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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과 2일 회령에서 공개총살형이 집행된 모습이 최초로 공개됐다. 지금까지 북한의 악명높은 공개처형이 숱한 탈북자들의 증언과 <엠네스티> 등 국제인권단체 등을 통해 그 실상이 알려져 왔으나, 공개처형 장면이 생생하게 알려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생존 위한 월경, 왜 죽이나?
총살형에 처해진 사람은 이틀간 세 명이다. 회령 공개처형장에 강제동원된 주민의 말에 따르면 한 남성은 세 발의 총탄을 맞고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광경이다.
처형 전 공개재판에서 이들에게 씌워진 죄목은 불법월경과 월경을 도와준 혐의라고 한다. 허락없이 국경을 넘었다는 이유로, 또 월경을 도와준 행위를 ‘인신매매’라는 죄목을 붙여 공개총살형에 처한 것이다.
처형된 사람들이 왜 국경을 넘으려 했는가는 굳이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뻔할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서일 것이다. 95년부터 대아사(大餓死)가 시작되어 3년간 3백만 명이 굶어죽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국경을 넘은 탈북자가 20만 명이 웃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오로지 한줌의 식량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갓난아기에게 쌀뜨물 한모금을 먹이기 위해 숱한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등지고 두만강을 넘은 것이다.
먹을 것을 찾아 고향을 떠난 사람을 붙잡아 처형하는 경우는 중세 암흑시대 때도 사례가 없다. 독재를 하건, 선군정치를 하건 인민들의 ‘입’조차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미 통치자로서 자격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김정일, 죽음이 그렇게 두려운가
김정일은 74년 후계자가 된 이후 실질적으로 30여 년간 북한을 통치해왔다. 그가 실권을 잡은 뒤 북한은 유례없는 기형적인 독재체제로, 공포와 죽음의 땅으로 변해갔다. 주민들이 굶어죽든 말든 8만 7천 개에 이르는 김일성・김정일 우상화물로 전국을 뒤덮었다.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장군님’의 세치 혀의 쾌락을 위해 2천 3백만 인민들을 인질로 삼아왔던 것이다.
김일성이 사망하자 김정일은 누군가가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 침대맡에 권총을 두고 잤다고 한다. 3백만 명이 떼죽음을 당하는 참혹한 상황에서 인민의 생존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오로지 ‘80kg짜리 고깃덩이’를 지키기 위해 치졸하고 너절한 행동을 보인 것이다. 이러고도 지도자니, 장군님이니 자처하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가소롭지 않은가?
97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베이징 한국 대사관으로 망명했을 때 그를 처음 면회한 한국의 정부기관 인사가 “앞으로 김정일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당시 황 전 비서는 “글쎄, 김정일이 사람을 억울하게 많이 죽였기 때문에…”라며 그의 ‘앞날’을 예측하기 힘들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정권말기 현상,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 사람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면 그 원한은 그 가족을 너머 천 사람 만 사람에게 소리없이 전파된다. 그 원한의 결과가 김정일에게 돌아갈 것임은 너무나 자명하다. 이는 연기(緣起)의 필연적 법칙이다. 김정일은 이미 그 연기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 있다. 국제사회의 이목이 두려워 잠시 유보해두었던 공개처형을 재개한 것이나, 국제사회에 핵보유 카드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온 것은 이미 김정일 정권이 말기에 와있다는 사실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김정일에게 경고한다. 이제 정권에서 물러나라. 그 길만이 2천 3백만 형제들을 살리는 길이고, 7천만 민족을 살리는 길이며, 한반도가 국제사회를 위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그 길만이 당신의 ‘80kg짜리 고깃덩이’를 그나마 지킬 수 있는 길이 아니겠는가.
한기홍/ The DailyNK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