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분단 최후의 정치결투 벌이자

(親)김정일 분자들의 상투적인 말 가운데 하나는, 북한에 대해서는 일체 비판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같은 민족끼리 그래선 안 되고, 통일을 위해서도 그래선 안 되며, 그랬다가는 전쟁 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사사건건 남쪽 정치에 대해서는 일일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시비를 거는가? 우리 사법부가 열우당 의원들의 선거법 위반행위에 대해 유죄를 선고해도 시비이고, 한나라당 사람들이 당명 개정을 거론해도 이러쿵 저러쿵 시비다. 아니, 그렇다면 우리는 저희들에 대해 입도 벙긋해선 안 되고, 저희들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 아무 소리나 제멋대로 질러대도 괜찮은 것으로 치자, 이 말인가?

미안하지만 절대로 그렇게는 할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공정성(fairness)에 바탕해야만 성립할 수 있다. 한쪽은 제멋대로 시비해도 좋고, 다른 한쪽은 절대로 시비해선 안 된다는 식이라면 그것은 도대체가 사람 사는 세상의 법도가 아니다.

그래서 김정일과 그 남쪽 하수인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서로 시비하기로 하든가, 아니면 서로 시비하지 말기로 하든가. 하기야 이런 준칙을 만들자고 말하는 것 자체가 김정일식(式) 공산당의 본질을 아직도 잘 모르는 소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제 스탈린-폴 포트-김정일이 남과의 약속이나 규칙을 지킨 적이 있었던가?

타락한 볼셰비키의 철칙 중 하나는 부르주아지는 인간 쓰레기이자 악마이기 때문에, 그들을 타도하기 위한 ‘위대한’ 혁명에 필요하다면 마약 밀수출이나 달러 위조 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어떤 흉칙한 짓거리를 해도 그것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혁명을 위해서는 3백만 명을 학살해도 괜찮고. 2백만 명을 굶겨 죽여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에서 헌법기관인 사법부가 실정법에 따라 명백한 위법행위를 유죄로 판결하기만 해도 그들은 대뜸 “미제의 사주를 받은 수구반동 사법부가 ‘진보’ 세력을 뒤집기 위해…” 운운하며 꼭 미친 개처럼 나발을 불어댄다.

김정일에겐 ‘어른의 위엄’이 특효

도대체 누가 김정일에게 이런 턱도 없는 불공정한 ‘특권’을 부여했다는 것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무경우는 이제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무슨 이유에서인가 김정일에게 그런 괴상한 ‘특권’을 부여한 것 같지만, 이제부터는 더 이상 그런 해괴한 불공정 거래는 절대로 통용될 수 없다. 이제는 김정일이 뭔가를 하면 우리도 그에 상응한 뭔가를 해야 하고, 그가 뭔가를 하지 않으면 우리도 그 뭔가를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나가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뭐 전쟁 난다고? 웃기고 자빠졌네… 그렇다면 지난 세월 우리가 휴전체제를 확고하게 지키고 있었을 때는 왜 전쟁이 나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런 씨도 안 먹힐 공갈협박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공갈협박도 한번 두번이지, 그것도 너무 여러번 써먹으면 효력이 점점 없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김정일을 향해 소리 높이 외쳐야 한다. “우리는 결코 전쟁을 원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고! 그래야만 오히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김정일은 오직 자기 아버지 같은 더 큰 힘, 더 큰 카리스마의 위력 앞에서만 적당히 꼬리를 내리는 척 사기치는 ‘잘못 풀린 재벌 2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에게 보여 주어야 할 것은 추상(秋霜)같은 어른의 위엄이지, 그까짓 김대중식 비위 맞추기 따위가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현존권력은 김정일에 대해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모두 다 할 수는 없다는 현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정부란 항상 ‘외교적’ 고려를 전적으로 간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간(civic) 단체들은 그래선 안 된다. 민간단체들은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한껏 소리치고 한껏 터뜨려야만 비로소 민간단체다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다같이 소리 높이 외치자.
“김정일은 들어라, 너희가 우리의 내부정치를 들쑤시겠다면 우리도 너희의 내부정치를 들쑤시겠다!”고. 치사한 꼼수는 그만 둬라, 전세계인이 바라보는 가운데 우리와 너의 분단시대 최후의 정치적 공개결투를 결행하자.

류근일/본지고문(前 조선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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