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안전중요, 주민들은 떠나라”

▲ 직선으로 뻗은 평양-개성간 고속도로

최근 평양- 향산간 고속도로 주변에 사는 주민들 사이에 곡성이 울려 나오고 있다. 올 봄부터 시작된 고속도로 인근 주민 강제철거령으로 갑자기 집을 잃게 된 사람들의 한숨 소리다.

평양- 향산고속도로 주변에 살고 있는 북한주민 류00씨(평남 안주시 거주)는 1일 단둥에서 기자와 만나 “올 봄 도로 주변 1km 안에 있는 집들은 모두 허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고 말했다.

‘장군님의 신변안전’과 ‘외국손님들이 보기에 좋지 않다’는 것이 강제철거 이유.

북한은 당국에서 철거를 지시하면 주민들은 지체없이 집을 비우고 떠나야 한다.

류씨는 “관광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장군님의 의도라고 당 간부들이 말했다”며, “그러나 철거의 직접적인 이유는 장군님의 신변안전을 위해 도로 주변에 인가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묘향산 관광’은 부차적인 이유라는 것.

류씨는 “중앙당 행사과(김정일의 행사 담당) 간부들이 평양에서 내려와 시(市) 당 간부들과 도시경영과 직원들을 데리고 직접 다니며 철거대상을 찍어주었다”고 말했다.

류씨에 따르면 철거 대상은 고속도로 주변 단층집과 오래된 아파트, 학교 등 도로로부터 1천 미터 안에 있는 건물들이 대부분 포함됐으며, ‘김일성-김정일 연구실’은 제외되었다.

“철거주택은 해당 직장에서 해결해주라”

평양-향산간 주변도시인 숙천, 문덕, 안주시 등은 이미 1차 철거가 끝났고 가을부터 2차 대상이 헐릴 예정이다. 철거 대상에 오른 집들은 임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직장 창고를 수리하거나, 거처를 마련할 때까지 아는 사람 집에서 동거해야 한다.

류씨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해당 직장에서 집 문제를 해결해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집 문제를 놓고 철거대상 노동자와 공장 지배인이 다투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것. 지배인 역시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 “지금 공장도 돌아가지 않는 판에 어떻게 집 문제까지 해결하느냐”며 노동자들에게 도리어 하소연 한다는 것이다.

또 인민위원회 도시경영과를 찾아 다니며 ‘집을 달라’고 항의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지만, 간부들도 뾰족한 수가 없어 속수무책이라고 한다. 도시경영과에 가면 “지배인에게 가보라”, 지배인은 “도시경영과에 가보라’며 서로 피한다는 것이다.

묘향산 관광 때 외국인과 주민 격리 목적

기자가 북한에 있을 때 평양-향산간, 평양- 개성간 고속도로는 도로주변 1백미터 안팎의 건물을 모두 허물어 버리고, 도로를 직선으로 뽑았다. 그 후 ‘장군님 신변안전’ 때문이라며 토대(성분)가 나쁜 사람들을 다른 지방으로 추방한 바 있다. 지금은 ‘외국인들의 미관상 안 좋다’며 1천 미터 이내의 집과 건물을 모두 허물고 있는 것이다.

이번 철거령은 김정일의 신변을 해칠 수 있는 요소를 원천적으로 제거하고, 향후 묘향산 관광할 때 주민들과 외국인들의 접촉을 막으려는 데 있다.

얼마 전 금강산, 평양을 다녀온 한 남쪽 관광객은 “도로주변에는 황량한 산뿐이고, 북한주민들을 만날래야 만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 황량한 산 밑이 바로 쫓겨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95년 ‘이노키 소동’ 때도 많은 사람 동사(凍死)

이번 평양-향산 고속도로 공사로 인한 철거령은 95년 ‘이노키 소동’에 이어 두 번째다.

‘이노키 소동’은 1995년 4월 일본의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가 평양에서 은퇴경기를 하겠다고 하여 당국이 갑자기 평양- 향산 고속도로 주변에 사는 북한주민들을 강제철거시킨 사건이다.

당시 북한 당국은 이노키의 은퇴경기에서 외국 관광객을 받아 외화를 벌려고 꾀했다. 당국은 94년 겨울부터 행사준비를 위해 도로 주변의 낡고 허름한 단층집들을 쓸어버리고, 주민들을 산골로 들여 보냈다.

이 때문에 집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주민들과 강제철거를 집행하던 당국간에 난투극도 유발되었다. 당비서와 지배인들은 “철거대상들은 빨리 집을 비워라. 비우지 않으면 당증을 내놓으라”며 철거령을 당성과 결부시켰다. 북한에서 당의 지시를 거부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그때 집을 내놓고 추운 겨울날 창고와 천막에서 살다 굶주림과 추위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당국은 안토니오 이노키의 경기를 두고 외화벌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로 인해 수천 명 북한주민들의 원한을 샀다.

이번에 집을 잃은 사람들은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한영진 기자(평양 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중국 단둥= 권정현 특파원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