의 의도’ 등의 고정 문구를 지금까지처럼 안일하게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기존의 북한 분석도 일거에 좌표축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전문가나 보도기관 입장에서는 필시 큰 고민에 휩싸일 것이다.
이러한 악몽 같은 상황은 결국 현실화 됐다. 지난 6월 24일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충격적인 내용의 국회 증언을 했다. 국회 정보위원회(비공개회의)에서 ‘김정일 치매설(說)’을 제기한 것이다. “뇌졸중 이후 김 위원장이 그 후유증으로 기억력이 떨어지고, 현장 시찰 등에서 논리적으로 안 맞는 얘기를 하곤 한다”(조선일보 7일 7일자 보도)
그야말로 초대형 급의 폭탄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각국 전문가나 보도기관의 반응은 그다지 뜨겁지 않았다. 아마 마음 속 어딘가에서 ‘설마’라는 반신반의(半信半疑)와 ‘믿고 싶지 않다’는 현실도피 심리가 작용한 탓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정확한 분석이나 보도를 할 수 없다. 한국 뿐 아니라 주변 각국 정부는 이미 이 같은 사실에 대한 공통인식을 바탕으로 대북정책을 독자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이 첨예하게 드러난 것은 한국 ‘천안함 격침 사건’에 대한 한·미·일 3국과 중·러 양국간의 입장차다.
사실 ‘김정일 치매설’과 관련해 말하자면, 필자는 이미 3년 전부터 잡지나 저서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이같은 사실을 주장한 바 있다. 첫 주장은 ‘김정일이 초기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있다'(正論, 2007년 11월호)를 통해 제기됐다. 필자가 3년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한국 정부가 최근에서야 공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천안함 격침’ 사건과 관련성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어찌됐건 필자는 3년 전 김정일의 치매는 김(金)왕조 내부 깊숙한 곳에 장착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라고 평가했다. 동시에 김정일의 치매를 계기로 북한의 의사결정 기구가 급변하고 권력통치 구조가 불안정해지는 현상을 주시했다. 북한 내부 분석은 물론 대북정책의 근본적 재검토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나 보도기관들의 반응이 극히 미약했다. 오히려 김정일 치매설을 ‘농담’이라고 일축하고 의견 자체를 무시하는 전문가(일본정책연구센터 ‘에오카류이치 리포트 No.5, 2007년 10월 22일)도 있었다.
전문가마다 정보 수집과 분석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므로 필자는 굳이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종류의 사실은 시간의 경과가 저절로 우열을 결정해 주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정일의 치매를 전제로 북한에 대한 정세 분석과 정책 입장을 서둘러 전환하는 일일 것이다.
김정일의 치매 현상은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다. 여기에 북한 통치기구는 개인독재 체제로부터 개인비서실 통치로 변질됐고, 뇌졸중 이후로는 파벌간 균형을 이룬 집단지도체제로 이동했다. 집단지도체제가 한계에 직면한 작년 3월경부터는 후계자 문제(김정은의 후계 내정)를 둘러싸고 파벌 간의 균형도 깨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통치 구조의 복잡한 변화가 북한 내 정책 방향을 혼란스럽게 해 화폐개혁의 강행이나 천안함 격침 사건과 같은 폭주를 낳고 있다는 데 있다. 또한 김정일이 정치적인 판단력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으로는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북한의 의사결정 구조를 복잡하게 하고 있다. 김정일이 죽는다면 의사결정 구조 자체는 단순화되겠지만, 후계자 문제를 포함한 권력투쟁은 극히 불투명해질 것이다.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3년 전에 움직이기 시작한 시한폭탄(김정일 치매증)의 바늘이 이제 곧 폭발의 시각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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