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방중 후 경제정책 어렵게 변했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만 다녀오면 경제정책의 변화를 몰고 왔다는 점에서 이번 방중에 따른 후속조치가 주목된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19일 브리핑에서 2000년 이후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그 후 북한이 취한 경제정책의 사례를 열거하며 새로운 개혁.개방정책에 주목했다.

통일부 분석자료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2000년 5월 29∼31일 중국을 다녀온 뒤에는 이른바 ‘단번 도약론’이 나왔다. 한 번에 올라서자는 논리다.

당시 북한이 단번 도약론의 방법론으로 제시한 것은 정보기술(IT) 산업이었다.

베이징 중관촌(中關村)의 컴퓨터생산공장 등 산업시설을 시찰한 결과가 그대로 산업정책이 된 것이다.

2000년 방중을 전후해 북한이 IT분야의 수재 양성정책을 편 게 단적인 예다.

김일성종합대에 ‘콤퓨터(컴퓨터)과학대학’이라는 단과대학이 생기고 2001년에는 중등교육에도 컴퓨터 수재양성반이 만들어지는 등 거센 정보화 바람이 몰아쳤다.

물론 대외협력 없이 내부 역량만으로 ‘산업화’ 단계까지 끌어올리는데는 한계를 노출했지만 신(新)산업에 대한 관심은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남북관계에서는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사이에 합의서를 맺고 개성공단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듬해인 2001년 1월 15∼20일 방중 이후에는 ‘신(新)사고’ 바람이 몰아쳤다.

김 위원장은 당시 상하이(上海)를 둘러본 느낌을 ‘천지개벽’이라는 단어로 집약한 이후 북한경제의 틀을 뒤흔드는 파격적인 경제개혁 정책을 입안한 것이다.

신(新)자력갱생론이나 실적, 실리, 실력 등 3실주의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다.

김 위원장은 2001년 10월 경제관리 개선방침을 내놓았고 내부 검토를 거쳐 2002년에는 임금과 물가를 현실화하고 독립채산제를 강조한 ‘7.1경제관리개선조치’로 구체화됐다.

2003년 3월에는 평양의 통일거리시장을 비롯해 종합시장 조성 작업이 본격화됐고 경제 복구를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 인민공채도 발행했다.

물론 그 후 쌀값을 중심으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일보 후퇴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는 했지만 개혁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돼 버렸다.

그 연장선상에서 2004년 1월에는 가족영농에 가까운 포전담당제가 시범실시됐고 초과 수확에 대한 개인 처분권도 일부 허용되면서 생산력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관료조직이나 기업소 지배인도 경영마인드를 가진 30∼40대가 나서게 됐다. 이는 장관급인 금속공업상을 43세의 해당분야 전문가로 임명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시장경제를 배우기 위한 관료들의 해외 경제연수도 2000년 158명에서 2001년 186명, 2002년 227명, 2003년 237명, 2004년 220명으로 대체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2001년 방중 이후 특히 주목할 만한 대목으로는 경제특구를 꼽을 수 있다. 2002년 9월 신의주에 이어 10월에는 금강산을, 11월에는 개성을 특구로 지정한 것이다.

2004년 4월의 중국 방문도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됐다.

베이징(北京)을 거쳐 베이징으로 통하는 외항이자 공업도시인 톈진(天津)을 방문한 김 위원장의 행보는 대외 무역과 남북 교역을 위한 조직 정비로 이어졌다.

바로 다음 달인 5월에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경제사령부’인 내각의 직속기관으로 격상하고 7월에는 내각 산하에 성급(장관급) 기구로 ‘민족경제협력위원회’를 신설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런 흐름은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뒤에는 항상 경제정책이나 조직의 변화가 뒤따랐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에 따라 지난 10일부터 9일간 이어진 이번 방중 뒤에도 과거처럼 새로운 변화를 위한 북한의 몸부림을 기대하는 관측을 낳고 있다.

정부는 특히 김 위원장의 이번 방문이 우한(武漢), 광저우(廣州), 주하이(珠海), 선전(深천< 土+ 川 >) 등 중국의 경제특구에 집중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차관은 이런 맥락에서 “경제특구를 둘러봤다는 점에서 그동안 부진했던 경제특구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대시키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해 본다”며 “앞으로 특구개발과 관련한 북한의 정책 추진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전망에 기초해 우선 눈길이 가는 곳은 신의주특구와 개성공단이다.

신의주에 주목하는 관측에는 과거 중국의 부정적인 시각 때문에 좌초했다면 이번 방중을 통해 어느 정도 중국의 양해를 얻지 않았느냐는 시각이 깔려 있다.

과거 사례를 봐도 김 위원장이 과거 현대와의 공단개발 논의 과정에서 개성을 내주기 전에 신의주를 개발할 수 없느냐는 입장을 내비친 것은 신의주에 대한 그의 애착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신의주를 완전히 버린 카드로 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이 신의주 개발을 양해했다면 항구를 갖추고 있는 단둥(丹東)과 묶어 북중 산업단지 벨트로 조성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개성공단의 경우 북측 입장에서 개혁.개방을 위한 사실상 최초의 ‘파일럿 프로젝트’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번 중국 방문이 개방을 통해 외자를 유치해 산업화를 일궈낸 실물경제 현장에 집중된 것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더욱이 개성공단은 시범공단 가동에 이어 1단계 100만평 중 우선 분양한 5만평에 입주할 기업들이 속속 사업승인을 받아 공장건축 작업에 들어가고 있는 가운데 2단계 조기개발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이다.

2단계 개발이 관심사가 되는 것은 노동집약적 중소기업 중심인 1단계와는 달리 서울지역의 금융과 인천의 물류 등 수도권 인프라와 연계된 산업단지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기업 뿐아니라 다국적 기업 유치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에서 이번 중국 방문의 결과는 개성공단 2단계 개발 논의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와 함께 대동강을 통해 평양으로 연결돼 있고 산업시설이 밀집한 남포를 특구로 지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