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유일(唯一) 브랜드

김정일의 재능을 두고 밖에서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되고 있으나 북한사람들에게는 대략 세 가지로 인식되고 있다. ‘건설의 영재’ ‘문학의 천재’ ‘예술의 대가’라는 것이다. 나도 북한에 있을 때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한국에 와서 보니 전혀 아니었다.

흉물스런 우상화 구호, 금수강산 더럽혀

우선, ‘김정일은 건설의 영재’라는 말부터 틀렸다. 김정일이 김일성 대리인 자리를 따내기 위해 평양시에 세운 몇 개의 대형건축물들을 김정일의 고안물이라며 그를 건축 안목이 있는 인물로 묘사하지만 아니다. 왜 아닌가?

건축의 영재 김정일이 고안한 창광거리, 문수거리, 통일거리의 삭막한 콘크리트건물 사이로 살아있는 자연들이 조금씩 말라 죽어가고 있다. 이제는 가냘픈 가로수 몇개만이 고독한 자리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을것이다. 게다가 더욱 참을 수 없는 건, 민족의 영산인 금강산 그 유서 깊은 명소들에 자신을 칭송하는 구호와 노래 말들을 자연과 배치되는 시뻘건 글씨로 흉물스럽게 새겨 넣게 한 사실이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친화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역행, 공갈이다. 역사상 자연을 거스른 위대한 건축가는 존재한 적도 없었고, 결코 존재 할 수도 없었다.

특수파티에 날새는 줄 모르는 자가 문학의 천재라?

김정일이 문학의 천재라는 말도 틀렸다. 천재적 문학가들의 가장 으뜸가는 덕목은 인간성이다. 그들은 너무 인간적이어서 때로는 바보스럽고, 그래서 결국은 위대할 수 밖에 없었던 인간성의 화신들이었다. 인간은 자유가 생명이라며 자기 영지 노예들의 문서를 백지화한 톨스토이, 레스토랑에서 만난 거지 아이에게 일류신사들의 비웃음을 무릅쓰면서 비싼 음식을 사서 따뜻이 권한 독일의 시성 하이네, 빈민촌 환자의 약 봉투에 약이 아닌 현금을 몰래 넣어 환자의 깡마른 손에 들려줬던 의사이자 소설작가인 체호프, 2차 세계대전 직후, 불량소년 감화원 원장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쓴 장편소설 “교육뽀에마(교육서사시)”로 전 러시아에 교육신드롬을 불러왔던 전설적인 구(舊)소련의 교육소설가 마카렌코 등등. 마카렌코는 버스 타러 급히 가던 길에 무거운 짐을 힘들게 지고 가는 길손의 짐을 덜어 들고 가다가 심장마비로 노상에서 급사하였다.

그러나 자신을 문학의 천재로 착각하는 김정일은 천재적 작가의 최고 징표인 인간성을 거세당한 자였다. 자기를 위해 봉사하는 요리사에게 현금봉투나 집어주고 영문을 모른 채 김정일 관저구역 근처에 차를 몰고 들어왔던 민간 운전사를 그 자리에서 사살하도록 지시하던 살인자였다. 제 국민 몇 백 만명이 굶어죽어 가는데도 자신은 전용 비행기로 세계 최고의 요리, 최고 와인을 시켜먹고 예술인들을 동거시켜 밤새도록 특수파티를 벌이는 자가 ‘자칭 문학천재’라는 김정일이다.

그 사회에서 못살겠다고 죽음을 무릅 쓰고 탈출하는 가냘픈 영혼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기 위해 대량아사 시기에도 풀지 않던 귀한 돈을 물 쓰듯이 써댄 자가 ‘위대한 문학천재’ 김정일이다. 이것이 어찌 인간의 영혼을 생명으로 여기는 위대한 작가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선동을 위한 예술이 김정일과 딱 맞는 수준

북한에서는 김정일을 ‘예술의 대가’라고 한다. 김정일이 김일성 후계자로 부상하면서 북한에서는 이상한 예술인 아류집단이 형성되었다. 그것은 이른바 김정일식 예술선전선동대였다. 예술선전대원은 그 발탁과정에서 우선 차이가 난다. 전문 예술인들은 치열한 경쟁과정에서 쌀에 뉘 고르듯 선택되어 전문 교육과정을 걸친 후 전문기관에 배치된다. 하는 일은 예술작품을 무대에 형상하는 일이다.

그러나 예술선전선동대원들은 현장에서 뽑혀 약간의 훈련과정을 거친 후 선전선동활동에 망라되었다. 그들의 역할은 생산현장에서 노래, 선동구호, 북소리로 군중의 생산열의를 높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소속단체에 따라 도(시)급, 군(구역)급, 대기업, 중소 기업소 등의 예술선전대로 분류된다. 대기업 예술선전대는 선전선동활동만 한다. 이에 비해 중소 기업소 예술선전선동대는 반유급제로써 가동 일수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만 예술선전선동활동에 참여한다. 북한 예술선전선동대의 대부분 성원들이 중소 기업소 예술선전선동대의 부류에 속한다. 이들은 직업적 특수성으로 하여 현장 일에 마음을 붙일 수도 예술에 대한 진지한 탐색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전문 예술단 조직은 중앙에 몇 개, 그리고 각 도에 하나(명칭-도 예술단)씩 조직되어 있다. 그러나 예술선전선동대는 중앙은 물론 각도(시), 각 군(구역), 각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어촌, 임산마을에까지 말 그대로 세포화되어 있다. 즉 북한은 전국적으로 예술선전선동대가 체질화되어 있는 나라다. 이 예술선전선동대가 예술과 노동, 생활에 대한 북한인들의 의식을 기생적이고 의존적으로 몰아가는 데 기여한 점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예술선전선동대원 중에 예술이나 생활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가진 이가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북한에서 만났던 전문 예술인들은 적어도 예술에 대한 겸손과 고민을 아는 자들이었다. 한국에 와서도 그들은 예술계에 뛰어들기를 조심하는 사려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동네에 사는 음악가 집안 출신의 한 평양음대졸업생은 예술의 ‘예’자 조차 입에 담는 일 없이 오직 장사에 골몰하는 착한 젊은이다. 또 조그만 보리밥집을 운영하는 한 예쁜 탈북여성은 평양 제2금성중학교에서 성악전문교육과정을 마칠 정도의 수준이면서도 “남한 예술계에 입문해보지”하는 나의 조언에 “내 정도로는 안돼요.”고 잘라 대답해 나를 숙연케 하였다. 그것이 북한의 예술인들이 보여주는 품성이다.

최진이 / 前조선작가동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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