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상설이 제기돼온 김정일이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62주년을 맞아 김일성종합대 팀과 평양철도대 팀간 축구경기를 관람했다고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이 “리재일 노동당 제1부부장을 비롯한 당중앙위원회 책임간부들과 관계부문 일꾼들과 함께 축구경기를 관람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관람 일시와 장소는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 매체에서 김정일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도된 것은 지난 8월 14일 북한군 제1319부대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이후 51일 만이다.
‘김정일 건강이상설’이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되던 기간에 북한 매체들은 김정일이 외국 지도자들에게 축전을 보내고, 북한 공장 근로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는 등 ‘김정일의 건재’를 암시하는 동정만을 보도해왔다. 그러다 이번에 대학생 축구경기에 김정일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정일이 51일만에 대외활동을 재개한 것은 역대 두 번째 최장 기간이다.
김정일은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87일 동안 북한 매체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었다. 당시 북한 매체들은 김정일이 부친 김일성 사망 이후 ‘100일 애도기간’을 정해 근신했다고 보도했다.
또 김정일은 200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1월10일)와 미국의 이라크 전쟁 발발(3월20일)이 맞물렸던 시기에 49일 동안 모습을 나타내지 않기도 했다.
그해 2월 12일 김정일이 주북 러시아 대사의 초청으로 러시아 공관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한 것으로 보도된 이후 50일째 되는 날 김형직군의대학을 시찰한 것으로 북한 매체들이 보도한 바 있다.
당시 김정일이 미국의 표적 공격을 피해 자강도로 피신했다는 설(說)과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해 새로운 북중관계 정립과 이라크전쟁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떠돌기도 했다.
북한매체에서는 같은 해 9∼10월 또다시 40일간 김정일의 공개 활동에 대한 보도가 중단됐다.
당시 북한 정권수립 55주년(9월9일) 열병식에 참석했던 그는 10월 20일 북한군 제534군 부대 산하 농장을 방문한 것으로 조선중앙통신에 보도됐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김정일의 3번째 부인 고영희가 유방암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4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정일 김대-평양철도대 축구경기 관람’ 소식은 과거 ‘은둔’을 마친 김정일의 첫 행보에 대한 북한 매체의 보도와 비교해 볼 때 김정일의 방문지로서 적합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탈북자 박 모 씨는 5일 ‘데일리엔케이’와 통화에서 “김정일이 김대 창립 행사때 직접 방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김대 창립 50주년 행사(1996년)에 잠깐 얼굴을 비친 적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는 ‘꺾어지는 해’(5주년, 10주년인 해)도 아니고 평범한 해여서 참석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이번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는 닷새 앞으로 다가온 조선노동당 창건기념일(10월10일)을 기점으로 ‘김정일 건강이상설’이 더욱 증폭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조치’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탈북자 최 모씨는 “김정일이 아직 거동이 불편하거나 뇌졸중 후유증을 겪고 있다면 당창건 기념일에 모습을 나타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외부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당창건 기념일을 피해 미리 주민들에게 김정일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 북한 매체가 보도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외부 사람들은 북한당국이 외부세계에 대응하는 것만 중요시하는 줄 알지만, 실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내부 민심”이라며 “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김정일 건강이상설이 내부에서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이 더 큰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