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아닌 ‘새 파트너’ 찾아야 한다

김정일 정권의 생존 조건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군부에 대한 확고한 장악, 둘째는 주민들에 대한 엄중한 통제, 셋째는 외부와의 단절이다.

이는 김정일 정권이 그동안 보여준 내외정치의 행태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은 국가경제의 파탄, 김정일 개인경제의 위기로 인해 외부의 지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있다.

문제는 외부의 지원, 또는 외부와의 거래가 자립능력을 상실한 김정일 정권과 북한에 또 하나의 생존조건임과 동시에 위 세가지의 생존조건을 약화시키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순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김정일 정권이 꺼내든 카드가 이른바 ‘냉각전술’이다. 핵무기 개발이나 미사일 발사와 같은 강경책을 통해 외부와의 관계를 주기적으로 냉각시키는 것이다.

‘냉각전술’의 기대효과는 세 가지다.

첫째, 정상적인 외부와의 거래관계로 얻는 이익보다 훨씬 안전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정상적인 외부와의 거래는 주민통제와 외부단절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아 위험하다. 오히려 외부를 협박하는 방식이 훨씬 안전한 것이다.

둘째, 외부와의 관계를 냉각시키고 내부적으로 안보에 대한 긴장을 높임으로써 좀더 효율적으로 주민을 통제할 수 있다. 이는 지난 수십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완전히 체득되어 있는 것이다.

셋째, 외부의 그 어떠한 힘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강력히 맞서나가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함으로써 군부에 대한 확고한 장악력을 계속 유지해갈 수 있다.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는 김정일의 입장에서 볼 때 일리가 있는 선택이다. 다만, 국제정치의 지형, 동아시아에서의 외교관계,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안보환경, 남북관계, 북한 주민의 의식상태, 남한 주민의 여론, 세계 여론 등 모든 것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김정일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학습한 것만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여 판단하고 행동할 경우 점차 더 위험한 길로 빠져들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미사일 사태가 김정일에게 남긴 것은?

김정일 정권은 미사일을 발사해 여러 가지를 얻었다. 외부적으로는 자신이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을 부각시켰다. 내부적으로는 북한 주민을 긴장 분위기로 몰아갈 수 있었다. 남북관계의 페이스도 자연스럽게 조절할 수 있었다. 군부에 대한 장악력도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의 생존을 기준으로 볼 때에도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

첫째, 북한은 큰 망신을 당했다. 이번 실험의 핵심인 대포동 2호의 실험이 실패했다. 그동안 국제사회에는 북한을 깊은 산속 동굴 속의 악의 마술사처럼 엄청나고 신비한 잠재력을 가진 집단으로 보는 경향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실험실패로 그런 이미지가 크게 깨졌다. 북한의 고위 관리가 마약거래나 위조지폐 거래를 하다가 적발되는 등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한 적은 많이 있었지만 군사적인 측면에서 망신을 당한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다.

북한의 이번 실험은 이란의 구매사절단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진행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물론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인 대포동 2호를 이란에 판매하는 무모한 짓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양한 테러조직과 연계되어 있는 이란에 ICBM을 판매하는 것을 미국이 용납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매사절단의 주요 구매대상은 스커드 미사일이나 노동 미사일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실험의 핵심 대상이었던 대포동2호 발사에 실패함으로써 미사일 선진국의 이미지가 크게 깎였다. 이번 매매계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중장기적으로 북한의 미사일 판매에 다소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

둘째, 북한의 입장을 동정하고 도와줄 의지가 있는 남한 정부의 입장을 어렵게 만들었다. 남한 정부 내에서 북한에 대한 지원과 협조를 중심으로 정책을 펴려던 세력의 입지가 좁아졌고, 남한의 일반 국민들 속에서 북한과의 화해협력과 불신의 경계에 서 있던 사람들을 급격하게 북한과 거리를 두는 쪽으로 몰아넣었다.

