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해 총폭탄 되자는 그림만…”

▲ 얼굴없는 작가로 유명한 탈북화가 선무(32)씨가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데일리NK

사람들은 그를 ‘얼굴없는 화가’라고 부른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 때문에 자신을 감추고 있지만 날카로운 붓으로 북한 체제의 모순성을 고발하는 그를 우리는 ‘탈북 화가’라고도 부른다.

지난달 28일 ‘행복한 세상에 우리는 삽니다’는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연 탈북 화가 선무(32)씨를 5일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충정로 대안공간에서 만났다. 그가 가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선무(線無)’라는 이름은 남과 북으로 나눠지지 않은 하나의 세상을 염원한다는 뜻이란다.

북한에서도 미대를 다녔던 그는 지난 2004년 한국에 입국해 현재 홍익대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는 “예술로써 북한을 얘기할 수 있는 너만의 능력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으로 남한에서도 계속 붓을 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북한에서의 미술은 철저히 체제 선전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신도 북한에선 선전화밖에 그릴 수 없었다는 것.

“북한에서 개인 작품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로 오로지 체제선전밖에 할 수 없다”며 “나도 군대에 있을 때 그림을 그렸는데, 김부자의 위대성을 상징하고, 그들을 위해 총·폭탄이 되어야 한다는 그림밖에 그릴 수 없었다.”

그는 “북한에서는 화가가 되기 위해서도 성분이 좋아야하고, 김 부자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 사람들만 특권을 누릴 수 있다” 고 성토한다. 대학 교수들이 자신의 그림을 중국과 밀거래해 밀가루와 바꿔 먹을 정도로 열악한 것이 북한 화가들의 현실이라는 것.

그러던 그가 한국에 온 뒤로는 그림으로 북한 체제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에는 유독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많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미소가 참으로 천진하다고 평한다.

그러나 그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이들의 거짓된 미소 속에 담겨진 수령 우상화 교육의 실체다. “유치원에서 배운 첫 글자가 ‘어버이 수령님 감사합니다’인 이들은 불쌍한 존재다.” 그리고 그는 한마디로 북한을 정의한다. “행복마저 조작하고 있는 사회”라고.

‘행복한 세상에 우리는 삽니다’라는 개인전 주제도 반어적 의미를 품고 있다. “북한에서 아직도 쓰고 있는 선전 문구다. 이번 전시회에서 ‘불행한 세상에 우리는 삽니다’라는 표현을 반어적으로 표현했다.”

지난달 28일 시작된 전시회는 이달 27일까지 서울 충정로 대안공간 충정각에서 계속된다.

[다음은 선무 씨와의 인터뷰 전문]

▲ 작품 ‘벗다1’ : 북한 체제에서 벗어나고 싶음을 표현한 작품으로서 여성의 강렬한 눈빛을 통해 체제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했다.

-북한에서 미술은 어떤 분야인가?

“북한사회의 예술, 특히 미술은 완전히 정치적인 일이다. 북한사회에서 영화, 연극, 문화 등과 함께 미술 분야도 북한사회를 움직이는 한 축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개인 작품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오로지 체제 선전 밖에 없다. 체제와 관련이 없는 거라고는 금강산, 백두산 풍경, 옛날 산수화 정도다. 나는 군(軍)에서도 그림을 그렸는데, 김(金)부자의 위대성을 상징하는 그림들과 그들을 위한 총·폭탄이 되어야 하는 선전 그림만을 그렸다. 북한 사회를 풍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오로지 남한 사회를 비난하거나, 물리쳐야 한다는 내용뿐이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군, 농장, 기업, 군(郡)과 리(里)단위까지 창작사가 있어 그들을 통해 그림이 만들어지고 선전되고 있다. 이들은 당 정치부에서 관리하고 육성되고 있다.”

-북한에서 화가는 어떻게 육성되나?

“북한에서는 미술학원은 없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 중에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을 뽑아 미술 소조를 편성해 방과 후 지도를 받는다. 이후 계속 활동을 하고 싶은 경우는 평양에서는 평양미술대학(4년 과정), 각 도마다는 미술, 체육, 음악을 특성화 한 예술전문학교(3년 6개월 과정)에 갈 수 있다.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물론 그림을 잘 그려야 되겠지만, 우선되는 것은 성분이다. 성분이 좋지 않을 경우는 체제를 선전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일 것이다.”

-남한에서 예술은 배고픈 직업이라고도 한다. 북한에서는 어떤가?

“북한에서도 김 부자의 초상을 그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일부 사람들만이 대우를 받고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이 부류를 제외하고는 그림만을 그려서는 생계를 책임질 수 없다. 학교 교수들이 자신의 그림을 중국과 밀거래해 밀가루와 바꿔 먹을 정도로 나머지 사람들은 생계유지가 어렵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가 ‘행복한 세상에 우리는 삽니다’이다. 어떤 의미인가?

“‘행복한 세상에 우리는 삽니다’는 북한에서 아직도 쓰고 있는 선전 문구다. 나는 이 문구에 반어적 의미를 담아 ‘불행한 세상에 우리는 삽니다’라고 표현했다.

그림에 표현된 행복에 겨워 만면에 희열을 띤 소녀, 소년들, 이른바 행복 동이들을 보고 어떻게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있을까 의아해 한다. 하지만, 이것은 행복이 아니다. 유치원에서 배운 첫 글자가 ‘어버이 수령님 감사합니다’인 이들은 불쌍한 존재다. 행복마저 조작하고 있는 게 북한사회다.”

-전시회를 열기까지 어려운 점은 없었나?

“부암동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기간 동안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쳐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었고, 갤러리를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들어와 역정을 내며 당장 그림을 떼라고 한 적도 있었다. 내걸린 김정일 초상화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초상화는 인공기를 거꾸로 표현했고, 인공기 안의 별 꼭지가 김정일의 머리를 향하고 있는 김정일과 체제를 비난하는 그림이었다.

또 그림 속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고 아이들의 웃음이 좋다고 평가해 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여기에도 역시 어릴 적부터 김 부자를 위해 거짓된 웃음을 지어야 하는 북한의 현실을 비판의 의미가 담겨있다.

아이들의 꽃봉오리는 전부 노란색인데 이것은 김정일에 대핸 ‘경고’(옐로우 카드)를 의미하고 있다.”

-남한의 미술을 접하고 느낀 점이 있다면

“잘 모르겠다. 내가 평가할 수 있겠는가? 전체적으로는 누구의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나름대로 자기의식을 반영한 미술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어떤 때는 나조차도 어떤 뜻인지 애매모호한 작품들도 있었다.(웃음) 또 북한 사회와 다르게 사회성이 전혀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도 많다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