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유훈, 김정은 지시도 양강도에선 ‘먹통’









▲김정일이 지난 2010년 5월 양강도 백암군 덕포지구에 조성중인 대규모 감자농장을 시찰하고 있다./연합



김정일의 숙원 사업중 하나였던 양강도 백암군 감자농장 사업. 요즘 이곳 농장 관리원들은 하루하루 속이 타들어간다. 다음 달부터 감자 파종을 시작해야 하는데, 씨앗을 뿌리기도 전에 ‘과제 달성’을 걱정해야할 처지다. 감자농사는 사람 손이 90%를 차지하 데 일할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다. 고향에 가서 한달만 쉬고 오겠다는 제대군인들은 1년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이 숫자가 무려 1500여명이나 된다.
 


양강도 내부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이 주도하고 김정일이 승인했던 백암군 감자농장 사업이 최대 난관에 직면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기로 했던 제대군인들 절반이 종적을 감툰 탓이다. 백암군이 북한에서 손에 꼽히는 산간오지라고는 하지만,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과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지시가 이처럼 대놓고 무시되는 상황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감자 농사 밖에 할 게 없다’는 양강도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식량난이 정점에 달했을 시절, 김정일은 대홍단군을 방문한 자리(1998.10.1)에서 “감자는 흰 쌀과 같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함경남도 장진군과 함께 북한 최고의 오지로 꼽히는 대홍단군에는 노동력이 없었다. 그 대안으로 제대를 앞둔 전국의 군인들을 이곳 농장원으로 집단배치(무리배치)하는 지시가 떨어졌다.


양강도 출신 탈북자들은 당시 권력 있는 간부들의 자식들이 무리배치에서 빠져 나가고도 최소 4~5천명 규모의 군인들이 대홍단군 일대에 정착했다고 증언한다. 노동당은 이들을 달래기 위해 처녀 수백 명을 이주시켜 결혼식을 올려주는 ‘배려’까지 아끼지 않았다. 김정일이 “아들을 낳으면 ‘대홍’, 딸을 낳으면 ‘홍단’이로 이름을 지으라”고 친절한(?) 지시까지 덧붙이면서 이곳에는 성(姓)은 다르지만 이름은 같은 아이들이 줄지어 태어나기도 했다.


2009년 12월 김정일의 지시로 이번에는 백암군에 감자농장을 세우는 계획이 추진됐다. 김정일의 지시에는 김정은의 제안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이 백암군에 대한 사전 답사를 마친 후 중앙당 간부들에게 “장군님께서 대홍단군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셨으니, 나는 백암군을 무릉도원으로 만들 생각”이라고 공언했다.


당시 김정은이 얼마나 강한 어조로 이 사업을 주문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양강도 간부들은 백암군 덕포지구에 조성하는 감자농장을 ‘대(大)감자농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부족한 일손은 이번에도 제대군인들로 채운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북한에서 전례(前例)는 이토록 완고하고 집요하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은 2010년 5월 백암군을 찾았다. 김정일은 이 자리에서 “새로 건설하는 감자농장은 백암군을 감자산지로 전변시키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면서 농장건설에서 나서는 강령과 같은 과업들을 제시했다.


그 해 8월, 백암 감자농장에 제대 군인들의 집단배치가 완료됐다고 조선중앙방송의 보도도 있었다. 평양인민문화궁전에서는 배치된 제대군인들에게 국기훈장(2급)을 수여하는 행사가 열렸고, 수십만 명의 평양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이들에 대한 환송식도 거행됐다. 이모든 장면이 북한 TV로 녹화 중계됐다.


“대물림되는 농장원 삶은 사형선고”…휴가 군인, 절반도 복귀 안해


백암 감자농장에 배치된 제대군인들의 규모는 3천여 명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온 백성이 굶주림에 쓰러져가던 시절’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1998년 제대군인들은 “그래도 굶주림은 면하지 않겠냐”며 최고지도자와 당의 결정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2000년대를 통틀어 ‘시장과 자본주의’라는 격렬한 변화를 온몸으로 체험했던 신세대 군인들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한번 자리 잡으면 영원히 나올 수 없다는 산간오지에서, 그것도 자식들에게 대물림되는 ‘농장원’의 삶은 사형 선고와 같다. 부지런히 능력만 발휘하면 평양의 당간부들 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요즘에, 감자만 파먹고 살아야 하는 산골의 생활이 달가울 리 없다. 


소식통에 따르면 그해 10월부터 이들에게는 한 달간 고향방문 휴가가 주어졌다. ‘제대와 동시에 백암군에 도착해 여러모로 고생했으니, 잠시 가족들을 만나고 오라’는 명목이었다.


