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의 체제수호를 담당하는 보위기관의 수장들이 잇따라 중국을 방문하며 김정일 방중설(說)이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정일의 방중 가능성은 미북, 북중, 남북 관계 변화 등 한반도 외교·안보 지형이 변화하는 시점마다 부각돼 왔었다. 김정일은 대내외 위기 때마다 중국, 러시아 등 우방국들을 방문해 양자간의 친선을 확인하고, 경제 협력 등 지원 약속 등을 다짐 받았다.
최근 베이징 외교가를 중심으로는 김정일이 내년 초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국가 주석과 회담을 가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 자리에서 중국이 북한에 대한 새로운 경제 지원을 약속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소문으로 떠돌던 김정일 방중설이 본격화 된 것은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지난 10월 29일 중국을 방문중인 최태복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통해 김정일 초청 의사를 밝혔다는 조선중앙통신의 보도가 나온 이후다.
당시 북한이 관영매체를 동원해 후 주석의 초청사실을 공개하자 김정일 방중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올해 ‘북중 수교 60주년’을 맞아 북한과 중국 고위 인사들의 교류가 활발했다는 점도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뒤이어 11, 12월에는 김정각 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주상성 인민보안상이 잇따라 중국을 방문해 관련 인사들과 접촉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의 주요 통치기구 수장이자, 김정일의 신변보호에 1차적인 책임을 담당하고 있는 측근들이 김정일의 방중에 앞서 사전 준비 작업에 나선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외교가에서는 북한 내 경제 상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그만큼 중국의 지원이 절실할 수 밖에 없다. 북한은 150일 전투-100일 전투에 이어 화폐개혁 등을 통해 계획경제 정상화를 꾀하고 있지만, 원자재·전력 등의 부족으로 경제성과가 불투명한 상태다. 지난 10월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과정에서 김정일에게 약속했던 ‘대북지원’의 시급한 집행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분석도 이어진다.
이와 관련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20일 김정일 방중 관련 보도를 내보내며 “중국은 지난 10월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 시 북측에 2억 위안상당의 경제원조와 압록강 다리 건설, 풍력발전소 건설 비용 제공을 약속했지만, 김정일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北, 2000년 이후 조급한 대외관계 패턴 보여
최진욱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지난해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외관계)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만 하더라도 한국과 일본, 미국에 단계적인 접근법을 보였는데, 지금은 한, 중, 미 3개국에 대한 전방위적 접근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최 연구위원은 “북한 체제의 조급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이같은 조급함이 ‘경제사정 악화’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반 주민들 이외에도 권력기관 내부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올 수 있고, 이럴 경우 북한 체제의 안정은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 연구위원은 “김정일의 입장에서는 체제 안정을 위한 경제난 해결을 위해서 중국으로부터 당장의 시급한 지원부터 받아야만 한다는 절박감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지금은 회복기에 들어서고 있다고 해도 김정일의 건강이 1주일 정도로 예상되는 방중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는지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또한 지난 10월 원 총리 방북 당시 중국이 대규모의 경제 지원 등을 약속한 이상 지금 시점에서 김정일이 방북을 한다해도 중국의 대북지원 규모가 특별한 이유없이 대폭 확대되긴 어렵다는 전망도 이어진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현재 북한은 외부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지만, 원자바오 총리가 지난 10월 방북에서 대규모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또다시 중국에 손을 내미는 것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그는 “3, 4월 춘궁기가 되면 식량난이 악화될 것이기 때문에 그때에는 북한이 중국에 원조를 요청할 명분도 생기게 될 것”이라며 “김정일의 건강상 지금은 외국에 나가기 적절한 시점이 아니기 때문에 회복된 다음에 방중 시점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연구위원 역시 “현재 김정일의 건강이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방중을 추진한다면 현 시점에서 건강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그러나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중국으로 간다면 북한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