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연구] 외교관 김정일―3 삶 외면한 경제외교

▲ 김정일은 어릴 때 꿈이 조종사였다고 한다. 2001년 러시아 방문길에 노보시비르스
크의 항공기 생산업체에 들러 조종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도서출판 중심 제공)

200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하 김정일)은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 머물면서 도시 중앙광장에 러시아정교 성당이 세워지는 것을 봤다.

그는 즉석에서 이듬해 방문 일정에 이 곳을 포함시키자고 했다.

2002년 8월 22일 김정일은 하바로프스크의 성 인노겐치 이르쿠츠크 성당을 찾았다. 40분 정도 머물면서 이곳저곳을 살펴본 김정일은 수행원들에게 평양에 러시아 정교 성당을 지으라고 했다. 실제 평양에 ‘정백사원’이 착공된 것은 2003년 6월이었다.(올가 말리체바 ‘김정일과 왈츠를’)

2001년 김정일은 러시아를 방문하는 동안 군수공장을 많이 돌아봤다. 주로 탱크 T-80, 유도무기, 고사포 로켓 콤퍼지션 등에 관심을 보였다. 노보시비리스크의 항공기 공장도 방문했다.

김정일의 외교에 민생(民生)은 없다. 김정일은 방문국 선정부터 그렇고 외국방문 중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현장 방문보다는 군수공장 등에 주로 관심을 보인 것도 그렇다. 김정일은 1999년 당정 간부들과의 담화에서도 이런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김정일은 “적들은 우리가 인공 지구위성을 쏘아올리는 데만 몇 억달러가 들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입니다. 나는 우리 인민들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남들처럼 잘 살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운명을 지켜내고 내일의 부강조국을 위해 자금을 그 부문으로 돌리는 것을 허락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경제 외교는 자신들이 자랑해 온 자립경제와는 관계가 멀다. 외국에서 빚을 들여오고 외화가 필요하면 정치적 흥정으로 빚을 탕감받는 식이다. 이런 대외경제관계는 북한 최고 지도자의 경제외교를 변질시켰다.

상대국가의 시장이나 기업, 경제주체들을 상대로 한 경제외교가 아니라 상대국 최고지도자의 정치적 결심을 이끌어 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냉전, 특히 한반도의 긴장성을 부각시켜 지원과 빚 탕감 등 반사이익을 창출하는 경제외교였다.

그러나 사회주의 시장이 사라진 90년대 초를 기점으로 자립경제의 취약점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1997년에 이르러 산업생산규모는 89년의 거의 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외부로부터 에너지와 원·부자재 도입이 급격히 줄어 산업생산 가동률은 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20~3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는 주민들의 식량난과 생필품난을 직접 야기시켰다.

이런 시점이야말로 김정일의 경제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전개되어야 할 시기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정일의 경제외교가 이런 기준에 부합하는가.

2000년 이후 김정일도 상당히 노력한 흔적이 있다. 김정일은 중국을 세 차례, 러시아를 두 차례 방문했다.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장쩌민, 일본의 고이즈미,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를 비롯, 각국 국가수반들을 초청하여 외교전도 펼쳤다.

이 과정에 식량 의료품 등 적지 않은 경제적 지원도 이끌어 냈다.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스웨덴의 국가모델을 연구하여 도입한다고도 하였고 2000년에는 ‘천지개벽’라는 표현으로 중국의 개혁모델을 도입하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김정일의 경제외교는 방문지에 대한 후속 조사연구로 이어져 수많은 북한 관료들이 현지에 투입되어 현지 투자제도와 기업들의 경영실태를 조사, 학습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중국에 대규모 전문가가 파견되기도 하고 러시아에 철도와 에너지 전문가들이 파견되어 공동조사와 후속 협의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적은 저조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과 중국 및 기타 국가와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현재 북한경제는 여전히 2% 정도의 최하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교역실적은 최근 성장세를 보여 26억달러 정도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것은 80년대 말 무역량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며 투자유치실적은 수천만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산업 가동률은 여전히 3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식량은 국제사회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연간 80만~120만t이 여전히 모자라는 형편이다.

김정일은 경제외교에서 국제사회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중요 현안들을 직접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평화를 지향하는 모습이 적극적이지가 않고 문제발생의 근원을 외부로 돌리는 관습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경제외교를 한다고 했지만, 우호국가에 치우쳐 있고 개혁을 한다고 했지만, 기존의 이념과 관습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사실 북한경제난을 풀어 줄 수 있는 대상은 김정일이 경제외교를 펼친 중국이나 러시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그들도 개발도상국이라 자기 살기에도 바쁜 나라들이다. 이것은 김정일이 경제외교 대상국가를 잘못 선정하였거나 대단히 협소하게 선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일의 경제 외교 대상은 당연히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가와 국제 금융기구들이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김정일 자신이 북한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희생정신을 발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주민들은 지난 시기 ‘고난의 행군’ ‘간고분투’ 등 희생을 강요당했지만, 정작 가장 큰 희생정신을 발휘해야 할 당사자는 그것을 회피했다.

핵을 포기하지 않고 체제의 근본적 개혁을 지향하지 않는 것은 결국 김정일 체제의 수호라는 집권자의 이기심 때문이다. 외교에도 이런 이기심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때문에 오늘날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미지는 바뀌지 않고 있다. 대규모 대북투자나 교역이 일어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출처:chosun.com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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