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에 北 주민이 위로 받아야 하나

북한 김정일 사망이 공식 발표 되고 하루가 지나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이 나왔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20일 외교안보장관회의 결과를 담은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상황의 철저한 관리, 비상경계 태세 유지, 애기봉 성탄트리 점등 유보 권유, 김정일 장례 조문 소극적 허용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과 관련해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김정일의 사망은 한 독재자의 사망에 그치지 않는다. 분단과 6.25전쟁 이후 50년 가까운 체제대결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 순간에 나온 정부의 담화문 치고는 궁색하기 그지없다. 북한의 변화와 발전을 기대한다는 언급은 찾을 수 없다. (외교적) 실용을 앞세운 철학과 역사의식의 부재만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 정부는 김정일의 유고가 가져올 한반도 변수를 우리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용기도 없다. 주어진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의 지혜와 힘을 모아 역사를 해쳐 나가자는 추상적 언급조차 찾을 수 없다. 김정일 장례 조문과 애기봉 등탑 문제에 대한 언급은 이 정부가 어떻게 하면 논란거리와 비판의 화살을 피해갈까 고민한 흔적만 보여주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김정일의 사망으로 슬픔에 잠길 북한 주민들을 위로한다는 대목이다.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에 미국 정부는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를 보낸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 주민들의 통곡행렬을 보고 이 부분을 외교 메시지에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일 김정일 사망 발표 이후 보이는 주민들의 눈물쇼는 대다수 자발적인 것이 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자신의 처지와 운명도 가름하지 못하고 수령이 죽었다면 무조건 땅을 치고 슬퍼하는 미천한 존재들이 아니다. 과거 김일성 사망 때처럼 세상 물정 모르고 통곡하던 수령의 노예는 더욱 아니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의 사망이 당장 개혁개방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변화의 단초가 되기를 애써 고대하고 있다.


북한 김정일의 사망은 앙시앙레짐의 소멸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 뒤를 잇는 김정은 체제는 수령독재라는 구 패러다임의 연장선이다. 김정은에 대한 구애가 필요하다면 다른 방식으로 할 것이지 북한의 변화와 민주화를 바라는 주민들을 내세워 유화 메시지를 던질 이유가 없다. 김정일 사망 정국에도 북한과 눈을 맞춰 성과물을 만들어 내려는 유연성(류우익)의 산물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김정일은 지난 40년 가까운 통치기간 북한 주민을 조용하면서도 끈질기게 학살해온 독재자다. 최대 3백만이 굶어 죽은 대아사 사건은 뒤로 하더라도 현재 북한 도처에 산재한 수용소와 교화소, 집결소에서 죄 없는 주민들이 신음하고 있다. 김정일은 국가 배급 부재 조건에서 주민들이 장사를 통해 꼬박 모아온 장롱 속 현금마저 화폐개혁으로 강탈해 수많은 사람을 거리로 내몰았다.


과연 이명박 정부는 김정일 사망과 관련해 북한 주민을 위로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김정은을 위로하고 싶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