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정권 붕괴외에 해답은 없다”

70년대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이자, 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중진자본주의론과 식민지 근대화에 대한 사실적 접근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서울대 안병직(安秉直) 명예 교수. 그는 민족과 신화에 근거한 역사를 거부하고 사실에 기초한 실증적 방법론으로 한국 경제발전 과정을 재구성한 현 시기 국내최고의 경제학자다.

안 교수는 1980년 초반까지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의 입장에서 한국 경제 필패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80년대에도 이어지는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을 목격하고 그의 이론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80년대 중반 도쿄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 일본, 동구 및 북한경제를 연구, 사회주의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버렸다.

이후 그는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제도와 기술을 적극 도입하면 고도 성장이 가능하다는 중진자본주의론을 적극 펼쳤다. 그 과정에서 과거 함께했던 동지들로부터 ‘변절자’로 몰리는 아픔도 겪었다. 안 교수는 이후 한국 경제사를 연구하는 ‘낙성대 연구실’을 개소, 실증주의 학문의 확산에 불을 지폈다.

경남 함안 출신으로 아직도 경상도 사투리가 진하게 묻어난다. 1965년부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강단에 선 그는 학자적 양심과 성실성의 표본으로 존경받아 온 인물. 지난 2002년 모교에서 정년 퇴임하고 현재 일본 후쿠이 현립대 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9일 일시 귀국한 그를 ‘낙성대 연구소’에서 만났다.

안교수는 2년 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후 그동안 언론에 나서지 않았다.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던 그는 “북한동포를 위해서라면 한마디 하겠다”며 “북한문제만 국한에서 인터뷰를 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9월 9일 북한정권수립 57주년 날에 만난 그는 김정일 정권에는 단호했고, 북한 주민들에게 연민과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안 교수는 자신이야말로 좌파적 입장에서 견해를 바꾼 ‘변절 지식인 1호’라며 농담을 던졌다.

-9일은 북한정권 수립 57주년이 되는 날이다. 57년 전 김일성은 도대체 어떤 북한사회를 건설하려 했다고 생각하는가?

김일성은 일제시대를 겪었고 항일운동에도 참여했다. 그 당시 항일운동의 기본적인 사상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였다. 자주 독립은 우리의 민족성을 회복하자는 것이 가장 큰 의미다. 다음으로,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운동의 특징이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에 기초하고 있는 만큼 이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반자본주의 운동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항일운동의 기본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두 줄기였다.

민족주의에도 우파 민족주의와 좌파 민족주의가 있었다. 좌파 민족주의자는 사회주의로 민족 주권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런 운동을 한 것이 김일성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사회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된 것이 제일 깨끗한 항일운동처럼 보인다. 김일성이 건설하고자 한 국가는 민족주의가 철저히 관철되고, 사회주의가 실천되는 국가였다고 생각한다.

-김일성이 애초 계획했던 북한 사회의 이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오히려 독재가 강화되고 주민들은 굶주리게 됐다. 북한 사회가 이렇게 흘러온 근본 배경은 무엇인가?

좌파 민족주의는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했다. 그러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은 판이하게 다르다. 김일성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에 입각한 나라를 생각했다. 따라서 나라를 건설하는 계급적 기반을 프롤레타리아에 기초했다.

자본주의가 성숙하면 프롤레타리아도 성숙한다. 그리고 성숙한 프롤레타리아는 자신들이 꿈꿀 수 있는 세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마르크스의 논리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본주의 경험이 없었다. 불행히도 우리는 일본이 들어와서 식민지 자본주의를 운영했다. 우리 스스로 계급적 분화가 진행되고 노동자가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해방 당시 우리나라 프롤레타리아는 대부분 농민이나 머슴출신이었다. 농민과 머슴으로 제대로 된 국가 건설이 되겠는가. 미래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없는 계급을 중심으로 국가를 만들려고 하니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결국 통제를 강화하고 독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회발전 초기에는 질서를 잡기 위해 권위주의가 동원된다. 박정희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북한은 새로운 생산력을 담당할 수 없는 계급을 기본동력으로 하다 보니 생산력이 정체되었다. 남한과는 정반대로 독재를 점점 강화시키게 되었다. 북한은 내부 생산력으로 체제를 유지할 수 없었다. 원조에 의지했다. 결국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지자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국가가 되었다. 결국 단순 재생산도 안 되는 기아상태로 내몰린 것이다.

