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얻어먹어도 염치나 있어야지…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웃기는 키워드는 두 가지-북한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개혁 개방이었다는 것, 그리고 상호 내정에 개입하지 않기로 한다는 말이었다.

김정일이 개혁 개방을 싫어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자기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을 택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러면 어떻게 살겠다는 것인가? 그에게도 물론 방법은 있었다. 바로 남쪽을 봉 잡아 뜯어먹고 살겠다는 것이다. 자기는 한푼 벌 채비를 취하지도 않으면서 돈 많은(?) 곁의 사람이나 등쳐먹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하기야 어느 정도는 더 잘사는 쪽이 더 못사는 쪽을 도와 줄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첫째는 성실한 자조(自助)의 자세이고, 둘째는 도와주려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자세이다. 김정일에게는 도무지 이런 초보적인 두 가지 자세가 없다.

자조란 스스로 살길을 찾아 변신하고 혁신하고 개선하려는 자세다. 그런데 김정일은 개혁 개방이라면 아예 원수 취급하듯 하니 이것은 “나는 내 멋대로 살터이니 네가 다 먹여 살려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도무지 염치와 경우가 없는 소리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 말을 받아 “북한을 향해 개혁 개방이란 말을 자꾸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뜻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 네가 잘하기를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고, 그저 달라는대로 다 주기만 할 터이니 너는 네 멋대로 살아라”라는 말처럼 들려 기분이 영 좋지 않다.

김정일의 이런 태도는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음을 의미한다. 남에게 손을 내밀면서 어떻게 “나도 열심히 살길을 찾아 방법을 바꿔 보겠다”는 말 한마디 없다는 것인가? 이건 돈 주는 상대방을 그야말로 “너한테는 아무렇게나 대해도 괜찮다”는 투로 마구 대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일방적 자세가 정치적인 분야로 연장된 것이 다름 아닌 ‘상호 불개입’ 대목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우리는 남쪽의 보수 세력을 계속 공격해 댈 것이나. 너희는 ‘존엄한’ 우리 공화국 체제에 대해 인권이 어떻고 납북자가 어떻고 일언반구 떠들지 말라”는 뜻이다.

김정일 정권이야말로 아침에 눈만 뜨면 ‘남조선 괴뢰’ ‘파쇼도당’ ‘미제 식민지’ ‘인간 쓰레기’ 하며 온갖 욕설을 퍼부어 댄다. 그러면서도 이쪽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 등, 민간 세력의 비판에 대해서까지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폭파해 버리겠다”고 공갈친다.

국내정치에서도 비방, 허위사실에 기초한 네거티브 공세, 명예훼손이 아닌 정당한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런데 하물며 6.25 남침을 겪은 남북간에, 자기들은 이쪽을 향해 온갖 악담을 쏟아 부으면서, 이쪽의 납북자 가족, 국군포로 가족, 인권운동가, 비판언론에 대해서는 찍소리도 하지 말라는 식이라면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도대체 이런, 문명세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방성이 어째서 김정일 정권에서는 예사로 가능하다는 것일까?

그것은 모든 독단적 이데올로기의 광신도들에게서 공통되게 발견되는 도덕적 절대주의와 선민(選民)적 우월의식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정의와 진리와 선(善) 그 자체이기 때문에 나는 너를 질타할 수 있지만 너는 나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터무니없는 우월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남북대화와 평화정착은 우리에게는 운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그 무엇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논의하고 실천하는 상대방이 시종일관 저런 식이라면 그 길은 참으로 고난의 역정일 수밖에 없다. 김대중 노무현 식 대처방법으로 저들은 완전히 ‘갈수록 양양’으로 콧대가 높아졌다.

이보다는 나은 모습으로 될 수도 있었던 문제가 지난 10년간의 이쪽의 어설픈 대처로 마치 화수분에 물 붓는 격이 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