그러나 속사정은 달랐다. 개인 생필품이나 살림살이를 국가에서 공급해주지 못한 탓에 주어진 휴가였다고 한다. 각자 집에 가서 돈도 얻어오고, 살림밑천을 얻어오라는 의미였다. 10년 전처럼 도시처녀를 데려와 결혼식을 올려주는 당의 ‘배려’도 없는 상황이라 궁여지책으로 결정된 ‘보급투쟁’ 성격의 휴가였다.


휴가를 떠난 사람 중에 백암군 감자농장으로 복귀한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휴가 복귀 기한이 1년하고도 반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1천 500여명 규모가 ‘미복귀 상태’라고 소식통은 말한다. 북한에서 한 직업군에 집단적으로 사람을 배치하는 경우는 익숙하지만, 이렇게 한 단위에서 ‘집단적’으로 국가방침을 따르지 않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휴가 후 복귀한 제대군인 대부분은 고향에 돌아가도 어차피 농장원의 삶을 살아야 하는 농촌 출신이었다. 도시가 고향인 제대군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회’라는 측면에서 보면, 백암 감자농장은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곳이다.


지금 도시 노동자들은 얼마간의 뇌물만 소속 기업소에 바치면 출근하지 않고도 마음껏 장사를 할 수 있는 시절을 누리고 있다. 2010년 상반기까지 가끔씩 수갑을 차고 백암군으로 끌려오는 사람도 있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사람도 없다.


미복귀 해결책 요원…김정은 통치 시험대?


현재 북한의 공권력 수준을 살펴보면 1천 500명이나 되는 사람을 백암군까지 끌고 오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단순 셈법으로, 제대군인 1명을 끌고 오려면 최소한 2명이 길을 나서야 한다. 연인원 3천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백암군내 보안원(경찰) 병력은 최대 300명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이 일상 업무를 마다하고 전국 각지로 제대군인을 붙잡기 위해 나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장거리 출장에 필요한 교통비, 숙식비 등의 경비를 조달할 방법도 없다.


그렇다면 제대군인들의 고향집 관할 보안원들은 어떨까? 이들에게 제대군인은 ‘한 동네 사람’이다. 지금은 많이 희미해졌지만, 북한에서는 제대군인을 우대하는 전통이 있다. 때문에 ‘조국 보위’를 위해 10년간 배고프고 춥게 보낸 한동네 형님, 동생, 친구를 양강도 오지로 잡아넣기 위해 팔을 걷어붙일 보안원은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을 붙잡아 백암군까지 끌고 간다고 해도, 경비 때문에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자기 실적으로 평가되지도 않는 일에, 그것도 백암군 보안원들조차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먼저 앞장서는 것은 북한 말로 ‘머저리들이나 하는 짓’으로 취급된다. 


특히나 제대군인들이 서너 달 정도 체험했던 ‘백암군 실태’ 이야기는 고향사람들의 동정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들에게 할당된 살림집은 지붕과 벽만 세워져 있을 뿐, 도배는커녕 장판도 갖추지 못한 곳이었다. 식량·전기·수도공급 모든 것이 열악했다. 주위 사람들의 동정이 여론으로 형성되면 한 동네 사는 보안원들의 마음까지 움직인다.   


그렇다고 노동당 간부들이 이 문제에 대해 완전히 손을 놨던 것도 아니다. 각 지역 당 간부들은 미(未)복귀자들을 찾아가 “당 방침으로 진행된 일인데, 충실히 받아 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호소했다.


그러나 곧바로 그들의 부모로부터 절규 섞인 항의에 직면하게 된다. “조국 보위 10년이면 됐지 않나? 당신들 자식이라면 그런 곳에 보낼 수 있겠느냐?”는 등의 반발이 쏟아지는 것이다. 만약 높은 간부집 자식들일 경우 지역 당간부들의 입장은 더욱 위축된다.


미복귀 상황이 장기화 되면서 휴가직후 제 날짜에 복귀했던 사람들은 커다란 위화감을 느끼게 됐다. 소식통에 따르면 “당과 국가의 방침을 따르는 일은 결국 힘없는 놈들의 몫”이라는 탄식이 흘러나올 정도다.


미복귀로 인한 농장 차원의 노동력 결손도 문제지만, 출근하는 사람들의 노동의욕 상실도 큰 문제다. 출근을 한다 해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없다. 농기계보다 사람의 노동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북한 감자농사의 특성상 농장이 당면한 상황은 꽤 심각한 수준이다.


백암 감자농장은 지난 10여 년간 북한 내부 상황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유훈통치’라는 미명아래 과거의 답습에만 머물러 있는 김정은의 구태와 달라진 주민 의식이 저강도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느슨해진 중하급 간부들의 체제 수호 의식은 최고 권력자와 일반 주민들의 사이의 간극을 더욱 크게 만든다. 제대군인들의 ‘불복종’은 결과적으로 김정은의 권위와 통치능력을 시험하고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데, 지금 상황으로서는 그 해법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