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세계적 영화 제작 욕망 사로잡혀”

70년대 남한 최고의 여배우이자 부인인 최은희와 함께 북한에 납치됐다 극적으로 탈출하는 등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고(故) 신상옥 감독의 유고집 『난, 영화였다』(랜덤하우스)가 출간됐다.

이 책은 신 감독이 생전에 직접 집필한 자서전으로, 2001년 집필을 마쳤으나 지병이 악화돼 세상을 뜨면서 출간이 미뤄졌다. 책은 1년이 지나서야 부인 최은희 씨가 고인의 원고를 정리해 세상에 내놨다.

책에는 영화에 입문해 전성기를 누리다 납북과 탈북을 거쳐 헐리우드에 진출하기까지 신 감독의 영화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1978년 먼저 납북된 부인 최은희 씨를 수소문하다 같은 해 납북된 후, 북한에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열거해 독자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신 감독의 표현대로 그는 북한에서 ‘김정일의 파격적인 배려’ 속에 영화를 만들었다.

북한에서의 두 번째 영화 ‘탈출기’를 찍을 때였다. 신 감독은 기차 폭발 장면이 필요하자 김정일에게 제의서를 올렸다. 그는 “헛심 치고 ‘영화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진짜 열차를 폭파하고 싶다’고 했더니 금방 허가가 나왔다”면서 “북한에서나 가능한 일로, 내 평생 처음 겪어본 진짜 스펙터클한 촬영이었다”고 회상했다.

이같은 배려는 김정일이 지독한 영화광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 감독은 김정일 개인소유나 마찬가지인 영화 문헌고에 1만 5천여 편에 달하는 세계 각국의 영화 필름이 보관돼 있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신 감독은 “김정일은 영화를 정치 목적에 활용하면서도, 지금까지의 틀에 박힌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좀더 고차원적이고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어보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면서 “바로 이 고민과 딜레마를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가 우리 부부의 납치였다”고 말했다.

그런 김정일에게 신 감독은 “개인숭배에서 벗어나라”고 말하는 등 다소 위험한 발언까지 했다고 밝혔다. 신 감독은 북한 영화발전을 가로막고 있던 골칫거리는 바로 ‘김일성 교시’였다면서 “개인숭배에서 벗어나면 영화도 활기를 되찾고 나라 전체도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북한에서 처음으로 영화 출연배우와 제작진을 소개하는 자막을 넣고, 김일성 교시가 들어갈 자리에 ‘레미제라블’의 머리말 중 한 구절을 넣는 등 “김정일의 교시에 얽매이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 그에게 김정일은 1983년 신 감독 개인의 이름이 들어간 ‘신필림’이라는 영화제작사를 만들어줬다. 신 감독은 “김정일이 나에게 정치선전용 우상숭배 영화를 만들라고 강요했다면 어떻게 처신했을까?”라면서 “그런 점에서는 김정일에 대한 감정이 참으로 묘하다”고 말한다.

책은 이밖에도 북한에서 남한에서 제작한 영화를 떠올리며 그중 한 장면이 옥의 티처럼 생각돼 남한의 형에게 몰래 편지를 써 판을 찾아서 불살라 버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도 소개하고 있다.

신 감독은 서문을 통해 “원로 영화인은 정말 몇 명 남지 않은 안타까운 현실에 누군가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면서 “문자 그대로 파란만장한 영고성쇠가 엇갈리면서 내가 만든 어느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인생행로를 살아왔다”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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