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영화 열망 최은희 납치 때 극에 달해”

▲ 영화 ‘가정’의 한장면 사진출처-통일부 북한자료센터

“북한에도 불륜 영화가 인기 있다?”

미국의 정치외교 연구소 ‘포린폴리시 인 포커스(FPIF)’의 존 페퍼 공동소장은 지난 12일 웹사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은 체제 우월성 선전과 수령의 우상화를 위해 영화를 이용해왔지만, 최근 북한 영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페퍼 소장은 “북한은 2차 대전의 참상과 한국 전쟁의 폐허 속에서 빠른 속도로 재건됐다. 1960년에서 1970년대까지 북한 영화에서도 유토피아에 대한 기대는 아주 높았다”며 “그러나 그 이후부터 정체의 길에 접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이 직접 북한의 영화 역시 같은 시기부터 정체되었다고 인정한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라며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는 북한 주민들 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북한 정권은 영화를 통해 항상 발전하는 사회를 그렸지만, 주민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北 주민, 이상과 현실 부조화 깨달아=“구소련에서는 브레즈네프 집권기(1965-1983년) 동안 외국 영화, 책, 지하출판물 등 다른 곳에 흥미를 쏟았지만, 북한 사람들에게는 지금까지도 어떤 다른 대안도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후 북한의 영화 산업은 로맨스와 같은 현실 도피로 돌아서게 됐다. 이혼, 삼각관계, 이중생활 같은 새로운 주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는 2001년 제작된 ‘가정’ 시리즈를 들 수 있다. 9부작으로 이뤄진 이 단편 영화에서는 이혼과 이를 둘러싼 가족의 갈등, 자녀들의 방황 등이 다뤄졌다.

페퍼 소장은 이외에도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북한 영화들이 국제무대에 속속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한 배급사가 북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한 여학생의 일기’의 판권을 사들여 유럽에서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또한 영국의 대니얼 고든 감독은 북한당국으로부터 촬영을 허가 받아 ‘어떤 나라’와 ‘천리마 축구단’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페퍼 소장은 “영화는 북한의 문화와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체제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영화사를 연구하기도 한다”며 “그러나 북한의 영화가 근본적으로 그 사회의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영화를) 일차원적 프로파간다(선전)의 도구로 격하시킬 것이 아니라, 북한을 엿보고 이해하기 한 수단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김정일은 권력 승계와 체제 유지에 있어 영화를 매우 유용한 도구로 활용됐다고 페퍼 소장은 지적했다.

그는 “김정일이 대단한 영화광이라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많이 공개됐다”면서 “그가 ‘친애하는 지도자’라는 정치적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삶과 영화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 한여학생의 일기를 보기위해 줄을 선 사람들 ⓒ연합

◆불가리아 관객 사로잡은 ‘홍길동’=이어 “북한의 영화는 김일성의 개인숭배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김정일은 또한 영화를 통해 중국의 덩샤오핑이나 구소련의 고르바쵸프와는 달리 권력 세습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페퍼 소장은 “영화를 통해 아버지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를 구축한 김정일은 1970년대 북한 영화가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깨닫게 됐다”며 “당시 그는 굉장한 영화 수집가로 외국과 북한 영화간의 현격한 차이를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1980년대 말 불가리아에서 가장 유명했던 영화 중 하나는 북한 영화인 홍길동이었는데, 한국의 ‘로빈훗’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고전 영화는 홍콩스타일의 액션을 동구권에 처음으로 소개했다”며 “ 화려한 액션 연기는 동유럽 관객들의 눈을 현혹시켰다. 홍콩영화의 방식을 차용한 것은 북한 영화 산업을 부활시키기 위한 한 방편 이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에 대한 김정일의 열망은 1978년 남한 여배우 최은희를 납치함으로써 절정에 이른다.

페퍼 소장은 “6개월 후에는 최은희와 별거 중이던 남편 신상옥 감독까지 납치해 와 영화 제작에 참여하게 했다. 이 부부는 1986년 북한을 탈출할 때까지 북한 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신상옥 감독이 제작한 가장 유명한 영화는 북한판 고질라인 ‘불가사리’와 한국의 대표 러브스토리 춘향전을 재연한 ‘사랑, 사랑, 내 사랑’ 등이 있다. 신상옥 감독은 한국적 이야기 흐름에 로맨스와 SF까지 포함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홍길동의 오락적 관점과 신상옥 감독의 새로운 흐름들이 북한 영화에 담겨있는 정치적 메시지를 분산시켰는지 아니면 그 메시지를 주민들이 더욱 쉽게 흡수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지는 분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물론 김정일이 북한에서 영화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인물은 아니라고 페퍼 편집장은 평가했다.

그는 “북한 정권은 일찍이 언론매체의 혁명적 잠재력을 인식하고 있었다. 김일성 하의 북한 노동당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소련의 지원에 강하게 의존해 한반도의 북쪽을 점령할 수 있었다. 구소련은 이미 초기 러시아혁명 시기에 선진적인 영화기술을 구비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미 그때부터 북한은 구소련의 모델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페퍼 소장은 “영화는 북한의 민족주의(전적으로 김일성의 개인 우상화에 활용되는)에 소련의 공산주의를 접목시키기 위한 이상적인 수단 이었다”면서 “평양의 지도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내용을 통제할 수 있었다. 정부는 출판물도 검열할 수 있지만,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에 과거를 더욱 매력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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