셋째,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일정한 균열이 생겼다. 중국 정부는 미사일 발사 전에 공개적인 방식으로 미사일 발사를 만류했었다. 이는 이례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발사를 강행했다. 물론 북한은 평소에도 중국의 말을 잘 듣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외부세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중국은 북한의 맏형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국제사회의 그와 같은 이미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망신을 당했다는 인식을 낳고 있다.

중국이 UN안보리의 대북결의안에 찬성한 것은 북·중 균열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김정일 정권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관계가 사활적으로 중요한데, 북한이 이런 식으로 계속 나온다면 중국 내에서도 김정일 정권을 포기하자는 주장이 대두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김정일의 입장에서는 극히 치명적인 것이다.

넷째, 남한에서 김정일 정권의 입장을 옹호하고 변호하려는 세력의 입지를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일부 인사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준비가 인공위성을 위한 것이라고 변호했다. 또 일부세력은 하지도 않을 미사일 발사를 미국이 억지로 지어내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했었다. 이러한 세력과 인사들은 입장이 아주 난처해졌으며 입지도 좁아졌다. 김정일 정권의 입장에서는 중장기적으로 매우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다. 지난 6년여 동안 남북관계나 국제관계에서 쌓아 올린 여러 성과들을 스스로 허물어 놓았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조치를 강화시켜 놓음으로써 북한의 경제와 인민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한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초강경책이 점차 힘을 얻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김정일 정권의 생존 자체가 큰 위협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위의 모든 것들을 종합하면 미사일 발사로 김정일 정권이 얻은 실이 득보다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득보다 실이 많은 미사일 발사 선택한 이유는?

북한이 왜 미사일 실험을 강행했는지에 대한 분석이 구구했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심오한 전략 전술적 배경이 있을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에서 분석한 결과를 놓고 볼 때, 깊고 날카로운 의도나 목적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냥 쉽게 생각하고 어설프고 엉뚱한 결정을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개인독재 사회일수록 비합리적이고 부적절한 결정을 내릴 확률이 매우 높은데, 현재의 북한은 그러한 가능성이 훨씬 높아져 있는 상태다.

첫째, 김정일이 나이가 들어 사고의 집중력이나 판단력이 크게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의 경우에도 60이 넘어서면서 판단력이 많이 떨어졌는데 김정일도 자기 아버지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갈팡질팡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소중한 잠재적 카드들을 허비해버린 남북관계, 우왕좌왕하면서 시간만 허비해버린 개혁개방문제,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이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후계자 문제 등은 김정일의 판단력과 집중력이 크게 떨어져 있는 상황 때문에 빚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김정일 주변에는 주로 아첨꾼들만 남아서 김정일에게 적절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매우 적은 상태다. 설사 김정일에게 적절한 조언을 할 만한 지적 능력과 충성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북한체제의 특성상 김정일에게 조언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셋째, 선군정치의 드라이브를 일정 기간 걸어오면서 힘 있는 참모그룹에서 군쪽의 비중이 월등히 높아져서 균형이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넷째,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독재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심사숙고하고 긴장하면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을 점점 귀찮아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김정일도 점점 그렇게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권과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김정일 정권의 정치경제적 능력은 이미 오래 전에 바닥을 드러낸 상황이다. 마약제조, 위조지폐유통, 미사일 판매 등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통치에 필요한 자금줄도 거의 막혔다. 마지막 남은 중국과 남한의 경제협력 및 지원도 이번 미사일 사태로 위축된 상황이다. 김정일 정권의 미사일 발사는 김정일 정권 스스로를 더욱 어려운 국면으로 몰아넣고 만 것이다.

김정일 정권이 개혁개방에 성공함으로써 북한경제와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북한을 둘러싼 한국, 중국, 미국 등 주변국들은 지금이라도 김정일이 아닌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김정일 정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롭고 민주적인 북한 내 정치적 파트너와 함께 북한의 개혁개방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협력하는 중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

김영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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