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4주기 ‘차분히’ 왜?…“‘김정은 시대’ 부각”

진행: 언론은 사실을 전달해야 합니다. 하지만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체제를 위한 선전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는데요, 노동신문이 보도한 내용을 사실과 대조해서 짚어보는 <노동신문 바로보기> 시간입니다. 오늘도 북한민주화위원회 서재평 사무국장과 함께 합니다.

지난 17일은 북한 김정일 사망 4주기였습니다. 지난 18일자 노동신문에는 인민군 장병들과 각계각층의 근로자들, 청소년 학생들이 만수대 언덕을 찾아 헌화하는 사진과 이들이 추모하는 분위기를 전했는데요, 오늘 이 시간에는 김정일 사망 4주기와 관련 이야기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국장님, 김정일 사망4주기 행사가 예년보다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합니다.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네, 1주기 행사는 가장 큰 규모로 추모 분위기를 고조하는 데 집중됐고, 3주기도 ‘만 3년’이라는 것이 주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4주기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애도하는 일반적인 행사였습니다.

-생각해보니, 김일성의 4주기 때도 비슷했습니다.

3주기까지는 3년 상을 치르는 듯 한 분위기였죠. 특히 김일성 때는 3주기 때까지 관혼상제도 다 금지했어요. 다만 4주기 때는 애도 분위기는 사라지고 숨을 좀 돌리는 분위기였죠. 굉장히 차분했고요. 그 때가 한창 고난의 행군이었기 때문에 사실 일반 사람들에게는 김일성이 죽었는지 어떻게 됐는지 모를 정도로 삶이 너무 어려운 시기였어요. 그래서 애도 분위기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었죠.

2. 특히, 이번에 중앙보고대회를 진행하지 않은 부분이 주목됩니다. 지난해 3주기 때 대대적인 보고대회를 통해 김정일의 업적을 부각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인데요. 이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통상 중앙보고대회는 매번 하는 경우도 있지만, 4주기라든가 6주기라든가 정주년의 의미가 없는 해에는 열지 않았어요. 대신 화환 증정과 같은 일을 하죠. 김정은을 비롯한 중앙 간부들은 직접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을 참배하는 것으로 추모를 마무리합니다. 일반 주민들은 도시에서 동상이라든가 유화 사진에 꽃을 증정하는 것으로 간단한 추모를 마치게 됩니다. 이처럼 중앙보고대회를 매번 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김정일 사망 4주기 때부터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김정은을 부각시키려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4주기 당일에도 김정은은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는 소식만 들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3년 내내 참배에 동행했던 부인 리설주와 여동생 김여정은 보이지 않았는데요. 왜 동행하지 않았을까요?

추모 분위기에 따라서, 또 3주기였는지 5주기였는지에 따라서 부인을 대동할지 말지에 의미를 둡니다. 부인이라고 해서 매번 동행하는 건 아니고요. 온 가정이 다 나오는 경우는, 행사가 어떤 분위기나 큰 규모를 갖고 이뤄질 때 있는 일이죠. 3주기 이후로는 일반적으로도 잘 동행하지 않습니다. 딱히 큰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4. 일각에서는 이런 모습을 두고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의 4주기를 조용히 치르면서 이제는 아버지 시대의 유훈통치를 접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시대를 알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버지에 대해 만 3년 상을 치르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김정은 시대를 부각하고 빛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김정은 시대가 확실히 시작됐다는 걸 알리려는 것이죠. 3년 상이 끝난 뒤로는 애도 정도만 하고, 본인의 통치에 더욱 주력하고 이를 더욱 빛내려고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애도 분위기를 적당히 조절하고 차분하게 마무리한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5. 그만큼 북한에서 국가지도자로서 김정은의 위상이 확고해졌는지도 궁금한 대목입니다. 실제로 정치, 경제, 사회적인 측면에서 그런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네, 김정은이 지도자로서의 위치와 역할, 또 3대 세습 통치자로서의 자리 매김을 잡아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민들은 처음에는 김일성이나 김정일에 비해 김정일을 수령으로서 따르거나 신뢰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김정은은 지난 3년 간 북한 체제를 별 무리 없이 끌고 왔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주민들 사이에서 철없는 김정은에 대한 반신과 불신도 미세하게 있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해간다’라는 인식도 자리잡혀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할 거예요. 물론 북한 전체의 경제가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평양을 비롯한 대도시들 그리고 일부 장마당 계층 입장에서는 조금씩 개인의 경제 활동을 풀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반감을 누그러뜨리게 되겠죠. 실제로 북한 주민들과 통화를 해서 들어봐도 그렇습니다.

