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저거 내가 한 말 맞어? 당장 떼”

▲ 1999년 8월 12일 김정일의 대홍단군 현지지도를 보도한 노동신문. 이 신문에는 김정일이 감자연구소 시험포전과 홍암분장 밀보리밭을 방문한 사진이 게재됐다.

1999년 8월 9일. 대홍단군 시찰 길에 오른 김정일이 차창 밖으로 펼쳐진 감자밭을 바라보며 “얼빠진 놈들”이라고 수행 간부들에게 욕설을 퍼 붓는다.

감자밭 입구마다 “감자는 곧 흰 쌀이다!”라는 대형 구호판들이 걸려 있었다.

김정일이 1년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 간부들에게 ‘감자는 흰 쌀과 같다’는 말을 하자 현지 간부들과 당 선전선동부에서 감자밭마다 이 구호를 써 붙이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아무리 감자농사가 중요하다고 해도 감자가 주식인 쌀과 같다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 밖의 이야기였다. 김정일은 이 구호가 자신이 한 이야기인 줄 잊고 있었다.

대홍단군 감자농장 표식(글씨) 비석 앞에서 차를 멈춘 김정일은 책임부관에게 “어떤 놈의 새끼가 저렇게 지껄이고 다녀? 감자가 흰쌀이라는 게 말이 돼?”라며 버럭 성을 냈다.

그리고 첫 일정으로 새로 도입한 감자 수확기에 접어든 작업현장을 방문했다.

차에서 내리는 김정일을 향해 대홍단군 당 책임비서 김성진이 달려 나왔다. 하지만 그는 김정일이 손을 쳐들며 제지 시키는 바람에 자리에 멈추었다.

“감자가 흰쌀과 같다니 말이되나?”

순간 이상 기운을 감지한 김성진은 어떤 벼락이 떨어질지 몰라 얼굴이 새까맣게 돼 (그는 간부들에게 “그 순간 하늘과 땅이 딱 맞붙어 돌아가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자리에 굳어진 채 굳어버렸다.

김정일은 손을 양 옆구리에 얹고 한참 서서 한곳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감자는 흰 쌀과 같습니다. 김정일” 이라고 쓴 커다란 말씀판(김정일의 말을 새겨 넣은 구호판)이 있었다.

말씀판을 한동안 바라보던 김정일이 갑자기 크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곳을 가리키며 멍하니 서있는 김성진에게 “야. 저거 내가 한 말이 맞어?…” 하고 물었다. 김성진이 차렷 자세로 “네. 장군님. 장군님께서 지난해(1998년) 10월 1일 대홍단을 찾으시어 하신 말씀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한편으론 어이 없고, 한편으론 난감한 표정을 짓던 김정일 다시 말씀판을 쳐다보더니 “야 이 새끼들아, 암만 그래도 그렇지, 감자가 어떻게 흰쌀이 되냐? 야! 저거 당장 떼어버려…” 라고 했다.

김정일의 지시를 받은 김성진이 즉시 “알았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대답한 후 심복들에게 달려가 당장 구호를 떼어 버리라고 했다.

김정일의 이 발언은 북한의 대남선전잡지 통일문학 2005년 1월호에 “1998년 10월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홍단 방문시 ‘감자는 흰쌀과 같다’는 말을 했다”고 소개돼 우리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다.

당시 대홍단군 주민들은 김정일이 방문한다고 밖에도 못나가고 있었다. 그때 집에 머물고 있던 주민들은 갑자기 구호판을 철거하라는 지시가 내려오자 영문도 모른 채 현장에 달려가야 했었다.

김정일의 발언은 단순한 헤프닝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김정일이 감자혁명을 부르짖자 양강도뿐 아니라 다른 지역까지 감자농사를 지으라면 옥수수밭까지 뒤집고 감자를 심었다. 기후적으로 감자농사가 안 되는 함경남도나 평안남북도까지 많은 밭을 감자밭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감자밭마다 김정일의 말씀이라고 ‘감자는 곧 흰 쌀이다’라는 구호를 세우게 했는데 1년도 못가서 선전선동부로부터 그 구호판을 모두 철거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기후적으로 감자 생산량이 떨어지는 함경남도와 평안남도는 적은 감자 수확량 때문에 몇년째 고생해야 했다.

이런 김정일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장악능력이 뛰어난 지도자”라고 칭찬했다.

▲ 제대군인 민원식의 집을 방문해 기념촬영을 한 김정일. 민원식의 아내는 임신 6개월이었다.<출처=노동신문>

비판 대상에서 특별 관리 대상으로

연합뉴스 2006년 1월 26일자는 “김 위원장이 감자로 유명한 량강도 대홍단군을 방문했을 때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임산부의 부탁을 받고 ‘아들을 낳으면 ‘대홍’이라 짓고 딸을 낳으면 ‘홍단’으로 지을 것’을 권했다는 일화도 있다”고 소개했다.

