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연구] 정치인 김정일―1 예술 이용한 선전·선동

▲ 영화촬영 현지지도. 김정일이 80년 9월 동평양야외촬영소를 방문해 혁명영화
‘조선의 별’ 촬영을 현지지도 하고 있다.<출처:chosun.com>

“장백의 험한 산발 눈보라 헤치고 혁명의 수만리 길 걸어오셨네. 크나큰 그 은덕은 만대에 길이 빛나리. 인민들은 충성으로 수령을 노래하네….”

북한의 문화예술계에서는 선서모임이라는 것을 한다. 매일 출근하자마자 한다. 초상화(김일성, 김정일)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누군가 선창한다. 1절, 2절, 3절까지 한다. 그러고는 세포비서(최하급 당 책임자)가 구호를 부른다. “…친위적 결사대가 되자.”

그러면 모두 주먹을 쥔 한 손을 가슴 옆에 세우고 ‘친위적 결사대’를 세 번씩 외친다. 작가 예술인들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한다.(김정일의 처형 성혜랑 ‘등나무집’)

북한의 작가, 연출가, 배우 등이 모여 이른바 예술 영화를 만드는 창작단은 주로 대작을 만든다. 항일무장투쟁, 김일성 주석 가계 영화 등이 주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대남공작원들의 얘기가 화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목란꽃’ ‘적후의 진달래’, ‘이름없는 영웅들’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는 영화가 그런 것들이다. 이름없는 영웅들에서 적 방첩대 장교가 되어 활약하는 여주인공 순희의 역할은 사람들의 입에 오랫동안 오르내렸다.(김현희, ‘여자가 되고 싶어요)

북한에서 영화 연극 등은 대부분 혁명을 주제로 다뤄야 한다. 예술이라기보다는 체제 선전, 선동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같이 사랑 등을 다룬 영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일반 주민들은 이런 영화를 볼 수 없다. 북한에선 ‘참고 시사영화’란 것이 있다. 만수대 예술극장 등 특정한 장소에서만 상영한다. 매주 수요일 오전에만 허용돼 있다. 러시아, 중국, 일본 영화 등이다. 가끔 서방세계의 첩보영화 같은 것도 끼여있다. 북한의 영화 배우가 그야말로 예술성있는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외국문물을 접할 수 있는 기회다.(신영희 ‘진달래꽃 필 때까지’)

이런 일화도 있다. 86년 1월 1일 신상옥 감독과 영화배우 최은희씨가 납북된 후다. 이들은 금수산의사당(주석궁)에서 열리는 신년축하회에 참석했다. 축하회가 끝나고 김일성 주석이 일어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울렸다. 김일성 주석이 퇴장하자마자 한 사람이 연단에 등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들에게 이제부터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특별한 주선으로 이제 인민문화궁전에 가면 신필름이 새롭게 제작한 ‘사랑 사랑 내사랑’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말을 들은 참석자들은 웃음바다를 이뤘다. 사랑이란 단어 자체가 이들에겐 생소했다.(신상옥 ‘우리의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

북한은 김정일이라는 한 연출가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는 연극무대에 가깝다. 그것은 사전각본에 의해 철저하게 연출되고 있다는 점과 배우 개개인이나 디테일의 묘사 자체가 거의 연출가에 의해 다듬어지고 있는 현상 그리고 방대한 등장인물이나 무대배경 등의 세팅 자체가 획일화·규범화·총체화되어 있는 양상 등에서 확인이 된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하 김정일)은 64년 6월 정치 분야에 얼굴을 내민 이래 예술 분야에서 많은 일을 했다. 선전선동부 부부장, 당 조직 및 선전담당 비서를 지냈다. 이런 부서가 있다는 것 자체가 예술과 선전·선동을 동일시하는 체제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은 김정일이 자주 작가·예술가 대회를 연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워크숍 형식의 사상학습을 시키거나 나름대로의 지침을 내려 보내면서 공연작품의 테마까지도 정해준다.

김정일의 탁월한 점은 개혁·개방에 대비한 내성(耐性) 강화에도 문화예술이라는 도구를 절묘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예상을 깨고 윤도현 밴드의 평양공연을 조선중앙TV를 통해 북한에 생중계한 것이나 베이비복스의 공연을 허가한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베이비복스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섹시한 몸짓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이다. 이들은 북한에서 복장에 제한을 받았다. ‘주체음악론’을 보면, “록 음악은 사회주의 사상을 오염시키고 자본주의의 광란적이고 퇴폐적인 정신을 유입시킬 독소적인 음악”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들 음악을 개방한 것은 예술의 쾌락적 기능으로 인민들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의 예술을 이용한 정치인 셈이다.

김정일은 문화예술을 통해 미래의 북한사회를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가?

북한사회는 50~90년대 천리마운동·속도전을 통해 피로도가 극에 달해 있다. 강성대국의 착시를 노리고 있는 김정일로서는 앞으로도 영화나 소설, 음악 등의 예술적 도구를 통해 그것의 쾌락적 기능과 마술적 기능의 효율성을 최대한 증대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공장이나 인민군부대 내의 ‘예술소조운동’을 강화시키는 조치를 취할 것이며, ‘쉴참 노래경연’, ‘1인 1악기 이상 다루기’, ‘영화주인공 따라 배우기’ 등의 사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소재의 다양성 모색과 대중성 확보에도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고구려사나 고려사 등 민족적 자부심을 고양시키는 역사물 창조나 애정문제의 대담한 묘사 등 예술적 재미를 주는 창작물의 허용 등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테면 작년에 질펀한 성애묘사로 큰 화제를 모은 북한소설 ‘황진이’의 영화화 등과 같은 시도다. 정치적 피로도를 북한판 예술로 풀어주려 할 것이다. 예술을 통치 도구화하려는 김정일의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출처:chosun.com>

박태상 한국방송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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