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정권 붕괴후 ‘과거사 청산’ 어떻게 하나?

얼마 전 필자는 폴란드에 발표를 하러 갔다 왔다.

내가 참가한 토론회는 공산주의운동사를 다루었는데, 바르샤바국립대학교 산하 ‘민족기억연구소’가 후원하였다. 이 연구소는 1939년 소련, 독일 침략부터 1989년의 민주혁명까지 폴란드에서 나치 통치와 공산정권의 정책관계 자료, 특히 공산정권 당시 경찰의 테러와 민중항쟁 관계 증빙자료를 수집, 연구하는 기관이다.

연구소는 정부 후원과 개인 성금을 이용해서 잡지와 자료집 그리고 연구도서를 발표하고, 폴란드의 민주항쟁을 소개하는 전시를 많이 했다.

필자는 이 훌륭한 기관을 보니까 다시 한번 북한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북한 주민들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이처럼 자세하게 조사, 연구할 날이 언제 오겠느냐는 질문에는 그 정답을 알 수 없다. 유감스럽지만 북한의 경우에는 이러한 대규모 조사와 연구가 힘들어 보인다.

중요한 것은 증거 문제이다. 북한 정권의 범죄를 증명하는 서류는 보장될지 모른다. 그러나 유감스럽지만 서류용지는 불붙기 쉬운 물질이다. 그래서 혼란스러운 과도기에 보위원들을 비롯한 여러 간부들은 기회를 봐서 자신의 옛날 잘못이나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범죄를 증거하는 서류를 많이 없애버릴 수 있다. 물론 평양 중앙부위부의 기록이 다 불탄다고 하더라도 다른 곳에 남아 있는 자료가 김부자 독재의 본질을 잘 보여 줄 수 있다. 그러나 증거 일부의 소멸은 완벽한 조사와 객관적인 평가를 더 어렵게 할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북한 정권이 저지른 범죄의 규모이다. 지금 북한에서 정치범 수용소에서 갇힌 사람들은 15-20만 명으로 추산된다. 지난 60년 동안 북한에서 정치범으로 체포된 사람들의 숫자는 50만 명 이상으로 추산할 수 있다. 테러와 숙청이 1960년대에 절정에 달했는데, 이 사람들은 대부분 죽은 지 오래되었다. 그들의 가족이나 후손들이 살아 남아 있겠지만 체제가 무너진 다음에도 혼란스러운 정치, 사회 상황에서 이러한 조사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의지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한 건수가 100만개 정도에 달한다면 모든 것을 조사할 수도 없다. 특히 자료도 부족해서 목격자들이 거의 다 죽어버린 1950년대에 학살된 사람들의 리스트까지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흡수통일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고 이북 땅에서 친중국 위성국가나 또다른 군사정권이 생긴다면 민주화가 올 때를 더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데, 김왕조의 테러에 대한 자료와 목격자를 찾기는 더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과거 청산’이 제대로 안 되는 이유

그러나 제일 중요한 도전은 증거가 없다는 것이나 탄압 정책의 규모가 아니다. 제일 큰 도전은 통일 후 통일사회의 이러한 과거 청산에 대한 입장이다. 현 단계에서는 우리의 입장이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세계의 경험을 보면 옛날 범죄가 다 노출될 것으로 낙관하기 어렵다.

지난 20세기는 전례 없는 대중학살의 시기였다. 가장 악명이 높은 사례를 보면 독일 나치의 테러와 침략, 중국의 문화혁명과 기근, 소련의 스탈린 숙청과 기근, 일본의 대동아 침략 등이다. 그래서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다루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 사회가 많았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에 옛날에 저지른 죄를 모두 인정한 사례는 사실상 독일밖에 없다.

