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생일날, 北 주민들은 뭘 하나?

조선중앙TV 김정일화 전시 보도

오늘(2월 16일)은 김정일의 생일날이다. 북한은 김정일이 1942년 오늘 백두산에서 탄생했다고 선전한다. 이날을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로 제정하여 연중 가장 크게 쇠고 있다. 김정일의 생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만들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던 노동당의 교육 내용이 생각난다. 몇몇 노동당 간부들이 “주체혁명위업의 세계사적 승리를 위하여 불면불휴의 노고를 다 바치고 있는 김정일 동지의 생일을 전 국가적 명절로 쇠자”고 김정일에게 제기했다고 한다.

그때가 1982년인데 한 번 두 번 제기를 해도 승낙을 하지 않자 “우리 인민들의 간절한 소망”이라고 까지 말했다 한다. 그러자 김정일은 “수령님의 전사가 생일은 무슨 생일인가? 나는 조국통일이 될 때까지 생일을 쇠지 않겠다.”고 말했다는데, 이로 인해 간부들은 “김정일 동지는 겸허한 도덕을 지녔다”고 다시 한번 추켜세우는 ‘북 치고 장구치는’ 과정을 인민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당 내부에서는 김정일의 생일을 이미 1980년대부터 비밀리에 성대하게 경축하고 있었다.

김정일의 생일이 공식적인 명절로 등장한 것은 그 후 십 년이 지난 1992년 김일성의 권고에 의해서다. 북한에서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용어는 김부자(父子)의 생일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 조국을 찾아주시고 우리 민족을 세상에서 제일 부러워하는 월등한 민족으로 만들어주었다”는데 그 이유가 있다.

엄동설한에 진달래꽃 피워서 김정일 사진 앞에 진상

그럼 김정일의 생일날 북한 주민들은 뭘 하고 지낼까. 전날인 15일에 집체적으로 모여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 탄생 **돌 경축 중앙보고대회’를 중앙TV로 시청한다. 중앙행사가 끝나고 나면, 회사별로 ‘경애하는 장군님께 드리는 축하문’ 채택이 있다. 축하문은 물론 김정일을 “백두 광명성(光明星)으로 탄생하시어 우리 혁명의 진두에서 미제로부터 조선을 지켜주시는 절세의 명장”으로 극구 찬양하는 내용이다. 이어 ‘김정일 동지에게 드리는 충성의 편지’가 만장의 박수 속에 통과된다. 이 방식은 중앙에서 지방까지 일괄적으로 진행하는 전국적인 행사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진행하는 ‘충성의 편지 이어달리기’가 있다. 백두산에서 열흘 전에 출발하여 각 도와 군을 통과할 때마다 주민들은 행사에 동원된다. 종착지인 평양에 와서 김정일에게 전달한다. 중앙에서 파견된 간부들은 김정일의 고향(?)이라는 백두산 정일봉(正日峰)에 올라 ‘충성의 결의 모임’을 갖는다.

평양시와 일부에서는 ‘김정일화(花)’ 전시회와 사진참관을 진행한다. 기자도 군대에 있을 때, 엄동설한에 어떻게든 진달래꽃을 피워 김정일의 사진 앞에 바쳐 놓던 생각이 난다. 평양에서는 ‘백두산상(賞) 체육경기대회’를 진행 한다. 종목은 배구, 농구, 탁구, 예술체조, 권투 등이다. 여기서 우승하면 ‘백두산상 우승컵’을 시상한다.

15일부터 17일까지는 ‘특별경비주간’으로 제정된다. 군대는 명절이 끝날 때까지 장교들이 한 사람씩 명예근무를 수행하고, 사병들은 소대 단위로 진지를 차지한다. 후방에서는 직장마다 당비서, 지배인, 기사장 등 책임자들이 특별경비기간 명예일직을 선다. 이날 사고가 나거나 싸우면 죄의 ‘성격’이 달라진다.

‘김정일 사탕’과 ‘배려전기’

김정일 생일날은 연휴다. 16일과 17일 이틀간 쉰다. 아무리 나라의 형편이 어려워도 이날만큼은 술 한 병과 0.5~1Kg의 고기를 공급한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이마저도 없어 졌다.) 하지만 김정일이 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 생일날에 주라고 각 회사 일꾼들에게 지시한다. 그러면 그 회사의 간부들은 무엇을 팔아서라도 이날만은 반드시 공급을 해야 한다. 이날 공급 못한 간부들은 무능력자로 비판 받는다.

1990년대 이전에는 12살 이하 어린이들에게 당과류를 선물로 준 적이 있었는데 차츰 그런 관습도 없어졌다. 질 낮은 당과류이지만 어린애들은 ‘김정일 장군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매우 좋아한다. 아이들에게는 그런 이유로 손꼽아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이날만은 전기도 ‘명절공급용’이다. 알다시피 북한에서는, 평상시에는 몇몇 특수부서를 제외 하고는 대부분 낮에는 전력 공급을 아예 중단하고 밤에도 저녁 1∼2시간 정도만 전기를 공급한다. 하루 종일 전기공급을 하지 않는 날도 많다. 그런데 김정일 생일날에는 하루 종일 전기를 공급한다. 어쩌다 TV앞에 앉아있게 되는 날이 바로 이 날이다. 이때 전기공급이 중단되면 ‘배전부(配電部)’ 일꾼들은 반동으로 몰린다. 북한에는 집집마다 TV가 없으니까 오랜만에 준 ‘배려전기’ 덕택에 TV가 있는 집에 ‘동냥구경’을 가는 날이기도 하다.

올해도 예외 없이 김정일의 생일이 다가왔다. 핵무기가 있다고 선포해놓고 김정일은 배짱 좋은 척 앉아 있겠지만 북한에서 굶주릴 인민들이 걱정스럽다. 김정일은 배나 곪지 않았으면 하는 북한주민들의 천진난만한 기대를 헌신짝처럼 져버리고 죽음의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모처럼 맞는 명절날 밥이나 한 그릇 제대로 먹을지, 북녘에 고향을 둔 사람으로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한영진 기자 (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