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방중 위기의 돌파구 여나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연초 중국 방문을 통해 위기 상황을 공격적인 외교적 움직임으로 극복하려는 행보를 재연해 눈길을 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기간에 6자회담과 금융제재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깊숙한 논의를 통해 돌파구를 열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그동안 김 위원장은 국제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적극적인 외교행보를 보여왔다.

1990년대말 클린턴 행정부는 미사일과 금창리 핵의혹시설 등으로 북한을 압박하면서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의 수용을 촉구했다.

또 대내적으로는 김일성 사후 지속적으로 이어진 자연재해와 더불어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4월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고 5월에는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가 된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으며 2000년 7월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했다.

이어 같은해 9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10월에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을 평양으로 초청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반도 주변 강국들과 적극적인 외교관계를 통해 난국을 타개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로 풀이됐다.

미국에서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고 2002년 10월 고농축우라늄(HEU)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제사회의 압박이 고조되는 가운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4년에도 또 한차례 공세적인 외교에 나섰다.

2004년 4월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은데 이어 같은 해 5월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납치자 문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어 북한은 그해 6월 교착상태에 빠졌던 6자회담에 전격적으로 복귀하면서 핵문제에 대한 논의가 재개되기도 했으며 당시 일각에서는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을 축으로 5대 1구도가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나오기도 했다.

또 남한과는 장성급 군사회담을 통해 서해상에서 우발적 무력충돌과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선전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도 합의하는 등 한반도 대립구도를 돌려놓기 위해 주력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그동안 보여준 이러한 행보 때문에 이번 중국 방문 이후에도 북한의 적극적인 외교공세가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만나 6자회담의 유용성에 대해 공감을 하면서 난관해결을 위한 중국측의 노력이라는 약속을 이끌어낸 것도 앞으로 공격적인 외교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 같은 움직임을 통해 위조화폐 문제로 인한 금융제재와 인권문제, 마약 등 새로운 아이템을 내놓으면서 북한을 압박하는 미국을 공세적 외교를 통해 역으로 압박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복안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상승세에 경계심을 가지고 가상적국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북중관계의 공고함을 보임으로써 중국의 역내 리더십을 부각하면서 미국의 조바심을 이끌어내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정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의 방중이 단순히 일회적 행사로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후속적으로 내놓을 각종 조치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연합