1945년 이후 서독도, 동독도 나치와는 완전히 단절하고 나치의 범죄에 대해 책임 있는 자들에게 중벌을 주었다. 나치 범죄에 대한 역사 자료도 완전히 공개했다. 지금도 독일에서 나치 정책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책이나 교과서가 나오지 못한다. 1930년대 초 나치정권의 등장을 제1차 대전 이후 독일에 부과한 민족멸시에 대응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를 구실 삼아 “나치를 이해하자”고 하는 독일 정치인이나 지식인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독일은 예외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던 나라를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에서는 제2차 대전 때 일본군이 저지른 범죄를 무조건 인정하지 않고 일제의 아시아 침략을 무조건 비난하지 않는다. 일본의 침략이 당시의 서양 제국주의에 대한 정당한 반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중국 침공과 한일합방까지 “중국 사람과 조선 사람들이 원했던 일”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 학자들이 없지 않다.

다른 나라의 경험을 보면 이러한 경향이 더 심하다. 일제나 나치에 희생된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많은데, 중국과 구소련의 경우 학살된 사람 대부분이 같은 나라 국민들이다. 하지만 옛날에 저지른 범죄를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의 경우 아직도 대약진운동과 무식한 농업정책에 의해 초래된 1960년대 초의 대기근을 정부의 책임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대기근의 있었다는 사실마저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수천만 명의 중국인들을 학살하거나 아사시키고 나라의 농업을 마비시킨 모택동의 독재를 아직도 중국에서 합법적이며 진보적인 정권으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문화혁명 시기의 학살과 고문은 모택동의 잘못이 아니라 ‘모 주석’의 교시를 왜곡한 4인방 때문에 생겼다고 주장한다. 물론 문화혁명 무렵 발생한 테러에 대한 자료는 압도적으로 비밀로 남아 있고,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다루는 책을 발간하지 못한다.

구소련을 보면 더욱 놀랍다. 1990년대 초 소련체제가 무너졌을 때 스탈린의 테러정책에 대한 실제척 진실과 자료가 많이 공개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러시아 사회에서 스탈린에 대한 평가가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체제의 복구를 원하지 않는 청년층 가운데서도 스탈린이 ‘위대한 지도자’이며 그의 희생자 대부분이 ‘배신자들’이나 ‘잠재적 배신자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 러시아에서는 민족주의가 강해지고 있는데, 스탈린의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과 숙청을 “국내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정당화하고, 그의 대외 침략 행위를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러시아 매체를 보면 소수의 민주 우파 언론을 제외하면 스탈린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인 것이다. 1백만 명을 사형장에서 학살하고 2백만~3백만 명을 수용소에서 옥사시키고, 4백만~6백만 명을 아사시킨 스탈린 정부를 살인적인 집단으로 보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외국을 침략한 경우나 독재정권과의 협력 문제를 솔직하게 다룬 사례도 그리 많지 않다. 나치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독일 사람들도 이같은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악명 높은 ‘WaffenSS’ 부대나 나치당 간부들, 즉 극소수라고 주장한다. 나치의 테러행위에 대한 지지가 일반 독일 사람들 가운데서도 제법 많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들 나라의 경우, 정부와 여론 그리고 언론은 과거 국내외 테러의 규모를 부정하거나 이 테러에 대한 책임이 극소수의 ‘나쁜 사람’에게만 있다고 주장하는 편이다. 테러 정책이 주민들로부터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는 것은 민족의 정체성에 심한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과거는 이들 사회가 기억하기 싫고 왜곡해야 한다는 것이다.

1945년 이후 독일에서는 패전과 사회개혁으로 인해 나치와는 아무 관계 없는 정권이 출현했으니, 나치 독재가 순간적인 ‘궤도 이탈’이라고 볼 수 있었다. 때문에 나치에 대한 비판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일본이나 러시아의 경우에는 현 정권이 범죄와 학살을 저지른 과거 정권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으니, 이러한 비판을 하기 어렵다. 중국의 경우에는 현 정권이 1950-60년대 수천만명의 양민을 학살한 정권의 직접적인 후계자이니까 비판은 거의 불가능하다.

