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이후 한반도’ 설계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했다. 북한은 지난 10일 북한 외무성 성명을 통해 이미 핵무기를 만들었으며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을 무기한 불참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의도를 놓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주변국들에게 더 많은 대가를 얻어내려는 ‘협상용’이라는 주장도 있고, 강경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군심(軍心)’을 추스르고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종합하자면, 정권과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내외환경을 조성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의도’에 주목하는 대신 그 선언이 가져다 줄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은 북한체제의 안정과 김정일 정권의 유지에 유리한 환경을 가져올 가능성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결과인 고립과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을 기다리는 것은 협상 아닌 국제압박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이후, 북한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협상’이 아니라 ‘압박’이다. 북한은 핵무기 보유 선언을 통해 미국 및 주변국들과의 협상에서 보다 많은 대가를 얻어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북한의 판단착오다. 미국은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상이 아니라 벌을 줘야 한다’는 원칙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따라서 향후 적극적인 협상에 나서기 보다는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에 대한 고립과 압박을 강화해나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북한의 외무성 발표 직후 미국은 “새로울 것이 없다”며 북한의 선언을 평가절하한 후 오히려 고립만 심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만약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박이 현실화된다면 북한이 그것을 버텨낼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북한의 일방적 핵무기 보유 선언은 김정일 정권의 중요한 버팀목이었던 중국과 한국의 입지도 약화시켰다. 그동안 중국과 한국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핵무기 선언 이후 양국은 난처한 입장에 빠졌고, 중국은 대만과 일본의 핵무장을 걱정해야 할 처지까지 몰렸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가 예의주시해야 할 점은 중국의 향후 행보(行步)다. 북한의 일방적 선언이 중국과 김정일 정권의 동맹관계에 미묘하지만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일 정권에 대한 중국의 입장 변화 가능성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데 전략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중국은 현재 김정일 정권을 지지함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의 고립과 위기가 일정한 임계점(臨界點)을 넘어서는 상황이 올 경우 중국의 대북정책은 근본적인 수정을 피할 수 없다.

임계점, 다시 말해 김정일 정권을 지지하는 것보다는 북한의 정권교체를 묵인하거나 지원하는 것이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게 되는 시기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의 일방적 핵무기 보유 선언이 중국의 대북정책 전환 시점을 앞당겨 놓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력, 중국과 한국의 입지 축소, 그로 인한 북한의 고립은 결과적으로 북한체제의 유지에 부정적 힘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확실한 근거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으로 북한의 체제붕괴를 가져올 요인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은 틀림없다.

우리는 이미 지난 십수년 동안 북한 체제의 위기와 붕괴를 알리는 신호들을 지속적으로 전달받았다. 90년대 중반의 극심한 식량난, 수십만에 이르는 대량탈북사태, 체제유지를 위한 김정일 정권의 핵무기 개발 등은 모두 북한체제의 위기와 붕괴를 알리는 신호라는 데 그 공통점이 있다.

북한 체제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들은 소련과 동구사회주의 몰락을 알리는 그것보다 훨씬 또렷하고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더 이상 북한붕괴에 대한 대비를 늦출 이유가 없다.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던 미국과 한반도 주변국들은 이제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의제를 뛰어 넘어, 김정일 정권이 붕괴한 이후의 한반도를 어떻게 준비하고 설계할 것인지를 새로운 의제로 삼아야 한다. 한국과 미국이 먼저 머리를 맞대면, 일본과 중국도 뒤따르게 될 것이다.

이광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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