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수해 현지지도 못하나 안하나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국무원 총리가 지난 7월 홍수로 수재를 당한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안후이(安徽)성 푸양(阜陽)시를 찾아 현장을 누비는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돼 중국인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준 적이 있다.

사진은 원 총리가 검은 장화를 신고 진흙길을 걸으며 수재현장을 둘러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여기에 직접 우산을 받쳐 들고 주민과 악수하는 모습은 13억 대륙인들에게 특권의식을 버린 인간적인 행보로 비쳐졌다.

원 총리는 1998년과 99년 여름, 대홍수가 중국을 강타했을 때도 양쯔강 수해 현장을 장화 차림으로 누비며 방재를 독려해 중국 인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재난이 있는 곳에 원(원자바오)이 있다’는 말이 널리 회자되기도 했다.

국가에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국가 지도자가 직접 현장에 나서 국민들을 위로하고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하는 것은 단순 이벤트가 아니다. 자칫 재난으로 절망과 실의에 빠질 수 있는 국민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는 강력한 리더십의 일환이다.

북한에도 지난 7일부터 열흘간 내린 집중호우로 수백 명이 사망·실종됐으며 8만8천400여세대의 주택이 침수·파괴되고 30여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의 경우 대동강, 보통강 범람으로 보통강 선교구역이 침수돼 주택 6천400세대, 공공·생산건물 300여개가 파손됐다. 또 30여개의 지하도와 농경지 8천200여정보가 침수됐다. 평양지역 외에도 강원도, 평안남도, 황해북도, 황해남도, 함경남도 등 거의 전역에 걸쳐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

북한 당국은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자 이례적으로 피해지역 상황을 관영매체들을 통해 신속하게 공개했다. 특히 조선중앙TV는 평남 북창의 한 고위 간부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라 전체가 피해를 보았으니 국제사회가 많이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호소를 내보내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김정일이 수해현장을 방문해 복구를 독려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김일성의 경우 1967년 평양 대홍수 당시 현장을 직접 방문해 방재작업을 적극 독려하고 이후 대동강과 보통강의 대대적 치수(治水) 사업을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국가에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 한 번도 현장을 방문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5년 대홍수 때에도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2004년 용천 열차 폭발사고와 지난해 수재로 인해 150여명이 사망했을 때에도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정상적인 국가지도자로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지 수백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하고 있을 때에도 김정일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함경남·북도 지역의 군부대와 공장기업소를 연이어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탈북자들은 “김정일은 인민들이 자연재해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어도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현장에 직접 나와 보지도 않는다”면서 “신변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한 재난 지역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김정일은 90년대 중반 300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사태 파악과 대책마련 보다는 책임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가 수백명 실종·사망한 수해 현장을 방문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일부에서는 위대한 지도자로만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하기 때문에 방문 자체를 검토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재해 현장을 방문할 경우 자칫 그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현장을 찾지 않는 지도자는 결코 국민들의 고통을 느낄 수 없으며 사태 해결을 위한 정확한 대안을 마련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뻔하다. 김정일은 지방 시찰 일환인 현지지도를 자신의 위민정책으로 과시해왔다. 그러나 정작 주민들이 수해로 고통을 겪을 때는 그림자 한 번 비추지 않아 ‘위대한 장군님’이라는 구호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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