구 공산권에서 과거 청산을 제일 잘한 나라는 헝가리, 폴란드, 동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세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이들 나라에서의 과거 공산권 체제는 소련군에 의해 부과된 ‘강제수입품’으로 볼 수 있다. 즉 공산정권을 소련의 위성정권으로 볼 수 있고, 그 정권이 저지른 범죄를 외부세력에 의한 짓으로 설명할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범죄에 대한 솔직한 인정은 민족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이들 나라에서는 공산주의 독재가 비교적 엄격하지 않아서 테러의 규모도 크지 않았다. 또 공산정권에 적극적으로 항쟁할 수는 없었지만 정권에 대한 협력을 피하는 방법이 있었다. 폴란드나 헝가리 같은 나라에서는 부역자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들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가능했다.

셋째, 이들 나라에서는 공산독재 말기에 민주화 세력이 형성되어서 공산정권 붕괴 후 이 세력 출신들이 엘리트층을 대체했다. 그래서 이들 국가의 정치, 문화, 교육 분야 지도계층에서는 공산당 간부 출신들이 그리 많지 않다.

김父子 테러 정밀조사는 반드시 필요

그러면 북한은 어떤가?

유감스럽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필자가 여러번 주장해온 바와 같이, 향후 북한의 변화와 관련한 어떤 시나리오도 간부계층 출신이 특권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피해 보인다. 북한이 중국의 위성국가나 다른 형태의 군사독재가 될 경우 집권계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체제 붕괴와 민주화에 의해 초래된 흡수통일의 경우에도 지식과 경험을 거의 독점한 간부계급 출신들이 사회 진출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간부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김부자의 범죄에 대한 조사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대다수의 간부들은 원래 이러한 범죄행위와 관계가 있었다. 또 드물게 이러한 관계가 전혀 없는 간부들의 경우에도 김부자의 범죄에 대한 솔직한 인정은 그들의 기반을 일정하게 파괴할 수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남한 출신 정치인들까지 이러한 진실을 숨기려고 노력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김부자 정권은 세계 역사에서 전례가 거의 없는 잔혹한 독재일 뿐만 아니라 또 그 집단이 매우 오랫 동안 통치했다. 세계에서 북한 주민들만큼 스탈린주의 통치하에 50여년 동안 살아온 주민은 없다. 이 때문에 김부자 정권에 협력한 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 정치, 사회, 군사, 문화, 교육, 행정 등 모든 부문에서 조금이라도 행동한 사람이면 엄격하게 말해 ‘친김파’로 볼 근거가 있는 것이다.

보위부 정보원(밀정)의 문제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북한에서는 인구 적어도 50명당 정보원 한 명은 있다. 2천3백만 명의 북한 사람 가운데 정보원이 15만 명에 달한다는 뜻이다. 정보원으로 지내다 그만둔 자들을 포합하면 20-30만 명이라고 생각된다. 보위원들이나 안전원(경찰)들을 포함하면 국가테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40-50만 명 정도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자세하고 객관적으로 조사하기는 어렵다. 체제 붕괴 이후 이러한 조사를 한다는 것이 사회 안에서 심한 혼란과 유혈 복수사태를 일으킬지도 모르니까 정치인들은 위험한 정책으로 간주하고 대규모의 조사를 가로막을 수도 있다. 또 나치 독재 이후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악명 높은 극소수의 보위원들과 고급 간부들에게 모든 책임을 돌려주는 것은 사회적 안정성을 위해서 필요한 조치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이렇게 된다고 해도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독일이나 중국, 러시아와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접근과 흡사하다. 또 한국의 정체성과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 고통스러운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 더 좋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필자는 김부자의 행위에 대해 조사와 연구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한 조사를 하지 않다면 이러한 비밀은 통일한국의 미래를 괴롭힐 것이다.

물론 조사를 한다고 해서 책임 있는 자들에게 반드시 벌을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는 학살의 규모가 너무나 커기 때문에 객관적인 조사가 거의 불가능하고, 통일사회에서의 조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옛날 범죄에 대한 일반 사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정치세력이 역사의 증거 일부만 선택적으로 유포함으로써,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든 북한 간부들에게 일반사면을 주는 것과 동시에 북한 자료를 있는 그대로 공개하는 것은 좋은 조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러한 조치들을 여러 이유로 반대할 세력이 나올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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