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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외무성은 1일 담화를 통해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를 평양으로 공식 초청했다.
대변인은 “미국이 진실로 공동 성명을 이행할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면 그에 대하여 6자회담 미국측 단장이 평양을 방문하여 우리에게 직접 설명하도록 다시금 초청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에도 북한 한성렬 유엔대표부 차석대사가 힐 차관보의 북한 방문과 관련, “우리는 초청을 했고 받아들일지 여부는 힐 대사에게 달려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대변인은 “선군정치에 기초한 독특한 일심단결과 자립적 민족경제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사회주의 체제는 미국의 ’금융제재’ 같은 것에 흔들리지 않게 되어 있다”며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빼앗아간 돈은 꼭 계산할 것”이라면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묶인 북한돈 2천400만 달러의 동결 해제를 간접적으로 촉구했다.
이어 “이제라도 우리는 핵 포기 문제와 함께 쌍무관계 정상화, 평화공존, 평화협정 체결, 경수로 제공 등 공동성명 조항들을 ’동시행동’ 원칙에 따라 충분히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이제 남은 것은 미국이 우리가 6자회담에 나가 마음 놓고 우리의 공약을 이행할 수 있는 조건과 분위기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당국이 힐 차관보를 직접 평양으로 초청한 데는 북한의 대화의지를 내외에 천명하면서 미국과 정치적 담판을 이끌어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힐 차관보의 평양 입국만으로도 북미 사이에 대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것을 내외에 천명하는 것이 된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2000년 10월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을 두 차례 가지면서 북미관계가 전향적으로 풀릴 조짐을 보인 적도 있다. 당시 김 위원장과 올브라이트 장관은 미사일 협상과 양국 관계 정상화 문제에 대해 상당한 의견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힐 차관보 초청도 6자회담을 통한 다자 협상보다는 미국과 담판을 통해 금융제재와 관계정상화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것이다.
6자회담은 핵이 주요한 의제인데다 각국의 이해를 조정해 공증 절차까지 거쳐야 하기 때문에 경제제재 해제가 우선인 북한 입장에서는 매우 번거롭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과의 정치협상은 미국이 넘어올 만한 카드만 제시하면 경제제재 중단과 후속 북-미 직접협상이라는 덤까지 얻게 된다.
북한 당국은 미 국무부 협상파의 입지를 살려주면서 북한의 대화의지를 대외에 알리는 효과도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내 은행에까지 확산조짐을 보이고 있는 대북 경제제재가 김정일 위원장의 통치시스템에 상당한 압박이 되고 있다는 반증도 된다.
북한이 미국의 경제제재를 완화시킬 카드는 무엇이 있을까? 현 상황에서 추론해볼 수 있는 것은 먼저 위폐제조 중단 의지를 눈으로 확인시키거나, 이른바 조선반도 비핵화와 한반도평화협정에 따른 북한판 북핵폐기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미국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일단 낮아 보인다. 미국은 북한에 먼저 북핵폐기를 위한 실질적 先행동 방안을 6자회담에 복귀하여 논의하자는 입장에서 후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대북 금융제재라는 효과적인 수단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핵폐기를 위한 실질적 先행동을 취하기 전까지는 신뢰하기 어려운 북한과 실효성 없는 협상을 진행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북한은 힐 차관보 초청을 대외에 알리면서 중국과 남한의 외교적 지원을 받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북한이 힐 차관보를 초청하면 대북제재보다는 대화를 바라는 중국과 남한이 북한을 거들 수 있고, 또 미국이 거부하게 되면 ‘미국은 대화마저 피한다’고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