노동신문 2000년 3월 27일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량강도 대홍단군 종합농장을 현지지도 하시였다”는 제하의 보도에서 이 사연에 관련된 제대군인 ‘문원식’의 집을 방문해 내외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이 보도 내막에도 사연이 따로 있다.

2000년 3월 24일 김정일이 대홍단군 서두분장에 새로 지은 제대군인들의 주택(김정일의 지시로 제대군인 1천명이 강제로 대홍단 농장에 정착되었다. 북한에서 이런 것을 ‘무리제대’라고 한다)을 돌아보았다.

김정일은 함께 동행한 부인 고영희와 제대군인 민원식의 집을 돌아보았다. 김정일의 방문에 대비해 며칠 전부터 꾸려놓은 집이었다.

김정일이 민원식의 집을 돌아볼 때 임신 6개월 된 그의 아내가 “장군님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김정일이 낮을 찡그리며 “그거야 너희들이 알아서 지으면 될게 아니야”라고 했다.

한참 여기저기 살피고 있는데 민원식의 아내가 또다시 김정일에게 메달리며 “장군님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좀 지어주십시오”라고 했다.

계속해서 달라붙는 여자에게 짜증났던 김정일이 버럭 화를 냈다.

“야, 뱃속에 있는 아이 이름을 내가 어떻게 짓는다는 거야?”

김정일이 성을 내자 즉시 호위일꾼들이 달려와 여자를 제지시켰다.

집주인인 민원식과 그의 아내는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잘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김정일이 돌아가자 즉시 민원식과 그의 아내가 군당 선전부에 불려갔다. “장군님 앞에서 무엄한 요구를 했다”고 비판서를 쓰며 며칠 동안 고생을 했다.

산모 관리 위해 평양산원 의사 헬기로 공수

군당뿐만이 아니었다. 마을에서는 분장장(대홍단에서는 작업반 반장을 분장으로 칭함)과 초급 당비서, 보위지도원에게 불려가 또 곤욕을 치루고 농장원들 앞에서 사상투쟁 대상이 됐다.

특히 민원식은 당 생활총화와 농장원모임에서 “장군님께 무엄한 말을 해 심려를 끼쳐드렸다”고 자기비판을 해야 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대홍단 출신 탈북자 이경희(2006년 입국) 씨는 2007년 7월 13일 자유북한방송에 기고한 글 “대홍단 감자농장에 집단지출한 제대군인들의 후회”에서 “김정일에게 아이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던 제대군인과 아내는 당 기관에 불려가 감히 장군님에게 버릇없이 굴었다고 엄청난 추궁을 받고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라고 썼다.

김정일이 방문 후 이틀 뒤 대홍단군을 떠나 삼지연군 무봉 노동자구로 향하던 때였다.

수행원들과 대홍단군 이야기를 하던 김정일이 갑자기 “응, 거 나한테 아이이름 지어 달라던 거 있지? 그거 남자면 ‘대홍’이 딸이면 ‘홍단’이라고 지으면 될게 아냐?”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수행원들이 “참으로 장군님만 구상할 수 있는 훌륭한 생각입니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이 말 한마디에 사태는 순식간에 반전됐다.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비판을 받던 민원식 부부를 제대군인들 앞에 불러 놓고 “김정일 장군님의 말씀 전달식”이라는 행사를 요란하게 가졌다.

바로 그날 평양에서 대홍단까지 평양산원 의사 6명이 헬기를 타고 내려왔다. 이 의사들은 여인의 몸을 검진하고 이상이 있는지 여부를 정밀 진단했다.

평양산원 의사 2명은 평양으로 복귀하지 않고 민원식의 아내를 계속 진찰하며 관리했다. 민원식의 아내는 일체의 노동일에서 면제를 받고 (북한은 임신8개월 때 휴가를 줌) 평양산원 의사 2명과 대홍단군 산부인과 의사들의 특별한 관리 속에 생활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군님이 이름을 지어준 아이에게 이상이 생기면 안되기 때문이다. 훗날 그녀는 딸을 낳아 아이의 이름을 ‘홍단’이라고 지었다.

당시 대홍단군 일반 주민들은 장군님의 은혜라며 경탄을 했지만 속으로는 ‘세상에 별 일도 다있다’는 반응이었다. 민원식의 아내만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대홍단군 당 분위기는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김정일 현지지도 때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노심초사 하게 된 것이다.

2002년 대홍단군 조직비서가 현장에서 철직당한 사건은 그 하이라이트였다.

김정일의 기분에 따라 무고한 사람들이 당장에 죽을 수도 있고 또 행운을 얻어 출세 할 수도 있다.

북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다. “길고 약하게 살기보다 짧고 실하게 살자!” 이말은 못살고 굶주리며 오래 살기 보다는 잠깐이라도 출세해서 해볼 것은 다 해보고 죽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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