-70년대까지는 북한이 한국을 앞섰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주의 우월성을 강조하기도 하는데.

물론 그런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북한의 자생적인 재생산이었는지를 잘 봐야 한다. 북한의 초기 생산력의 기반은 일제 식민지가 남겨둔 것이다. 북한 스스로 만든 기반이 아니다. 북한은 선진자본주의 국가와 거래를 끊었다. 결국 내부에서 생산력이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 북한은 재생산 체계가 붕괴됐다. 지금 북한은 매우 혼란한 상태다.

-남북이 현재와 같은 큰 격차가 발생하게 된 근본원인을 진단한다면

선진국의 발전된 제도와 기술을 흡수할 수 있는 국가는 발전한다.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능력만 있으면 된다. 한국은 그런 능력이 있어서 박정희 이후 40년간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결국 이러한 차이가 남북한 격차를 만든 것이다. 남한은 급상승 커브를 타고, 북한은 급전 직하의 커브를 탔다. 남북한은 비교가 안된다. 하나는 흥하고 하나는 망했다. 이건 말할 필요도 없다.

6.25 전쟁 이후 기술과 제도가 쏟아져 들어왔다. 이런 경우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성장 잠재력을 흡수하기만 하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인류사회에서 10%의 고도성장은 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없었다.

18세기 100년간 영국이 세계를 제패하던 시기에도 연 평균 성장률이 0.9%다. 19세기 선진 각국 경제성장률이 1%-1.5%밖에 안된다. 예외적으로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에 경제성장이 4% 정도 됐다. 일본이 1955년부터 71년까지 연 평균 10%였다. 이것이 캐치업(catch-up) 고도성장 국가의 최초 출현이다. 그 다음부터 신흥공업국이 많이 나타났다.

-김일성이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중공업 우선 정책을 취하고 소련의 기술도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런데도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술과 제도의 선진국은 자본주의 국가였다. 자본주의 국가가 높은 기술력과 수준 높은 사회제도를 보유했다. 소련에서 기술을 받았지만 별 기술이 없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문을 걸어 잠근 것이 첫 번째 원인이다.

한국은 전근대사회를 그만두고 근대사회를 만드는 데 그 근대사회를 만들 수 있는 계급을 부르주아로 뒀다. 상승하는 계급을 중심으로 해서 발전해왔다. 부르주아는 외부에서 들여온 기술을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북쪽은 수준이 안됐다. 기술이 들어와도 제한된 수준에 머문다.

-프롤레타리아를 생산력 발전의 기본동력으로 하는 사회는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봐도 되는가

당연하다.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있는가? 사회주의 국가들 스스로도 포기했다.

-오늘날 북한정권, 북한사회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

북한은 ‘정권’이기는 한데 국가는 아니다. 마르크스는 ‘국가를 특정계급이 주도하지만, 그러한 계급의 지배도 국민 대중들에게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주의와 독재를 떠나 국민적 동의가 있느냐의 여부를 말한다.

김정일은 국민의 동의를 받고 있지 않다. 어떤 국민적 동의 절차도 국민적 요구도 담고 있지 않다. 주민들을 정보 비밀집단의 감시와 폭력으로 억누르고 있다.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 일종의 깡패집단이고 폭력집단이다. 북한을 국가로 본다면 크게 잘못된 시각이다.

또 국가는 단순 재생산이라도 돼야 한다. 배불리 잘 먹게 할 수는 없어도 굶어 죽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단순 재생산도 안돼서 수 백만이 굶어 죽었고 지금도 배를 곯는데, 그것이 어떻게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일종의 거대한 폭력집단이 군사력과 정보 통제를 통해 폭압기구로 인민을 억압하는 사회다.

-90년대 이후 북한은 선군정치를 강조하고 있는데.

선군정치가 무슨 ‘정치’인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서 주변국가를 공갈쳐서 뜯어먹자는 것이 선군정치의 본질이다. 이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을 사회주의 나라라고 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을 사회주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식으로 알면 그만이다. 논쟁할 필요도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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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손광주 편집국장
정리/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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