또 우리가 생각하는 큰 사태 같은 것들도 북한에서 딱히 일어난 바 없습니다. 주민들이 시장에서 보안원이나 안전원들과 마찰을 가진 사건은 있었지만, 그것이 크게 확산되지 않고 마무리 된 걸로 봐서는 김정은의 위상도 확실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자리 잡혀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6. 그렇다면, 실제로 북한 주민들 사이에 분위기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식으로 4주기 추모행사를 치렀고, 이와 같이 조용히 치러지는 행사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해 계속된 추모와 애도를 하고 나서는 이런 걸 느꼈을 거예요. 김정일이 죽은 뒤 첫 해까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후에는 김일성과 비교했을 때 크게 슬퍼할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죠. 형식적으로는 우는 흉내를 낼 수밖에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김정일의 죽음에 대해서 마음으로는 전혀 슬퍼하지 않았을 겁니다. 진정한 애도 분위기는 거의 없다고 봐야죠. 오히려 김정은에게 애도 분위기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들의 삶에 대해 알리고 싶었을 겁니다. 주민들의 삶이 더 나아지는 쪽으로 정책을 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겠죠.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날지, 전기가 없는 컴컴한 생활을 어떻게 견딜지 하는 것들이요. 다행히 올해는 작년보다 추위나 가뭄이 덜 하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는 하지만요. 어쨌든 북한 주민들은 겨울이 되면 더욱 힘들어지고 움츠러들게 되기 때문에 애도 분위기는 주민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불과했을 것이란 거죠.

7. 노동신문을 보면, 김정은이 아버지의 애국신조에 대해 “인민은 전지전능한 존재라 여겼으며, 김정일 애국의 마음에는 언제나 인민이 있었다”며 인민의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그랬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노동신문이 북한에서도 잘 쓰지 않는 언어들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인민이 김정일을 전지전능하다는 것도 마찬가진데요. 전지전능하다는 건 신에게 붙이는 말이죠. 과연 김정일이 인민을 신처럼 추켜세우고, 자신의 마음에 인민을 뒀을까요? 정말 웃기고 격분할 만한 말이죠. 김정일이 정말 인민을 전지전능하게 여겼다면 1990년대 말 대규모 식량난은 왜 생겼겠습니까? 김정일의 가장 큰 만행 중 하나가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을 정치범 수용소에 가둬놓고 지구상 유례없는 인권유린을 자행했다는 것 아닙니까. 1990년대 후반 식량난이라 불릴 정도로 수백만 명의 아사자를 나오게 한 장본인인데, 그 장본인이 마음에 인민을 뒀다는 건 정말 가소롭기 짝이 없는 말이죠. 인민을 전지전능하게 여겼다라든가, 김정일의 마음에 인민이 있었다는 말은 정말 쓰면 안 됩니다.

또 김정은도 이 같은 김정일을 무모하게 치켜세우고 있는데, 그야말로 그 아비의 그 아들이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네요. 김정일은 인민을 추켜세우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식량난 시기에 인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걸 보면서도 비행기로 음식을 공수해 먹고, 그러다가 일본인 요리사를 데려다가 놓고 초밥을 먹은 게 김정일입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인륜을 져버린 극악한 행위죠. 이런 아비를 치켜세우는 건, 결국 김정은도 마찬가지라는 게 아니겠습니까.

8. 마지막 질문입니다. 김정일 사망 4주기 행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이제 김정은은 집권 5년 차에 접어들게 됐습니다. 김정은의 집권 5년 차 전망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북한 체제를 좀 더 안정화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그 동안 잦은 숙청을 하면서 노동당의 핵심 계층이 조금 어수선해졌을 텐데, 이를 안정화시키거나 혹은 아예 확실한 물갈이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특히 이제까지 체제 안정화와 숙청을 병행해왔다면, 집권 5년 차부터는 자신의 사람들을 좀 더 핵심적인 일에 참여시킬 것 같습니다. 누가 누군지를 알아가는 과정을 갖겠다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정권의 핵심 세력들에 대한 물갈이가 있을 수도 있겠고요.

또 앞으로 북한 사회가 좀 더 안정적인 방향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할 겁니다. 정치나 경제 부분에 있어서 일정한 개혁도 준비하지 않을까 싶고요. 설령 우리가 바라는 개혁은 아니더라도 인민을 위한 개혁, 김정은 자신을 위한 개혁을 감행하지 않을까요. 일단 경제적으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는 개혁을 해야 할 테니까요. 먹고 살기 위한 방법을 풀어줘야 정권에 대한 불신도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부분적인 개혁과 정책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아울러 통일에 대한 부분도 짚고 싶은데요. 김정은이 남북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북한의 경제 문제는 남한과의 교류를 좀 더 해야 풀릴 겁니다. 이걸 위해서는 대남 도발을 하지 말아야 할 텐데요. 대남 관계 전략을 다시 강경한 방향으로 갈지 평화 분위기로 갈 것인지는 김정은 본인이 선택해야 할 문제이기는 하나, 아마도 내년에는 올해보다 그리고 이전보다는 더욱 북한 내 체제와 정책에 있어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