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정권 다루기, ‘원칙’이 제일이다

▲ 이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

위폐문제에 대한 미-북간 접촉이 일단 끝났다.

이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은 “미국에 위폐협의체를 만들자고 제의했다”고 말했다. 또 금융제재를 풀지 않으면 6자회담에 나갈 수 없다는 입장도 재차 밝혔다.

한편, 미 국무부 캐슬린 스티븐스 동아태 부차관보는 “미-북간 접촉은 재무부가 주도했으며 6자회담 재개에 관한 것이 아니다”고 확인했다.

위폐협의체 제의, 미국과 말싸움하며 시간벌기용

미-북 접촉은 애초부터 위폐 제조에 대해 미 재무부가 북한에 브리핑하는 자리였다. 그런 만큼 미 재무부는 이근 국장에게 일정 부분 ‘증거’를 보여주고 미국의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을 것이다. 접촉 후 이근 국장의 ‘위폐협의체 제의’ 발언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번 미-북 접촉을 보면 북한은 여전히 위폐문제와 미국의 금융조치를 6자회담과 연계하는 ‘정치적 사안’으로 다루려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불법행위에 정치적 타협은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미-북간 접촉이 있던 시간에 단거리 미사일 2기를 실험발사했다. 이는 늘 해오던 수법처럼 대화와 군사적 제스처를 병행하는 북한식 외교전술이다. 남북간 대화 때도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다. 거슬러 올라가면 마오쩌둥의 ‘담담타타 타타담담’(談談打打 打打談談)의 해묵은 원류와도 만난다. 김정일은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미국에 대한)우리의 요구는 강하다’는 점을 시위한 것이다.

이근 국장의 ‘위폐협의체 제의’는 위폐문제를 둘러싸고 말싸움으로 시간이나 벌자는 뜻에 가깝다. 6자 회담에서 지난해 9.19 공동성명을 합의해놓고도 경수로 先제공, 금융조치 先해제 등을 들고 나와 시간 때우기를 하고 있는 수법과 동일하다. 미국은 ‘위폐협의체 제의’에 “좀더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외교 언어로 ‘생각해보겠다’는 말에는 ‘그럴 생각이 없다’는 뜻이 숨어있다. 따라서 미국은 당초 입장대로 ‘법대로’ 계속 집행해갈 것이다.

6자회담의 행로는?

그렇다면 6자 회담은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 6자 회담의 경과를 보면 북한은 적어도 부시 행정부 임기동안에는 핵문제를 해결할 뜻이 없는 것 같다. 설사 김정일이 핵을 매개로 ‘장사’할 생각이 있다 해도 부시 행정부 시기에는 ‘큰 장사’가 힘들다고 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든 6자회담 자체를 깨기도 쉽지 않다. 먼저 6자회담을 깨면 모든 바가지를 혼자 뒤집어쓰게 된다. 미국도 이란 핵문제가 걸려있는 만큼 이른 시일 안에 북핵문제를 안보리로 회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11월에는 상하원 중간선거도 걸려 있다. 김정일은 이래저래 시간을 벌면서 핵무기고나 늘이며 부시 행정부 임기를 넘기려 할 공산이 크다.

북한의 핵보유 및 양산(量産)을 가장 반대해야 할 당사자는 남한이다. 김정일의 전략은 군사적 위협으로 남한의 대북지원을 받아내며 이른바 ‘한반도 평화유지 비용’을 계속 챙기는 것이다. 남한이 평화상태와 투자신용등급 유지를 바란다면 비용을 대라는 식이다. 지난해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하고 두어달 뒤 6자회담에 복귀해주는 조건으로 쌀과 비료를 챙겨간 것도 이 맥락이다. DJ정부 이후 남한은 북한에 지원해주고 ‘평화’를 구걸하는 양상이 계속돼 왔다. 다만 이것을 ‘민족공조’라는 몽환적 이름으로 국민을 속여 온 것뿐이다.

핵문제는 남한을 상대로 군사적 긴장유발과 평화유지를 죄었다 풀었다 할 수 있는 최고단계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북핵문제를 제3자처럼 대하며, 더 나아가 김정일 정권 편을 드는 모습이다. 9.19 공동성명이 나왔을 때 마치 북핵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떠들던 모습을 떠올리면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대통령은 외국에 가서 “핵문제는 제국주의 후유증” 운운하면서 짧은 지식에 아는 체나 하고 있다.

참여정부, 김정일 종범(從犯)정권으로 남고 싶나?

이번 미-북간 위폐접촉은 일단 잘 된 것으로 보인다. 이근 국장이 직접 눈으로 일부 ‘증거’를 보았을 것이고, 불법행위에 대한 미국의 원칙적 입장도 재확인했을 것이다. 김정일이 미사일 실험발사를 하든 말든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렇게 해야 북한을 6자 회담 테이블로도 잡아당길 수 있다. 김정일 정권은 확실히 손해를 봐야 대화에 나온다. 이제 미국은 ‘북한 다루기’에 어느 정도 물이 오른 것 같다.

문제는 건국 이후 최약체인 노무현 정권의 외교안보통일팀이다. 그동안 ‘아마추어’니 하는 표현도 있었지만, 진짜 아마추어 정신으로 돌아가 총체적 북한문제 해결에 도전해 보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김정일 정권의 각종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입장에서 대응에 나서야 한다. 국내에도 북한산 마약, 위조달러가 적발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총리실, 외교부, 통일부는 불법행위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근절을 촉구해야 한다. 하다못해 성명서라도 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원칙이 있는 대북정책이며, 말로만 ‘한미관계 튼튼’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한미 신뢰관계를 복원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북한을 자극한다느니 하면서 눈치나 보고 있으면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김정일의 손바닥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참여정부는 김정일의 ‘종범(從犯)정권’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일을 끝내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손광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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