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장수만세’와 엉뚱한 對美 시비

“한국정부는 북한체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압박을 가하고 또 때로는 붕괴를 바라는 듯한 미국내 일부 의견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가 그와 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마찰이나 이견이 생길 것이다.“ 지난 25일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그렇다면 김정일이 대한민국을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라고 부르면서 우리 체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는 왜 단 한마디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않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적어도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한국정부는 남한체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압박을 가하고 또 때로는 붕괴를 바라는 듯한 북한의 자세에 반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체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압박을 가하고 또 때로는 붕괴를 바라는 듯한 미국내 일부 의견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자신의 수령독재를 영구화 하기 위해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주민 300백만 명을 굶겨 죽인 정치범 수용소 운영자 김정일-이런 체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한테 문제를 제기한다는 말인가?

이런 체제에 대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미국내 일부’ 뿐만 아니라 EU(유럽연합)와 유엔 등, 노무현 정권을 제외한 국제사회 다수파가 “나쁘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북한인권 결의안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정부가 최근 김정일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것도 구체적으로는, 달러위조 등 그의 범죄행위를 법에 따라 처리하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국내에서 누가 1만원 짜리 위조지폐 수 만장을 만들어 유통시킨다 할 때, 치안 총책임자인 노무현 대통령은 그를 사법처리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겠다는 것인가?

‘김정일 없는 북한’, 개혁개방 기회

노 대통령은 또 “북한의 붕괴를 바라는 듯한 미국내 일부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국가로서의 북한이나 그 주민, 또는 그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만 하는 당(黨) 관료들 아닌 김정일 하나쯤은 이제 그만 붕괴하기를 바라는 것이 북한을 위해서도, 주민을 위해서도, 그리고 동북 아시아와 세계를 위해서도 마땅하고 옳은 일일 것이다.

김정일 개인이 무너지면 북한 자체도, 북한주민 전체도 자동적으로 함께 무너진다고 김정일과 남한의 ‘일부’는 말할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와 동북 아시아의 안정이 깨어지지 않게 하려면 김정일이 더 ‘장수만세’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엉터리중 엉터리 같은 궤변이다. 김정일 개인이 날라가도 중국은 북한이 없어지도록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도 중국과의 무력충돌을 불사해서 얻을 것이 없는 이상, 휴전선이라는 현재의 세력분할선을 깨뜨리려 할 까닭이 없다.

그럴 경우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영토병합 같은 일은 중국에도 굳이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김정일 없는 북한’은 동북 아시아의 힘의 균형을 깨지 않는 상태에서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다른 나라 ‘기색’까지 시비할 일 없어

물론 이런 시나리오는 ‘만약’을 전제로 한 가설에 불과하다. 다만, 21세기 최악의 폭군 김정일 개인의 타락한 절대권력이 붕괴하기를 바라지 않으면서 세계의 다른 문명국가들이 그것을 ‘바라는 듯한’ 기색에 대해서까지 시비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노무현 정권 자기들만 바라지 않으면 그만이다. 다른 나라들,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듯’ 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

한미동맹이 공고하던 지난날에야 물론 ‘더 좋은 공동이익’을 만들어 낼 때까지 한미간에 티격태격 다툴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 제 갈길을 가자는 것이 노무현 정권의 ‘자주’ 아니던가? 그렇다면 역(逆)으로 노 정권의 입장에 대해 미국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도 이제는 그러지 말라고 다툴 근거도 없어졌다.

‘별거’가 임박한 단계에 무슨 다툴 건덕지가 있는가?

미국측이 한미 관료들의 회담결과를 외교부 기자실로 직접 팩스로 보낸 것, 이에 대해 현정권이 발끈하고 나선 것, 모두가 다 ‘자주’ 시대의 ‘빠이 빠이’ 조짐이라고 한다면 할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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